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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더위 견디며 공감을 맛보다

[Story in the Kitchen] (24) 삼계탕
여름 대표 보양식 함께 먹으며 허한 몸과 마음의 원기 충전
'오오오~ 영계, 영계백숙!!!'

지난 주 친구의 휴대폰 메시지를 받고 피식 웃음이 났다. 끼니도 거르고 일하던 차, 친구는 이런 문자와 함께 동료들과 삼계탕 먹고 있는 사진을 보냈다. 그는 "이열치열"이라 우기며 삼계탕 그릇에 코를 박고 있었는데, 10일째 장마로 온 세상이 눅눅하던 때에 "이열치열"은 썩 들어맞는 한자성어는 아닌 듯했다.

'어디다 자랑질이야'

답문을 보내며 여름이 시작된 걸 알았다. 한국의 여름은 복날 삼계탕과 함께 오는 것이니까.

에어컨 앞에서 이열치열

삼계탕. 닭의 뱃속에 찹쌀·마늘·대추 등을 넣고 삶은 음식으로 계삼탕이라고도 한다. 인삼을 헝겊에 싸서 국에 넣고 푹 고아 인삼 성분이 우러나게 해 국물만 마시거나, 국물에 양념한 고기를 넣어 먹기도 한다. 병아리보다 조금 큰 영계를 이용한 것은 영계백숙이라고 하는데, 요즘 복날 먹는 삼계탕은 생후 100일이 갓 지난 영계백숙이 태반이다.

복날의 연상단어처럼 일컬어지는 이 음식은 또한 보양식의 대명사로 일컬어져왔다. 전래동화에서 산삼이나 인삼이 죽을 병 걸린 사람도 살리는 명약으로 소개되는데, 먹을 게 부족했던 옛날에는 닭고기도 이에 못지않은 음식으로 손꼽힌 것 같다.

소설가 김유정이 친구 필승(안회남의 본명)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닭을 잡아먹고 기력을 보충해야겠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니 인삼과 닭이 합쳐진 삼계탕은 오늘날에도 당연히 보양식 1순위로 언급되는 게 아닐까.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한 둬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오십일 이내로 번역해서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 주마. 허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 그 돈이 되면 우선 닭 삼십 마리를 고와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뭇 먹어 보겠다. 그래냐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쏙구리 돈을 잡아 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삼월 십팔일. 김유정으로부터' (김유정 전집 2권, 가람기획, 286~287페이지 '필승의 전' 중에서)

그 시절 김유정은 몸보신으로 닭고기를 먹었을지 모르지만, 넘쳐나는 칼로리를 걱정하는 오늘날 한국인들은 그저 복날이기 때문에 삼계탕을 먹는 것 같다.

송편이나 떡국처럼 절기마다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 있으니까. 가을의 전어와 여름의 냉면처럼 시즌마다 찾게 되는 음식도 있으니까.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우리는 이런 음식들을 나눠먹으며 함께 산다는 공감을 갖는다. 그래서 복날 삼계탕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볼 때마다 '저 사람들은 몸이 허하기 보다는 마음이 허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기자가 다닌 이전 직장의 상사는 가부장적인 면과 아이 같은 면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었는데 특히 음식 앞에서는 이 두 상반된 면모가 동시에 발휘됐다.

이를테면 직원들이 야식을 싸오면 이걸 뺏어 먹으며 다음날 메뉴를 주문하거나, 추어탕처럼 먹고 싶지만 마누라가 해주지 않는 음식을 점심메뉴로 정하는 걸 즐겼다.

복날이나 동짓날이면 단체로 삼계탕과 팥죽 먹게 하는 것도 이 상사의 특기 중 하나였다. 이 상사와 두 번의 여름을 보냈고 도합 여섯 그릇의 삼계탕을 먹었는데, 그와 밥을 먹을 때마다 '자기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한다는 게 얼마나 상대방을 지치게 하는가'를 실감했다.

김나정의 단편 '주관식 생존문제'는 어긋한 애정을 그린 소설인데, 기자는 이 작품을 읽으며 예전 그 상사가 생각났다.

고아 배철은 두 번이나 입양된 행운아이자, 두 번 다 파행을 당하게 된 불운한 아이다. 두 번이나 파양됐던 사내아이를 입양하려는 여인은 아이가 불쌍하다며 아이를 데려오기 전 꺼이꺼이 목놓아 운다. 배철에게 세번째 입양은 마지막 기회다. 윤수란 새 이름을 얻은 아이는 파양되지 않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 열심이다.

