영국 SNS 설문, 미국 재미있는 나라 1위, 독일 재미없는 나라 1위21세기 문화 강국 시대… 유머 포함한 소프트파워 중요성 일깨워

독일국기
지구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나라는 독일이다?

얼마 전 영국의 소셜네트워킹 사이트 바두닷컴(www.Badoo.com)에서 '잔인한' 조사를 실시했다. 가장 재미없는 나라와 재미있는 나라의 순위를 매긴 것. 재미없는 나라 1위로는 독일이 선정돼 '세계에서 가장 얇은 책은 영국 요리책과 독일 유머책'이라는 속설을 다시 한번 확증했다.

15개국 3만 명의 네티즌이 참여한 이 설문에서 재미없는 나라 2위는 러시아, 3위는 터키, 4위 영국이 뽑혔으며 가장 재미있는 나라의 영광은 미국이 차지했다. 2, 3위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다.

물론 정확한 기준이나 참가자 엄선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왠지 그럴 것 같다' 류의 조사지만 워낙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중국의 차이나데일리, 호주의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외신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다.

영국의 매체 데일리메일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재미없는 나라 4위에 랭크된 것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가 재미있지 않은 모양"이라고 씁쓸해 했으며, 바두닷컴의 대변인인 영국인 로이드 프라이스는 "독일인들은 차도 잘 만들고 축구로 영국을 이기는 등 많은 분야에서 훌륭하지만 불행히도 유머는 그렇지 않았다"며 "만약 코미디 월드컵이 있다면 우리가 그들을 이길지도 모르겠다"고 의기양양해 했다.

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질문은 "그럼 한국은?"이다. 이번 조사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빠졌지만 만약 포함이 됐다면 어땠을까?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이미지 중 '유머러스한'이 포함돼 있을까?

한국은 스타크래프트 좀비?

한국에 대한 세계의 이미지는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발견된다. 지난해 말 미국의 한 네티즌이 장난 삼아 만든 '모든 이들을 기분 상하게 하고 싶어 만든 지도'는 각 나라별로 연상되는 단어로 세계 지도를 재구성한 것인데, 거기에서 한국은 '스타크래프트 좀비'로 요약됐다.

얼마 전 CNN에 한국이 소개될 때 'PC방 폐인'이 등장한 적이 있으니 아주 근거 없는 말은 아닌데다가, 일본은 '변태 회사원', 북한은 '그냥 좀비', 남부 유럽은 전부 합쳐서 '망할 놈의 게으름뱅이들'로 정리됐으니 평이 크게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재미 없는 남자'라는 말은 얼마나 치명적이고 잔인한가. 여자에게도 유머 감각이 요구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사회생활이 아닌 사적인 남녀관계에 있어서 유머 감각에 좀 더 민감한 것은 남자 쪽이다.

남을 웃기는 능력은 종종 상황을 통제하고 좌중을 리드하는 능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어떤 남자들은 이상형으로 '나만큼 웃기는 여자'보다 '내 말에 잘 웃는 여자'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국가 경쟁력을 따질 때도 마찬가지다.

뉴아메리카재단의 연구원이자 국제학자인 더글라스 맥그레이는 2002년 외교전문잡지 <포린폴리시>에서 '국민총매력지수(Gross National Cool, GNC)'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GNC는 한 나라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계량화한 지수로, GDP, GNP처럼 물질이 아닌 한 나라의 '매력 지수'로 해당 국가의 부를 측정하는 지표다.

일부에서는 GNC를 '국민문화총생산'이라고도 정의하는데, 이는 한 국가의 총체적인 문화 역량을 뜻한다. 맥그레이는 GNC라는 개념을 만들기는 했지만 이를 계량화된 수치로 제시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다만 1990년대부터 경제성장 정체를 기록한 일본이 애니메이션 <포켓몬>이나 '헬로키티' 캐릭터를 수십 개 국에 수출하는 등 문화 산업에 있어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말하면서 이를 GNC의 증가로 정의한 정도다.

21세기에 한 나라의 국력은 경제적 가치에 의해서만 계수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는 도처에 널려 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의 윤은기 총장은 2010년 <신동아> 5월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다.

