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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북한의 핵 항복을 원한다"
美행정부 대북압박 강화
핵동결 '상응조치'에 냉담한 반응


지난달 21~22일 한ㆍ미ㆍ일 워싱턴 협의에 이어 이 달 초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한일 연쇄 방문에 나서는 등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관련국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 누구도 양보할 것이라는 신호는 없다. 미 행정부는 느긋한 태도로 북한에 대한 압박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때문에 북핵 2차 6자회담이 4월로 미뤄질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중국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여는 만큼 자칫 6자회담의 장기 공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금주가 2월 중 6자회담 개최의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 동결 대 상응조치’ 주장에 대해 한미 양국에서 긍정적 반응이 나온 한달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미 의회조사국 래리 닉시 박사는 지난달 29일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계획 자체가 미 행정부에 없어 보인다”며 6자회담 틀 자체의 소멸까지 전망했다.

북 핵 전문가들은 지난달 지크프리드 헤커 전 미 로스앨러모스 핵 연구소장 등 미국 민간ㆍ의회 대표단의 방북(6~10일) 결과가 최근 북한 핵 지형을 읽을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이들의 북한 영변 핵 시설 시찰 결과는 지난달 21일 헤커의 미 상원 국제관계위 청문회 증언을 통해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공개됐다. 2002년 12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추방한 이후 베일에 가려 있던 북한의 핵 능력이 처음으로 외국 과학자들의 눈에 객관적으로 평가됐다.

헤커는 1994년 제네바 합의로 가동이 중지됐던 5MW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으며, 8,000여개의 폐연료봉을 저장하던 수조가 비어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여러 가지 과학적 정황으로 미뤄 플루토늄인” 물질도 봤다고 증언했다.

▼ 북한에 선 핵폐기 요구



△ 북한 영변 핵시설을 시찰하고 돌아온 키스
루스 미의원보좌관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예상 외로 미지근했다. 되려 이들의 방북 이후 사실상 북한의 항복선언을 의미하는 ‘리비아식’을 언급하고 고농축우라늄(HEU) 핵 프로그램의 모호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강경으로 한 발 더 나간 모양새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말 워싱턴에서 열린 한ㆍ미ㆍ일 협의 뒤 이수혁 외교부 차관보는 북한에 ‘선 핵 폐기와, HEU 의혹 해소, 리비아식 해결’을 요구했다. 이 차관보는 협의 전까지 “북한의 핵 동결 대 상응조치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었다. 북한이 미 민간 대표단의 영변 핵 시설 시찰을 허용한 의도와 상반되는 반응들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헤커가 북한 외무성 김계관 부상, 리근 본부 대사와 주고 받은 얘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은 헤커에게 그 동안의 과장된 수사 대신 북한 핵 문제 지연에 대한 초조함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고 말했다. 헤커가 미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북한 당국자와 나눈 대화도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보고서를 토대로 재구성 했다. (헤커는 6~10일 방북 기간 동안 평양에서 김 부상과 세 차례 얘기를 나눴고, 리 대사는 헤커 일행을 안내했다. 헤커는 그러나 대화 장소나 시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첫 만남 김 부상은 판에 박은 주장으로 말을 시작했다. 북 핵 해결의 첫 단계는 핵 활동의 ‘동결’일 뿐 미국의 ‘폐기’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고, 합리적 해결책은 (북미의) 동시행동 조치라는 것이다. “당신들이 영변 핵 시설을 시찰하면 (미국도)동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것이다.”

김 부상은 헤커 일행에 대한 큰 기대감을 표했다. “이번 영변 시찰이 (북미간)교착 상황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방문으로 핵 활동의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고 (그러면 미국의) 잘못된 가정이나 판단도 줄어들 것이다. 이번 방문은 크나 큰(very great) 상징적 중요성이 있다.”

헤커 등이 “공식 정부 대표단도, 사찰팀도 아니다”고 못을 박았지만 김 부상은 멈추지 않았다. “(핵 과학자인)헤커가 있으니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다” “아주 이례적인 허용이다” “(핵 시설)접근을 충분히 허용할 것이다.”

헤커는 이에 대해 미 상원 보고에서 “북한 당국자들은 공개적으로 플루토늄 추출을 얘기하고 억제력(억지력의 북한식 용어)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믿어주지 않는데 상당히 몸이 단 듯 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속마음 김 부상은 미국의 냉담한 태도에 대한 조바심을 드러냈다. “시간을 흘려보낸 것은 미국에 이롭지 않다. 시간이 더 흐른다면 우리의 핵무기 능력은 양적 질적으로 성장할 텐데 결코 미국에 좋은 결과가 아닐 것이다.”

김 부상은 한 발 더 나가 미국에 대한 불안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당신들이 미국에 돌아가 북한이 이미 핵 무기를 가졌다고 말하면 미국이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다. 미 행정부가 당신들이 내린 결론을 대북 공격에 이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미국은 플루토늄 재처리 완료 등을 가지고 우리가 금지선을 넘었음이 증명됐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미국이 (공격)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북한이 모험을 감수할 만큼 조급해 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핵 억제력이 없다? 헤커의 보고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북한의 핵 억제력 대한 확신을 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시찰이 이어지고 핵 억제력에 대한 대화가 구체화되면서 주도권은 헤커에게로 점점 넘어갔다.

헤커는 우선 북한의 ‘핵 억제력 보유, 강화’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김 부상과 리 대사 등에게 “핵 무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나는 영변에서 북한이 핵 억제력을 보유했는지 판단할 근거를 보지 못했다”고 못박았다.

그는 핵 억제력은 ▦플루토늄 메탈을 만드는 능력(재처리 능력), ▦핵 무기(관련 부품)를 디자인하고 제조하는 능력, ▦이전 수단(미사일)에 탄두화 하는 능력이라고 ‘강의’한 뒤, “첫 번째 능력 밖에 못 봤다”고 잘랐다. 그는 또 “핵 억제력은 미국과 구 소련처럼 동등하게 핵 무장한 초 강대국 등 좀더 예측 가능한 상황에 맞는 개념”이라며 “북미 간에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헤커는 북한 당국자들의 반응은 소개하지 않았다.

헤커는 방북 마지막 날인 10일에는 핵 억제력에 대한 세부 사항을 얘기할 수 있는 인사를 소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리 대사는 “약속을 잡기엔 시간이 충분치 않다”며 비켜갔다. 헤커 일행은 “우리는 핵 억제력에 대해 명확하지 않은 점이 많다고 생각하며 이를 미국에 보고할 것”이라고 북측에 통보하고 동의를 받은 뒤 방북을 마무리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입력시간 : 2004-02-0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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