하지만 곤란한 일이 생겼으니 그토록 싫어하는 삼계탕을 매일 먹어야 한다는 것. 세 번째 입양을 한 양부모는 아이를 몸보신 시키겠다며 매일 삼계탕을 끓인다. 삼계탕을 잘 먹지 못하는 아이는 필사적으로 삼계탕을 먹다 몰래 음식을 게워내고, 양부모는 아이를 탓하며 고아원에 돌려보낸다.

"거짓말하는 아이는 더 나쁘다"라는 말과 함께. 줄거리를 간추리다보니 양부모의 파양이 얼핏 야박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람에게 상처받기는 매한가지란 점에서 양부모도 피해자다. 다만 자기 방식으로 아이에게 애정을 쏟았다는 죄가 있을 뿐이다.

뭉근하게 고아낸 여름의 맛

기자는 '한 때' 채식을 시도해 본적이 있다.(다행히도 삼계탕과 추어탕에 목맨 그 직장에서 나온 후였다) 채식에도 단계가 있는데 기자가 했던 건 생선과 우유, 계란을 먹는 패스코였다. 완전한 채식은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 걸 밝히는 순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살육자가 된 것처럼 불편해한다. 육식주의자 후배는 이렇게 놀렸다.

"30대, 전문직에 채식주의자…. 철벽녀 광고라도 하려고?"

혼자 사는 딸이 가끔 집에 갈 때면 부모님은 거의 항상 삼겹살이나 삼계탕 같은 고기음식을 준비했는데, 패스코 커밍아웃을 한 뒤로 부모님은 나물반찬이나 생선을 준비했다.

"근데 암만 생각해도 복날 삼계탕 말곤 뭘 먹일게 없더라."

그 해 삼계탕 앞에 장어구이를 내놓으며 엄마가 말했다. 밥상 앞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족들은 말없이 삼계탕과 장어구이를 나눠먹었다.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힘쓴다"는 지론을 가진 엄마였지만, 이후에 다시 잡식주의자로 돌아갔다는 말을 꺼낼 때까지 고기먹기를 강요하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저 상사나 배철의 양부모처럼 자기방식만 내세우는 사람과 살 수만은 없다. 우리가 삶을 견디는 건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일 게다. 함께 추어탕집에 끌려가 김치찌개를 시키던 옛 직장 동료들처럼, 복날 장어를 굽던 내 어머니처럼.

'주관식 생존문제'가 예전 상사를 떠올리게 한다면, 권지예의 단편 '뱀장어 스튜'는 내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은 스무 살 때 한 남자를 만나 사랑했지만, 남자의 배신으로 실연당한다. 제왕절개로 낳은 아이는 해외로 입양되고, 그녀는 자살을 기도한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그 상처를 어루만져준 가난한 화가를 만났고, 그와 결혼한다. 그리고 때때로 한국으로 건너가 첫사랑이었던 남자와 무미건조한 만남을 갖는다.

남편을 향한 그녀의 감정은 아무래도 사랑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3년 만에 한국으로 찾아가 만난 남자가 사랑보다 허망함을 더 많이 준다는 것을 깨달은 여자는 다시 남편에게 돌아온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삼계탕을 끓여준다.

'부엌에선 삼계탕 끓는 소리가 자작자작, 빗소리에 잦아들고 있을 것이다. (…) 삼계탕이 끓고 있는 동안 그녀는 고즈넉한 평화로움에 젖는다. 살아서 펄떡이는 것들을 모두 스튜 냄비에 안치고 서서히 고아내는 일. 살의나 열정보다는 평화로움에 길들여지는 일. 그건 바로 용서하는 일인지 모른다. 그녀는 이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삶이란 살아서 펄떡이는 것들을 서서히 고아내 뭉근하게 만드는 것임을, 작가는 뱀장어스튜와 삼계탕을 통해 말하고 있다.

우리가 복날 가스불 앞에서 인삼과 닭고기를 삶는 것도, 에어컨 앞에서 "이열치열"을 외치며 삼계탕을 나눠 먹는 것도 펄떡이는 여름의 더위를 시간의 힘으로 뭉근하게 만들려는 게 아닐까.

'초복 중복 말복 질기게 견뎌야 할 복더위에는 질기게 견뎌야 할 이 세상 된장 발라버릴 것들 대신 개장국이든 삼계탕이든 뱀탕이든 뙤약볕보다 더 드센 장작불로 푹푹 삶는 게 젤이다 누가 더 질긴가 보자고 질긴 게 이기는 법이라고 뙤약볕도 이 세상을 푹푹 삶는다' (정양, '복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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