"선진국은 매력 강국이다. 19세기에 군사 강국이 대세였다면 20세기는 경제력이 뛰어난 경제 강국이 대세였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 강국이 대세다. 이제는 국민총생산지수보다 국민총매력지수가 높은 나라, 하드파워보다 소프트파워가 좋아서 사람과 돈을 끌어당기는 국가나 도시가 선진국이다"

바야흐로 매력의 시대다. 유머를 포함한 소프트 파워에 있어서 한국은 세계에 얼마나 매력적으로 비치고 있을까?

찌질이와 철벽녀의 시간

싱가포르 텍스트100의 대표이자 한국의 국가브랜드위원회 외국인자문단인 필립 라스킨은 십 수년 간의 한국에서 체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 재미있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과거 몸 담았던 기업에서 한국의 국가 브랜드 구축을 위해 기존 정부 정책 조사, 외부 전문가 의견 취합, 2500명 이상의 설문조사, 여기에 각종 보고서, 백서, 브랜드 모델 등을 검토해 한국과 관련된 주요 특징을 40개의 단어로 압축했다.

여기서 또 다시 그 단어들을 전부 포괄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를 찾기 위해 조사에 착수한 결과 한국의 정신을 구성하는 3개의 단어를 도출해 냈으니 이는 바로 '역동성, 유대감, 성취욕'이다.

역동성에 대해서는 안팎의 평가가 모두 긍정적이다. 새벽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나라(놀고 있든, 일하고 있든), 스포츠와 관련된 대형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터져 나오는 남미 뺨치는 열정 등은 늘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다.

이는 특수 상황이나 집단에서만 포착되는 특징이 아니라 일상이나 개인의 삶에서도 늘 뿜어져 나온다는 점에서 한국의 진정한 정신성 중 하나로 불릴 만하다. 한국인들도 스스로의 역동성을 인정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 한국을 홍보할 때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이미지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개의 특징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 중에서도 특히 끈끈한 유대에 대해서 내국인들 사이에서는 '더욱더 공고히 해야 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외부의 눈에는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공격적으로 비치는 경향이 있다. '우리'라는 견고한 틀이 '1등만 기억하는' 성취욕과 결합돼 '우리만 1등이면 된다'라는 이기적인 태도로 변질되곤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ODA(공적개발원조: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이나 국제기관에 하는 원조) 규모는 비슷한 GDP를 유지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국제통화기금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의 GDP는 1조 71억 달러로 세계 15위에 올랐지만 ODA 규모는 11.7억 달러로 18위를 기록했다.

라스킨은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 회사를 위해 한 몸 불사르는 근로자,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가장이 한국의 지난 60년을 대표하는 정신이라고 말하면서, 이는 외부에 놀라움을 안겨주기는 하지만 존경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의 성취욕과 유대감은 자국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곤경을 헤쳐 나오게 한 절대적인 원동력이다. 그러나 '우리'라는 의식이 너무 강해 외부의 부정적 견해를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들의 열정과 뛰어난 기술력이 그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세계를 개선하는 일에도 쓰여지기를 바라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지금 한국의 모습은 쓰러질 때까지 일하고, 그에 대한 평가에 털을 바짝 세우며, 기대에 못 미치면 발끈하고, 주위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그야말로 꽉 막힌 사람이다. 열등감을 공격성으로 표출하는 '찌질이'와 일밖에 모르는 '철벽녀'는 이런 시대의 아이콘들이다.

은메달을 따고 돌아온 어린 피겨 퀸에게 '아쉬운 은메달'이라는 헤드라인을 붙여주는 이 나라에 여유나 유머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즐길 줄 모르고 쓰러뜨리는 것에만 눈에 불을 켜는 사람은 당연히 집단 내에서도 가장 매력 없는 존재로 찍히게 마련이다. 이제 주위를 둘러 보고 좀 웃어야 할 때다. 국민총매력지수가 정확하게 산출되는 날, 한국은 몇 점을 받을 수 있을까?

참고서적: <세계가 사랑한 한국> 필립 라스킨 외, 파이카
<인사이트 지식사전> 조선경제연결지성센터, 쌤앤파커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