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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푸틴도 관심 갖는 '동북아 전력망' 프로젝트

한-중-러-몽골 4개국 적극적 추진 중
일본-북한 가세하면 1300조 시장 열려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등 동북아시아 역내 국가들의 전력망을 연결하는 이른바 ‘동북아 전력망(동북아 슈퍼그리드: North-east Asia Super Grid)’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동북아 전력망 연결 사업은 1990년대 초에 처음 아이디어가 제시됐지만, 역내 국제관계 문제 등으로 그간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해당 국가들이 실질적인 협력 움직임을 보이면서 사업 추진이 점차 구체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북아 전력망 프로젝트의 추진 배경과 청사진, 파급효과 등을 살펴본다.

  • 동북아 전력망 연결 프로젝트는 경제적 효과는 물론 역내 공동 번영과 평화 달성이라는 정치적, 외교적 효과도 크다.
최근 한 유력 보수 일간지는 “한국전력이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수급 불안을 막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전기를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1면에 비중 있게 보도한 바 있다. 이 기사는 한전이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동북아 계통연계(전력망 연결) 추진을 위한 최적 방안 도출 및 전략 수립 프로젝트’ 보고서를 토대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논평을 내고 “에너지 전력 안보마저 스스로 무너뜨리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자해행위는 하루빨리 중단돼야 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이 신문의 보도는 의도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공격하기 위해 교묘하게 사실관계를 왜곡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동북아 전력망 연결 사업에 대한 논의는 과거 정부에서도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가장 많이 본 뉴스’ 상위 10위 안에 이틀 동안 머물 정도로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어쨌든 ‘가짜 뉴스’ 논란을 떠나 이 일로 동북아 전력망이 다시 한 번 세간의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동북아 전력망의 실체는 무엇일까.

동북아 전력망 프로젝트는 요컨대 동북아시아 역내 국가간에 전력망을 연계하는 사업이다. 현재 동북아 전력망 연결 구상에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등 5개국이 포함돼 있다. 해당 국가들이 양자간 및 다자간 협의를 통해 사업 협력을 논의하고 있는 단계다. 이 프로젝트는 태양광, 풍력 등 청정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와 몽골에서 전기를 생산해 한국과 중국, 일본으로 공급하는 국제 전력망을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전 관계자는 “동북아 전력망 연결 사업은 아시아 대륙에서 지역적으로 편중된 청정에너지원을 공동 개발해 국가간 전력망 연계를 통해 전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청정에너지 자원의 분포는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게다가 청정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대체로 전력 수요가 많은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태양광 자원이 가장 풍부한 적도 지역, 풍력 자원이 넘쳐나는 극지(極地)가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무한한 청정에너지의 활용성이 떨어지는 것을 ‘청정에너지 패러독스’라고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간 광역 전력망을 구축하면 사실상 낭비되고 있는 청정에너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역내 청정에너지 자원 효율적 활용 목표

중국, 러시아, 몽골은 광대한 영토를 가진 데다 풍력, 태양광 등 청정에너지 자원이 매우 풍부한 국가들이다. 특히 몽골의 풍력 및 태양광 에너지 자원은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의 연간 전력 수요량보다 2배 이상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비해 한국과 일본은 에너지 수요가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큰 나라들이다. 따라서 중국, 러시아, 몽골의 청정에너지 자원을 쓸 수 있다면 전력수급 측면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국가간의 전력망 연결 시도는 동북아 전력망 프로젝트가 처음이 아니다.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광역 전력망 추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 ‘북유럽 슈퍼그리드’ 프로젝트는 아주 성공적인 사례라는 평가다. 이 프로젝트는 2009년 독일,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덴마크, 스웨덴,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 북해 연안 국가들의 합의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사업의 골자는 북해 연안의 풍력 및 수력 자원으로 생산한 전력을 회원국들이 함께 사용한다는 것이다. 북유럽 슈퍼그리드 프로젝트는 1단계(2020년), 2단계(2030년), 3단계(2050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회원국 기업들로 이뤄진 ‘FOSG(Friends of the Supergrid)’라는 사업 전담기구가 주축이 되고 있다. FOSG는 청정에너지 이용 확대를 통해 회원국들의 온실가스 감축을 지원하는 동시에 역내 단일 전력시장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북아 전력망 연계 구상이 처음 제기된 것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구(舊) 소련 붕괴 후 러시아 극동지역의 전력수요 감소로 인한 잉여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동북아 전력망 연계 프로젝트가 최초로 검토됐다. 그때는 러시아와 일본의 전력 연계를 주로 검토했지만 양국의 이해관계가 달라 구체적인 사업 진전은 없었다.

그 후 2000년대 초반 한국, 북한, 러시아를 잇는 ‘남북러 전력망’이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는 북한의 전력난 해결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도 이룰 수 있는 묘안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 구상도 남북관계의 정치적 불안정성 탓에 실현되지 못했다.

지지부진하던 동북아 전력망 연계 구상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은 일본 정보기술(IT) 산업의 리더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덕분이었다. 그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REI(Renewable Energy Institute)’라는 재단을 설립하면서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재생에너지 이용 확대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일본이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활용하려면 국가간 전력망 연결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몽골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연결되는 전력망을 구축한다면 몽골 고비사막의 풍부한 풍력, 태양광 자원을 일본에서도 에너지원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동북아 전력망 구상을 꺼내며 협력을 요청한 바 있다.

