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산악마을에서 맡은 알프스의 흙 향기 '스위스 라우터브루넨 그린델발트'

스위스 벵겐의 호수 바흐알프제
그곳은
알프스 봉우리 위로
별이 쏟아지고,
평생 지우지 못할
진한 추억으로 새겨진다

이런 상상, 한번쯤은 해봤을 듯싶다. 알프스 봉우리가 배경이 된 산장에 몸을 눕힌 채 감미로운 요들에 취해보는 상상 말이다. 알프스의 산악마을 그린델발트, 라우터브룬넨에서는 상상은 곧 현실이 된다.

마을들은 해발 4000m 급 봉우리에 둘러싸여 독특한 삶과 체험을 제공한다. 산자락 어디에서나 샬레풍의 지붕을 스친 바람에는 정갈한 흙 냄새가 실려 있다.

산악열차가 스쳐 지나는 마을들은 고즈넉한 풍경으로 다가선다. 융프라우로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라우터브루넨은 ‘엽서 한 장’의 마을이다. 샬레 가옥에 머물며 창문을 열면 초록빛 엽서가 방안으로 날아 든다. 괴테가 시의 영감을 얻었다는 슈타우프바흐 폭포는 300m 높이의 포말을 자랑하고 멀리 교회당에서는 종소리가 흩어진다. 그 평화로운 마을에 알레취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소리와 새소리가 내려앉는다.

산으로 향하는 소들의 긴 행렬은 커다란 방울을 딸랑거리며 ‘전원일기’의 끝장을 장식한다. 굳이 문밖으로 나서지 않더라도 이 세상 가장 평화로운 엽서 한 장을 이 계곡 마을에서 받아 볼 수 있다.

라우터브루넨 전경
해발 1275m 청정 마을

라우터브루넨에서 노란색 산악열차를 타고 이동하면 벵겐으로 이어지고 붉은색 열차로 갈아타면 빼어난 산세와 빙하로 이 일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융프라우로 연결된다. 융프라우는 알프스 최초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융프라우로 연결되는 융프라우 철도 역시 2012년 개통 100주년을 맞는다. 유럽 최정상의 역 융프라우요흐 위에 얼음터널을 뚫고 새로운 체험시설이 공개된다.

벵겐은 전기자동차만 다니는 청정 마을이다. 해발 1275m에 위치한 벵겐에서는 앙증맞은 초록색 트럭이 거리를 분주히 오가는데 소음도, 먼지도 없다. 이 고요한 마을에서 들리는 소리는 갓 수확한 신선한 야채와 치즈를 파는 가게에서 나지막하게 나누는 마을 사람들의 대화 소리뿐이다.

100년이 넘은 고풍스런 가옥 지붕에는 집이 만들어진 년도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창문 위는 방울과 산양 머리뼈로 장식이 됐다. 이들 마을에서는 베르너 오버란트의 3대 봉우리인 아이거, 융푸라우, 묀히가 가깝게 보인다.

라우터브루넨의 가을 풍경
설산 담아 낸 호수 트레킹

이런 한적한 산악마을에서의 휴식은 몸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융프라우 지역이 매력 넘치는 것은 산악마을들이 무공해 교통수단과 함께 숱한 트레킹, 스키 코스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알프스의 흙을 밟고 질주를 하는 상상 밖의 일들이 이곳에서는 이렇듯 편리하게 진행된다.

트레킹, 스키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라우터브룬넨의 동쪽 마을인 그린델발트의 호흡이 가장 풍성하고 깊어진다. 라우터브룬넨이 고요하다면 산악 액티비티의 아지트인 그린델발트는 한껏 들떠 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이방인들이 어우러져 마을은 북적거린다.

아이거 북벽 아래, 그린델발트에서 피르스트를 거쳐 바흐알프제 호수까지 이르는 길은 이 일대 트레킹의 백미다. 산행 길에는 족히 4m는 됨직한 나무기둥만이 듬성 듬성 꽂혀 있는데 한겨울 눈이 쌓였을 때를 대비해 길을 표시하려고 꼽아 놓은 것들이다.

평탄한 산자락 중턱에는 바흐알프제 호수가 그림처럼 누워 있다. 바흐알프제는 설산과 베르니즈 알프스의 봉우리가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듯 대칭을 이루며 아득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갈 길을 멈추고 호수의 정경에 한동안 넋을 잃기도 한다.

그린델발트의 가을 풍경
산악마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축제들 역시 이 일대의 알프스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전통 축제인 인터포크 페스티벌이 매년 펼쳐지고, 가장 높은 고도(2061m)에서 열리는 야외 팝 콘서트인 스노우펜 에어 콘서트와와 스키 챔피언십도 겨울이면 유럽의 청춘들을 열광케 한다.

해가 지면 산악마을의 노천 바에 뒤엉켜 전통맥주인 루겐브로이 한잔을 마신다. 알프스 봉우리 위로 별이 쏟아지고, 몽롱한 가운데 눈을 감으면 모든 것들이 평생 지우지 못할 진한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진다. 글·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정보


교통=스위스의 관문인 취리히, 제네바로 항공기로 이동한 뒤 베른을 경유해 인터라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빌더스빌을 거쳐 그린델발트행나 라우터브루넨행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열차는 산악마을들을 거쳐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까지 이어진다. 산악마을을 제대로 즐기려면 2일 혹은 3일 동안 융프라우 철도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VIP 패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체험=피르스트 정상에서는 알프스를 배경으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거나 시속 90km로 날 수 있는 ‘플라이어’를 타 본다. 피르스트 하산길에 트로이바이크를 이용하면 알프스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구석구석 구경하며 그린델발트까지 내려올 수 있다.

융프라우 철도 개통기념 100주년을 기념해 하더쿨룸에도 ‘풋 브리지’라는 체험시설이 문을 열었다.

숙소·음식=인터라켄의 빅토리아 호텔이나 그린델발트의 그랜드 레지나 호텔 등은 외국 스타들이 머무는 고급 호텔이다. 그린델발트의 롯지(오두막)나 라우터브루넨의 민박집들에 묵는 것도 색다른 휴식의 방법이다.

이 지역 전통 맥주인 루겐 브로이와 화이트 와인, 치즈 퐁듀 등은 꼭 먹어볼 것이다. 융프라우 철도 한국 홈페이지(www.jungfrau.co.kr)를 통해 숙소, 축제 등 다양한 현지 정보와 이동 열차시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글·사진=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aular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