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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vs CJ대한통운의 운송지연 갈등에서 드러난 씁쓸한 결말

두 회사 모두 사건의 ‘원인제공자’… 책임 떠넘기기에 허무한 결론만
  • 장보고과학기지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운송지연 책임을 둘러싼 현대건설과 CJ대한통운 간의 법적갈등이 최근 1차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은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현대건설 본사.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kawskhan@hankooki.com

지난 2014년 완공된 장보고과학기지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운송지연 책임을 둘러싼 현대건설과 CJ대한통운 간의 법적갈등이 최근 1차 마침표를 찍었다. 그동안 이 사건에 대해 두 회사는 상대방의 책임을 강하게 묻는 한편 자신들의 책임은 최소화하려 했지만, 결국 서로가 사건 발생에 원인제공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0년 12월 현대건설을 대표자로 하는 컨소시엄은 해양수산부(당시 국토해양부)로부터 제2남극기지인 ‘장보고과학기지’의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장보고과학기지 건설공사는 1988년 현대건설이 완공한 ‘세종과학기지’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대한민국의 남극 연구기지 설립 프로젝트로, 빙하와 오존층 등을 연구하기 위한 연구소 및 해수담화플랜트 등 24개의 시설물을 세운다는 목표로 정부와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는 2012년 9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총 2단계 공사로 준공이 완료됐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건설 측 관계자들은 공사 초기 해빙으로 인한 하역작업에서부터 애를 먹었고, 남극 현지의 매서운 추위와 통신시설 부족 등의 문제에 직면해야만 했다.

때문에 공사 가능일이 연간 60여일에 그치면서 공사비용마저 당초의 금액보다 대폭 늘어났고, 부실시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특히 장보고과학기지 2단계 공사에 필요한 건설자재 등의 화물을 국내와 남극 사이에 운송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잡음이 일었다.

당시 현대건설과 화물운송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CJ대한통운(이하 대한통운) 측이 약정된 기한보다 늦게 운송을 완료했다.

이로 인해 현대건설 측은 장보고과학기지 건설공사에 대한 실질적 공사기간이 늘어났고 추가 공사비용이 발생했다며, 대한통운을 상대로 66억원 상당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국가적 프로젝트인 남극 연구기지 설립 과정에서 발생한 국내 대형건설사와 대형운송업체 간 법적 갈등은 당시 관련 업계와 극소수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았을 뿐, 자세히 알려지지 않으면서 그 경과와 결과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황이었다.

2015년 1월부터 무려 4년 간 이어진 현대건설과 대한통운 사이의 법정공방은 최근 판결이 내려지며 일단락됐다.

  • 지난 2014년 2월 12일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준공식에서 강창희 국회의장과 의원방문단, 극지연구소 관계자, 현대건설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현대건설)
두 회사의 법정공방에서 드러난 각자의 주장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양새로 다소 부끄러운 마무리로 이어지기에 충분했다.

대한통운의 전적인 귀책이었나, 현대건설의 협조 부족이었나

당시 현대건설과의 계약을 통해 대한통운이 맡았던 업무는 총 2차례의 화물운송이었다. 우선 장보고과학기지의 2단계 공사를 위한 자재를 국내 평택항에서 남극 현지로 운송하고, 현대건설 측의 1단계 공사가 완료된 뒤 남은 자재와 현지에 보관 중이던 물품 즉 철수화물을 다시 남극에서 국내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첫번째 운송은 2013년 10월 17일부터 22일 사이 평택항에서 출발해 같은 해 11월 25일 남극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출항을 불과 한 달여 앞둔 9월 말 대한통운 측은 출항에 나설 선박을 기존에 현대건설과 협의한 업체에서 독일선사인 B사의 것으로 긴급히 변경했다.

당시 대한통운 측은 B사의 선박으로 변경한 것에 대해 기존 선박업체에서 보증서 작성을 거부했고, 이 회사의 선박이 남극지역 운항 시 보험사의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등의 부득이한 이유를 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대한통운 측은 B사 선박이 기존 업체의 것보다 적재 가능한 화물의 중량이 낮고, 컨테이너 적재용량 및 항해 속도가 낮아지는 등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현대건설 측에 알렸다.

물론 당시 대한통운 측은 현대건설에 선박의 속도저하 등에 따른 일정지연 가능성에 대해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여러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B사 선박은 예정보다 늦은 2013년 10월 27일에서야 출항에 나섰고, 기존 계약상 예정일보다 약 보름가량 늦은 같은 해 12월 8일에서야 남극에 도착했다. 또 이후 10일 간 하역작업에 시간이 소요됐다.

