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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파트가 남긴 것. 팔레스타인의 새 불씨 '비자금'
최소 10억달러로 추정되는 비자금, 권력향배와 더불어 세계이목 집중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이 사망한 가운데 최소한 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비자금의 행방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라파트 수반은 향년 75세로 지난 11일 오전3시30분(한국 시각 오전11시30분) 프랑스 파리의 페르시 군병원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친 팔레스타인의 국부다.


- 아라파트, 자금 비밀운영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본부 인근에 나붙은 아라파트 초상화 앞에서 아라파트 경호대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40년간 팔레스타인에 군림해 온 아라파트 수반은 방대한 자금을 비밀스럽게 운영해 왔다. 지난해 미국 CBS TV 프로그램인 ‘60분’은 자치정부 재무부가 고용한 짐 프린스와 미국인 회계사들이 아라파트 수반의 회계 장부를 조사한 결과를 공개, 그가 10억 달러 가까운 개인 자금을 몰래 비축해 둔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아라파트의 비자금 규모는 적어도 1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1995년~2002년 아라파트가 공식 회계 자금 중 9억 달러를 개인 비밀 계좌로 빼돌렸다고 지난해 밝혔다. 이스라엘의 세금 환급분과 담배, 연료, 시멘트 독점 사업에서 나온 수익이 국고 대신 아라파트가 관리하는 은행 계좌에 들어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접한 이스라엘 총리는 불쾌해 했으나, 그의 보좌관들은 아라파트가 평화 저항 세력을 다스리기 위해 불투명한 돈이 필요하다며 총리에게 설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CBS측은 아라파트의 비자금이 코카 콜라 회사, 전화 회사, 조세 피난처로 유명한 케이맨 제도의 벤처캐피털 등에 분산 투자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재무장관을 지낸 자위드 알 구세인은 1996년 그가 장관직을 사퇴할 당시 PLO가 세계 각지에 비밀리에 투자한 돈이 30억~50억 달러에 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PLO의 투자는 몰디브의 항공사에서 그리스의 해운 회사, 나나 농장,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 아랍 세계에 산재한 각종 투자 등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수십 명에 달하는 아라파트 측근들의 이름으로 등재돼 있다고 은퇴한 PLO 재정 관계자가 밝혔다. 자금 추적에 나선 세계 은행의 한 팔레스타인 전문가도 같은 의견을 냈다.

이 부분에 정통한 한 팔레스타인 관리는 “상당한 자금이 이미 없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투자 회사가 망하거나 측근들이 돈을 들고 잠적한 경우도 있으며 측근들이 사망하고 가족에게 상속된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아직도 PLO의 자산과 현금 보유액이 25억~4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아랍 세계가 PLO에 지원한 돈과 1990년대에 서방 세계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원조한 자금이 허술하게 관리됐다는 얘기다.

결국 언제나 자금의 사용 내역을 밝히지 않는 아라파트의 특성 때문에 돈의 규모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가 돼 버렸다. 이런 이유를 들어, 아라파트 수반이 사망하기 전이라도 팔레스타인 의회가 공식 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일기도 했다.

- 아라파트가 조달했던 자금규모는 얼마나 될까

알 구세인은 “ 아랍 세계의 큰 돈이 1979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해 10년간 PLO가 해마다 2억 달러 정도를 받았고 이중 8,500만 달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이었다”고 증언했다. PLO회계자금인 팔레스타인국가기금을 총괄 관리했던 그는 이 기간에 기금에서 매달 아라파트에게 1,025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말했다. 이 돈은 PLO전사와 유가족에 대한 지급 명목이었으나 아라파트는 보안을 이유로 사용 내역을 밝히지 않았다.

아랍 세계의 자금은 1990년 그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사담 후세인의 편을 들면서 끊어졌다. 대신 후세인이 아라파트에게 3번에 걸쳐 1억5,000만 달러를 주었다고 알 구세인은 전했다. 알 구세인은 2000년 그가 거주하던 아랍에미리트연합 법원에서 팔레스타인 공금 650만 달러 횡령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아라파트?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후 서방측 지원도 많이 받았다.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원된 서방 자금은 65억 달러에 달한다.