그 후 동북아 역내 국가 주요 기업들이 손정의 회장과 손을 맞잡았다. 동북아 전력망 연결 프로젝트의 기술적,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한전, 중국에서는 국가전망공사(SGCC)가 소프트뱅크의 파트너로 나섰다.

2017년 한전, 중국 국가전망공사, 일본 소프트뱅크 3사는 한중일 전력망 연계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벌여 기술적, 경제적 타당성을 확인했다. 3사는 현재 한중일 전력망 연계의 구체적인 사업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와 별개로 한전은 한국과 러시아의 전력 연계 타당성 검토를 위한 공동 연구도 진행 중이다. 지난 6월에는 러시아 국영 전력회사 로세티와 ‘한러 전력 계통 연계를 위한 공동 연구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 동북아 전력망 프로젝트는 몽골, 러시아 등에 풍부한 태양광, 풍력 등 청정에너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다.
중-러 지도자는 훨씬 더 큰 전력망 구상

특히 주목할 것은 손정의 회장이 동북아 전력망 연계를 넘어 더 큰 구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동북아는 물론 동남아, 인도까지 연결하는 ‘아시아 슈퍼그리드’를 꿈꾸고 있다. 걸출한 사업 역량과 거시적 안목을 바탕으로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 거대한 비즈니스를 펼쳐나가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해 IT와 에너지 분야가 융합하는 추세라는 점에서 손정의 회장의 승부수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 전력망 연결 프로젝트는 국제협력 사업이기 때문에 실제로 현실화하려면 역내 국가 정부들이 먼저 정치적, 외교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역내 국가들의 분위기는 꽤 긍정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3차 동방경제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전력 협력은 에너지 전환이라는 세계적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고, 전력 협력을 통해 동북아의 경제 번영과 평화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며 동북아 전력망 구축 사업을 공식적으로 제안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러시아, 몽골이 동북아 전력망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특히 시진핑 중국 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각각 ‘글로벌 전력망 연계(GEI: Global Energy Interconnection)’,‘아시아 에너지 링(AER: Asian Energy Ring)’이라는 프로젝트 구상을 이미 천명한 바 있을 만큼 국제 전력망 구축에 적극적이다. 몽골 역시 자국의 풍부한 태양광, 풍력 자원 개발을 통해 경제성장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동북아 전력망 프로젝트 추진을 환영하고 있다.

다만 일본 정부는 아직 동북아 전력망 프로젝트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 소프트뱅크 등 자국 기업들이 외국 기업과 전력 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데 대해서도 관여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섬나라이기 때문에 전력망 연계가 그리 용이하지 않다는 점, 일본 전력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전력회사들이 전력망 연계를 꺼린다는 점 등이 일본 정부가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로 분석된다.

동북아 전력망 프로젝트에 또 다른 변수는 북한이다. 그동안 정치적, 외교적 이유 때문에 동북아 전력망 구상에서 북한은 어쩔 수 없이 배제돼 왔다. 하지만 북한을 뺀 채로 동북아 전력망을 연결한다면 북한을 포함하는 경우보다 투자비용과 기대효과 측면에서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동북아 전력망 연결 구도에 북한까지 포함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북한 비핵화를 위한 남북간, 북미간 협상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면 동북아 전력망 프로젝트의 큰 틀이 바뀔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이와 관련해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하면 에너지 산업이 최대 수혜를 누릴 것”이라며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이 전력망을 통합할 경우 2030년까지 역내 전력시장 규모가 13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북아 역내 국가간에 전력망을 연결하게 되면 경제적 효과 외에도 정치적, 외교적 효과가 상당히 클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동북아 전력망 연계가 전력을 매개체로 삼아 역내 국가들의 상호 협력과 의존성 강화를 이뤄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동북아 커뮤니티’ 건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북아 전력망 연계로 역내의 공동 번영과 평화 체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동북아 전력망의 잠재적 파급효과 중에서 어쩌면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

<박스> 국가간 전력망 연결 프로젝트 사례

▨북유럽 슈퍼그리드: 서유럽 국가들의 재생에너지 이용 확대에 따른 전력계통의 불안정성을 완화하기 위해 국가간 전력망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북해 연안 지역 등의 해상 풍력 발전, 독일의 지상 풍력 발전, 노르웨이의 수력 발전이 주된 에너지원이다.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500GW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남유럽 슈퍼그리드: 사하라 사막의 태양열,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해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게 공급하기 위한 전력망이다. 사하라 사막 면적의 1%에 해당하는 태양열만으로도 지중해 연안 국가 전체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2050년까지 태양광과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한 전력 공급량을 470GW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북아프리카 슈퍼그리드: 콩고의 잉가댐에서 수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이집트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공급하기 위한 전력망이다. 2050년까지 수력 발전을 통한 전력 공급량을 100GW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는 아프리카 전체 전력 수요의 3배에 달하는 용량이다.

김윤현 주간한국 기자 unyon21@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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