특히 하역작업이 완료된 뒤 철수화물에 대한 선적작업이 진행됐는데, 대한통운은 현대건설 측에 “철수할 모든 화물을 B사 선박에 적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또 다시 대체 방안을 제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B사 선박은 철수화물 일부만을 선적한 채 남극을 출항했고, 역시 기존 계약보다 약 일주일가량 늦은 시점에 평택항에 도착해 뒤늦은 하역을 완료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건설 측은 운송이 늦어지면서 생긴 공사기간 연장 및 공사비용 증가에 따른 손해, 그리고 남극에서 철수하지 못한 화물의 추가 운송비용 등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적으로 대한통운 측이 계약상 협의된 업체의 선박보다 규모가 작고 속도가 느린 B사 선박으로 갑자기 변경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기존 계약상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대한통운 측은 현대건설 측의 동의가 있었기에 B사 선박으로 변경이 가능했고, 때문에 자사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 준공이 완료될 시점의 장보고과학기지 전경. (사진=연합)
특히 대한통운 측의 주장에 따르면, B사 선박이 철수화물을 충분히 적재할 수 있었음에도 당시 현대건설 측이 철수화물의 제원에 관한 정보를 제때 제공하지 않는 등 선적 절차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아 문제가 커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히 남극 현지의 특수한 기후상황 등으로 철수화물 일부를 선적하지 못했을 뿐, B사 선박과 자사 측의 귀책사유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책임축소ㆍ전가 ‘티격태격’에 부끄러운 마무리만

지난달 23일 법원은 이 사건 1심 선고 내리면서 대한통운 측이 현대건설에 일부 손해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도, 현대건설 측에도 당시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봤다.

현대건설 측은 대한통운이 B사 선박을 선정함으로써 화물운송 및 공사기간이 지연됐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재판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건설 측의 공사기간 지연 주장은 일종의 책임축소 및 책임전가로 보일 여지가 있었다.

B사 선박이 기존 일정보다 늦게 남극에 도착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공사기간의 지연은 다른 곳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이 사건 재판을 통해 사실로 인정된 바에 따르면, 이미 현대건설 측은 2012년 1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진행된 1단계 공사부터 일정을 지연시켜 주요 공정이 당초 계획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에 해당하는 2단계 공사의 지연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B사 선박의 운송지연이 아닌 1단계 공사 지연에 따른 결과라고 판단했다.

특히 현대건설 측은 B사 선박의 운송지연과는 무관하게 이미 선박의 평택항 출항 시점에서부터 2차 공사를 시작해 남극 도착 전 50여일 동안 공사를 진행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 재판부는 “현대건설은 운송이 지연됨으로써 2단계 공사 중 어떤 공사가 어느 정도 지연됐는지를 전혀 특정 못하고 있다”라며 “대한통운 측 운송지연으로 인해 2단계 공사 자체가 지연됐다고 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미철수화물 발생 문제와 관련해서도 앞서 언급한 대한통운 측 주장이 일부 사실로 인정됐다.

실제로 B사 선박의 적재용량은 남극에서 선적된 철수화물량보다 더 많은 화물을 적재할 여지가 있었다. 이에 대한통운 측은 남극현지에서 철수화물 적재 작업을 진행할 당시 최대한의 화물을 선박에 실을 수 있도록 선적 계획대로 화물을 제공할 것을 현대건설 측에 요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당시 현대건설 측은 선적 계획상 순서대로 화물을 제공하지 않았고, 당초 대한통운 측에 제공한 철수화물의 제원과 실제 철수화물의 제원에 차이가 있었다는 점 역시 사실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겨우 B사 선박에 철수화물을 일부 적재하고 평택항에 도착했음에도, 반입송장과 적재된 화물이 일치하지 않아 수개월 간 통관이 지연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대한통운 측이 철수화물을 적게 적재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현대건설 측이 철수화물 제원에 관한 정보를 적기에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현대건설 측이 지연된 공사기간을 만회하기 위해 철수화물의 선적 절차에 제대로 협조하지 아니한 채 공사를 지속했다”라고 설명했다.

  • CJ대한통운 측 역시 책임을 축소하고 현대건설 측에 이를 전가하려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정황이 드러났다. (사진=한민철 기자)
물론 법원은 미철수화물 발생의 주요 원인은 B사 선박의 적재용량이 철수화물을 운송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던 점으로, 대한통운 측의 계약상 채무불이행의 책임은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대한통운 측 역시 책임을 축소하고 상대방에 이를 전가하려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정황이 몇 가지 드러났다.

이 사건 재판부를 통해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대한통운 측 주장과는 다르게 B사로의 선박 변경에 관해서 두 회사 간의 직접적인 협의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한통운 측은 철수화물 선적이 불가능할 것인지 여부를 바로 알 수 없고 화물 선적을 마무리 하는 단계에서 알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대한통운 측은 당시 3개월 가까운 남극 체류기간 중 철수화물에 대한 선적이 진행된 지 겨우 1개월 만에 현대건설 측에 일부 철수화물을 선적할 수 없다고 통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대한통운 측이 B사 선박으로의 변경 사실을 알리자, 현대건설 측은 선박변경으로 인한 차질이 생길 경우 모든 책임이 대한통운에게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다시 말해 아무리 현대건설 측이 선박 변경에 동의를 했을지라도 대한통운이 책임을 면하게 된다고 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현대건설과 대한통운 간의 장보고과학기지 건설공사 과정에서의 운송지연 책임을 둘러싼 갈등은 두 회사가 상대방을 향한 불편한 상황을 빚어내며, 다소 부끄러운 마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kawskha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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