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로 훨훨 날아… 국내 '걸음마'기술 개발·투자에 전력… OS·자율주행차 등 선진 기술 주도네이버·카카오, 신기술 개발보다 기존 영역 침범 중?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세리머니에서 이세돌 9단(오른쪽)과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가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사용된 바둑판을 들고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이세돌-알파고'의 대국이 알파고의 4승으로 마무리됐다. 결과는 이세돌의 패배였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이 9단에게도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번 대결의 진짜 승자는 알파고도, 이세돌도 아닌 '구글'이다. 구글은 이번 대국을 통해 전 세계에 자신들의 AI(인공지능) 기술 개발 능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이번 대국으로 천문학적인 마케팅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구글의 뛰어난 기술에 우리 기업들 또한 AI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채찍질을 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하지만 섣부른 투자는 효과를 얻지 못한다. 우선 국내 IT 기업들의 소프트웨어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짚어봐야 한다.

대국 전부터 꽃놀이패 쥔 구글

이번 대국의 정식 명칭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이다. 딥마인드는 구글이 지난 2014년 약 6억2500만달러에 인수한 스타트업 기업이다. 알파고는 이번 대국에서 구글 본사가 있는 미국 국기가 아닌 영국의 국기를 걸고 대국에 임했다. 딥마인드가 영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알파고의 아버지'로 알려진 데미스 허사비스가 대표로 있다.

'신의 한 수'가 된 딥마인드 인수를 통해 구글은 전 세계에 AI 관련 1등 기술을 갖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게 됐다. 천문학적인 비용에 버금가는 마케팅 효과를 누리게 됐으며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을 통해 알파고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 또한 얻게 됐다. 대국 기간 동안 구글의 시가 총액은 58조원 이상 늘어났다. 알파고의 승리로 대국을 위해 걸었던 상금 100만달러도 회수하게 됐다. 구글로서는 이번 대국의 결과가 어쨌든 간에 절대로 지는 게임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특히 구글은 뛰어난 마케팅을 벌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1세대 IT 석학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는 "구글은 AI보다 OS나 데이터베이스에 더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 대국을 통해 AI 기술을 선보인 건 대국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홍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바둑돌을 쥐고 장고하는 이세돌 9단과 그 맞은편에 있는 모니터 화면, 그리고 알파고의 '대리인'은 바둑과 AI에 관심이 없던 일반인들까지도 생중계 화면 앞으로 불러 모았다.

지난 1998년,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생이었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공동 설립한 '구글'은 포털사이트를 비롯해 전 세계 IT 기술을 선두하고 있다. 세계 검색엔진 시장의 67%를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통해 애플과 쌍벽을 이루고 있으며 최근 세계적 IT 기업들이 연달아 뛰어든 자율주행차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렇듯 구글이 AI를 비롯한 신기술 개발에 성과를 보이면서 우리 기업들의 소프트웨어 개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내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AI 열풍, 소프트웨어 산업 발목 잡을 수도"

지난 일주일, 우리는 AI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른바 '알파고 쇼크'를 경험했다. 그러나 충격에 머물러 있기보단 우리 나라의 AI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산업 수준을 점검해 봐야 한다.

자연히 우리나라 IT 기업인 네이버, 카카오 등에 시선이 쏠린다. 국내 포털 점유율의 경우 네이버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다음이 20%를 확보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검색시장에서 맹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구글이지만 국내에선 네이버와 다음에선 밀리는 형국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검색시장의 높은 점유율을 무기로 언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네이버와 카카오지만 사업 방향에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많다. AI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보다는 기존 사업자의 영역에 침투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최근 네이버와 카카오는 O2O(Online to Offline) 시장을 기반으로 한 여러 서비스를 개설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 진출은 골목상권 침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2013년 부동산 중개 서비스를 열었다가 중단한 바 있으며 카카오 역시 뷰티, 택시 등 여러 분야로 발을 넓히며 기존 사업자들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지적을 듣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를 무대로 소프트웨어 기술을 개발하기보단 국내에서의 경쟁에 치중한다는 쓴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이경전 교수는 "네이버나 카카오가 R&D에 집중해 어려운 기술을 개발하기보단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네이버의 경우 라인을 통해 일본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나 한편으로는 라인의 출발점이 카카오의 모바일 메신저를 견제하기 위해 탄생됐다는 점에선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이정희 교수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골목상권 침투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은 향후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국내 IT 기업들 또한 소프트웨어 발전을 게을리하는 것은 아니다. 네이버는 지식인 서비스에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머신 러닝' 기능을 사용 중이다. 카카오 역시 검색엔진에 머신 러닝 기능을 적용했다. 하지만 구글의 기술 개발 및 투자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도 못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세돌-알파고 대국을 계기로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AI에만 집중하는 것은 오산이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는 "AI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기초가 아닌 심화된 분야이다. 삼성전자가 하드웨어 부문에서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기초인 반도체 분야를 잡았기 때문이다. AI 열풍이 분다고 해서 AI부터 접근한다면 소프트웨어 발전에 실패를 얻게 될 것"이라 지적했다. 또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대국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건 DB를 잘 구축해놨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의 기본인 DB 구축과 OS 개발 등을 먼저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중앙대학교 이정희 교수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청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기업의 자본력을 통해 기술 개발에 치중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