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아바나혁명의 상징 체 게바라 이젠 관광산업 이끌어럼 한잔 하며 피우는 시가 쿠바 여행자들의 로망

체 게바라 얼굴로 장식한 혁명 광장. 책 표지로, 티셔츠의 디자인으로, 그래피티 벽화 속 주인공으로 나오는 쿠바 혁명의 영웅은 사후에도 쿠바의 관광 산업을 돕고 있다.
이곳은 쿠바다. 자유의 땅에 대한 환상을 품고 달려왔던, 변해버린 실체에 실망을 하던, 여행자들의 로망에 마지막 종착역으로 섬겨지는 땅이다. 뛰는 가슴은 이미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 어디선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잔잔한 색소폰 선율도 들려오는 듯하다.

쿠바인들의 천진난만한 표정 위에 이질적인 풍경이 덧칠해진다. 쿠바의 중심가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것은 올드카(자동차)들이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듯한, 5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산 차들이 버젓이 거리를 돌아다닌다. 빛 바랜 할리우드 필름의 한 장면을 감상하는 듯하다.

미군정 시절, 아바나는 미국 부호들의 휴양지였고 그들이 남긴 유흥의 흔적이 수십 년 세월을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다. 울퉁불퉁한 겉모습은 고풍스럽고 멋있지만 이 올드카들은 매연의 주범이기도 하다. 아바나의 상징이 된 채 개인 택시로도 활용되는데, 외국의 자동차 마니아들이 아무리 눈독을 들여도 팔지 않는 쿠바의 명물이 됐다.

혁명의 도시에 부는 변화의 바람

2008년 피델 카스트로가 50년 가까이 지켜오던 쿠바 평의회 의장직을 사임하면서 쿠바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고 외국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혁명과 붉은 깃발 대신 관광 산업은 쿠바를 요동치게 하는 새로운 모티브가 됐다.

터번을 두르고 시가를 피우는 쿠바 여인. 시가는 럼주와 함께 쿠바를 상징하는 또 다른 명물이다.
구시가인 아바나 비헤나에 들어서면 동유럽의 오래된 골목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투박한 돌길들 사이에는 고풍스런 성당들이 높게 솟아 있다. 아바나에서 발견하는 스페인 지배 때의 잔영들이다. 좌우 비대칭의 대성당 광장에 서면 알록달록한 치마에 꽃과 터번으로 치장한 여인들이 품으로 달려든다. 헤밍웨이 분장에 시가를 빼어 문 할아버지도 어깨동무를 한다. 모두 1달러에 '쿠바'를 파는 거리의 사람들이다.

구시가의 골목들은 산 프란시스코 교회를 지나 비에하 광장까지 활기차게 이어진다. 아바나의 가장 오래된 광장인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서는 중고책 시장이 들어서 있다. 책 표지의 주요 모델은 대부분 쿠바 혁명의 상징인 체 게바라다.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같이, 체 게바라는 아바나의 '꽃'처럼 등장한다. 책 표지로, 티셔츠의 디자인으로, 그래피티 벽화 속 주인공으로 나온다. 쿠바의 혁명을 이끌었던 영웅은 사후에도 쿠바의 관광 산업을 돕고 있다.

체 게바라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려면 혁명광장으로 가야 한다. 혁명광장 주변으로는 관공서들의 밀집돼 있고, 내무성 건물의 한 벽면을 체 게바라의 얼굴이 채우고 있다. 'Hasta la Victoria Siempre.'(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그의 대표 어록도 얼굴과 함께 새겨져 있다.

헤밍웨이의 마을 꼬히마르

헤밍웨이는 체 게바라와 함께 아바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쿠바를 사랑했고, 쿠바의 여인을 사랑했고, 쿠바의 술 '럼'을 사랑했던 소설가다. 20년 동안 쿠바에 머물렀던 헤밍웨이의 잔재는 아바나 곳곳에 흩어져 있다. 아바나 동쪽의 꼬히마르는 소설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가 된 한적한 어촌이다. 헤밍웨이는 이곳에서 낚시를 즐기며 소설 속 노인인 선장과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해변가 단골 레스토랑 '라 떼레사'에서 그가 마셨던 모히또 한 잔을 기울이는 기분은 묘하다. 아바나의 도심이 변질돼 가는 것과는 달리 이곳 어촌의 골목에서는 환상 속에 오래 묻어둔 순박한 쿠바인들을 만난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성긴 이를 먼저 드러내고 웃는 모습들이다.

대성당 광장의 올드보이 악단.
쿠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럼과 시가다. 럼 한잔 걸치며 시가 한 개비 피우는 것은 쿠바 여행자들의 오랜 로망이기도 하다. 쿠바산 시가는 베테랑 숙련공들에 의해 직접 손으로 만들어 진다. 카스트로가 나서서 직접 최고급 시가를 만들 것을 지시했을 정도로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쿠바의 특제 수제 시가는 1개비에 수십만원에 달하는데 도심에서는 값싼 가짜 시가가 나돌기도 한다.

아바나의 거리를 무심코 거닐면 생경한 풍경들과도 조우한다. 시내에서 외곽으로 빠지는 대중 교통이 부족해 사람들은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탄다. 그 투박한 거리를 체 게바라의 흉내라도 내듯 구식 모터사이클을 몰고 외국인 폭주족이 질주를 한다.

해가 저물면 살사 선율이 흐르는 뮤직홀에 앉아 색소폰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모히또 한잔이 축축하게 목을 적시고 넘어간다. 사회주의의 퇴색된 모습과 조우하던, 자본주의에 물든 변질된 모습을 목격하던, 이곳은 분명 쿠바다. 혁명이 숨쉬었고 자유가 또아리를 튼 로망의 땅이다.

여행 팁
● 가는 길=미국 입국이 무비자로 바뀐 뒤 미국 LA~멕시코시티를 경유하는 게 일반적인 루트다. 중미 대부분의 지역에서 멕시카나 항공, TACA 항공이 쿠바 아바나까지 수시로 오간다. 택시를 타기 전 가격 흥정은 필수다. 입국 전 출발지 공항에서 비자를 구입할 수 있다.

● 기타 정보=쿠바 내에서는 달러나 유로를 쿠바 화폐인 빼소 꼰베르띠블레를 환전해 사용해야 한다. 현지인이 쓰는 빼소 페소 꾸바노로는 '1대 24'로 교환이 가능하다. 미국 달러 보다 캐나다 달러가 환전에 유리하다. 쿠바 내에서는 ATM출금이나 휴대폰의 자동로밍이 안 되니 유념할 것.

올드카와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꼬히마르 마을

헤밍웨이의 단골술집 '라 테레사'

글·사진=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aular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