- 프랑스 검찰, 비자금 수색

영국의 더 타임스에 따르면 프랑스 사법 당국이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아라파트가 부정 축재한 것으로 알려진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 수색에 나섰다. 2001년 이래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부인 수하(41) 여사 명의로 된 스위스 및 프랑스 은행 계좌로 입금된 ‘정체 불명의 뭉칫돈’이 아라파트 비자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지난해 프랑스 검찰이 예비 조사를 벌인 것이다. 일단 수하 여사는 ‘부적절한 금융 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을 전면 부인하면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음모에 프랑스 검찰이 농락당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 검찰이 탈세 및 돈 세탁 혐의로 조사를 벌인 근거는 1,100만 달러가 수하 여사의 계좌로 입금됐다는 IMF 2003년 보고서이다. IMF 보고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계좌에서 빠져 나간 돈 가운데 1억2,000만 달러가 인티파다(봉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자치 정부 계좌로 역송금 됐으나 나머지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1999년 한해에만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재무부 계좌에서 8억9,760만 달러가 해외로 유출됐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가 발간된 뒤 아라파트는 미국 회계사들을 고용, 회계 장부를 조사하도록 허용했으며 지금까지도 이들의 감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신문 하아레츠도 1995년부터 2000년 사이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계좌와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으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돈이 유출된 것이 확실하다고 11월 8일 보도하기도 했다.

- 왜 많은 돈이 필요했나

아라파트 자신은 검소하게 살았지만 부하들의 충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라파트는 각종 투자 사업과 은행 계좌 명의를 심복들의 이름으로 만들었다. 충성심도 확보하고 조사와 압수도 피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알 구세인은 말했다. 그는 이 모든 내역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라파트 뿐이라고 지적했다. 아라파트가 이와 관련된 유언이나 기록을 남겼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아라파트는 지난 2월 인티파타 운동 지도자들과의 회합에서 질문이 잇따르자 “자산이 없다”는 한마디로 일축했다고 그 당시 한 참석자가 전했다. 아라파트의 재정 고문인 모하메드 라시드는 아라파트가 부자가 아니며 “전세계 어느 곳에도 개인 재산을 갖고 있지 않다”고 TV방송에서 밝혔다.

하지만 포브스지는 아라파트의 개인 재산이 3억 달러로 2003년 기준으로 세계의 왕족과 독재자들 중 6위라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정보원 출신인 샬롬 하라리는 아라파트가 망명 등의 비상시에 대비해 7억 달러를 빼돌려 놓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자금 누가 아나

아라파트의 자금과 밀접한 인물은 라시드와 아라파트의 부인 수하 여사이다. 라시드는 지난 10년간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국고에서 전용한 수억 달러를 관리해 왔기 때문이다. 살람 파예드 재무장관은 이 돈이 다시 정부 기관의 통제로 되돌아 왔다고 밝히고 있다. 아라파트와 결혼한 지 13년째인 수하 여사도 파리에 살면서 매달 10만 달러를 팔레스타인 당국으로부터 송금 받아 자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계좌 정보를 부인 수하 여사나 자치 정부 권력 이양에 돌입한 아흐마드 쿠라이 팔레스타인 총리 등 주변 인물들에게 넘겼는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처분했는지에 대해서는 추측만 무성한 상태다.

한편에서는 아라파트 수반의 임종을 며칠 앞 두고 수억 달러의 비자금이 스위스 은행에 비밀리에 예치돼 있거나 스위스 은행 계좌를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지 모른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스위스 정부측은 타계한 아라파트 수반의 비자금이 자국 은행에 예치돼 있다는 주장을 12일 공식 부인했다.

더 타임스는 아라파트가 사망함에 따라 권력 뿐만이 아니라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을 물려받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입력시간 : 2004-11-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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