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힘 모아 대기업 횡포에 맞서

‘카피캣’ 등장으로 골머리 앓는 스타트업

혁신적 아이템 있어도… 결국 대기업 품 선택

스타트업, 대기업 맞서 연대 통해 방안 모색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연이어 O2O(Online to Offline) 영역에 진출하면서 비슷비슷한 서비스를 펼치는 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단연 사업 영역은 겹칠 수밖에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먼저 개척한 시장에 연이어 진출하는 대기업들은 스타트업들에겐 큰 시련을 주고 있다. 이미 유저를 모집하는 것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업에게 밀린 스타트업들은 사업을 접거나 대기업에게 관련 아이템을 매각하는 방안을 택하곤 한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최근 업계에서 이름난 스타트업들은 협의체 결성을 통해 힘을 모으는 추세다. 서비스 연동을 통해 유저를 공유하며 영역 확장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력을 약속한 스타트업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리모택시는 폐업, 서울버스는 카카오 품에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바람을 타고 스타트업들의 창업 지원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스타트업들에 대한 지원을 바탕으로 하는 액셀러레이터, 엔젤투자 등이 등장했으며 대기업들 또한 각종 사회 환원의 일환으로 스타트업 지원 재단 운영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신선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을 할 수 있다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더라도 곧 투자 자금을 유치하지 못해 대기업에 인수되는 경우도 있으며 대기업에 후발주자로 내놓은 아이템에 밀려 영영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이른바 대기업의 ‘카피캣(Copy cat)’ 논란은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큰 시련을 주고 있다. 최근 들어 O2O 서비스의 확장으로 스타트업들은 물론, 기존 대기업까지 O2O 시장 진출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세부 서비스가 겹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거나, 비슷한 아이템에 거대 자본을 더해 출시해 밥그릇을 뺏어가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카피캣’ 논란으로 가장 큰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최근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카카오’이다. 카카오는 지난 해 임지훈 대표이사 취임 후 O2O를 기반으로 서비스 영역을 넓혀가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러한 사업 방향에 맞춰 무시무시한 속도로 O2O 신규 서비스를 선보이는 중이다. 특히 교통 플랫폼에선 택시, 지하철, 버스 등 대부분의 인프라를 장악했다. 특히 혁신적 사업모델이라 불리는 ‘카카오택시’는 택시호출 서비스의 원조격이라 불리는 리모택시의 아이템을 참고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카카오택시의 호출률은 지난 4월 5일 기준으로 1억건을 돌파했다. 카카오택시가 카카오톡 사용자를 기반으로 ‘승승장구’하는 반면, 리모택시는 결국 폐업의 길을 걷게 됐다.

카카오는 지난달 25일에는 ‘카카오버스’를 출시했다. 카카오버스는 전국 주요 도시 버스의 실시간 운행 정보, 노선, 정류장 위치 등을 제공한다. 카카오는 카카오버스를 시작으로 상반기 중 전국 주요 지하철 노선 및 경로 정보 제공 서비스인 카카오지하철을 출시하고 새로운 지도 서비스인 카카오맵을 연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카카오 정주환 O2O/커머스 사업부문 총괄 부사장은 “카카오는 한국사람들이 하루 평균 1.8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이동’ 영역에서 카카오 서비스를 통한 라이프 스타일의 편리한 변화를 제안해 나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리뉴얼된 카카오버스는 버스 실시간 안내 앱의 원조인 ‘서울버스’를 개편한 것이다. 서울버스는 지난 2014년 다음에 인수됐다. 서울버스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유주완 프로그래머가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고등학생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출발했던 서울버스는 결국 대기업 다음의 품에 안기게 됐고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하면서 현재의 ‘카카오버스’로 재탄생하게 됐다.

카카오플레이스 역시 자주 언급되는 아이템이다. 지난 2013년 출시된 카카오플레이스는 당초 친구관계에 기반을 둬 맛집 및 여행지를 공유하는 서비스를 제공했으나 올해 3월 리뉴얼을 통해 맛집 추천 서비스를 강화하며 망고플레이트 등과 아이템이 겹치게 됐다.

비단 카카오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모 통신 대기업이 한 스타트업의 사업 아이템이있던 ‘반려견 페스티벌’ 행사를 도용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스타트업 대표는 반려견 위치 추적 서비스를 홍보해주는 목적으로 통신사와 협업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그 과정에서 노출된 아이디어를 통신사가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에 대해 통신사 측은 “기존부터 진행해 오던 아이디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지난 4월 25일자 주간한국에 보도된 SK플래닛과 스타트업 ‘오큐파이’의 저작권 침해 분쟁 역시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 아이디어 침해 문제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게임에서도 ‘카피캣’ 논란이 있었다. NHN의 ‘라인팝’은 선데이토즈의 히트작인 ‘애니팡’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시작부터 불리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대결

스타트업들은 대기업의 거대 자본에 맞서 스스로 살 길을 구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리딩 스타트업들은 힘을 모아 협의체인 ‘얼라이언스’ 결성에 나섰다.

얼라이언스의 첫 시작은 서비스 연동이다. 숙박 O2O 기업 ‘야놀자’는 야놀자 앱을 통해 손쉽게 차량 대여, 배달 음식 주문, 맛집 검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쏘카, 요기요, 망고플레이트와의 서비스 연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야놀자는 지난 1월에도 사용자 편의성을 강화하기 위해 카카오택시, 김기사와의 연동을 통한 길안내 서비스를 시작한 바 있다.

이번 연동으로 야놀자 앱에 접속한 후 해당 버튼을 클릭하면 카카오택시(택시 호출), 김기사(내비게이션 길안내)와 함께 쏘카(주변 차량 빌리기), 망고플레이트(주변 맛집 검색), 요기요(주변 배달음식 주문) 서비스 아이콘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모델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의 초기 모델로 향후 각 스타트업들은 얼라이언스를 통해 발전시킬 수 있는 협력 방안을 여러 가지 내놓을 전망이다.

지난달 27일에는 O2O 얼라이언스 공개 포럼 ‘D.TALKS about O2O’ 행사가 열렸다. 이날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은 치열한 O2O 경쟁 속에서 자생력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선의의 동맹’임을 꼽았으며, 이를 위해 얼라이언스 협력 체결을 바탕으로 서비스 시너지를 확대하는 방안은 장기적으로 시장 확대 및 고도화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입을 모았다.

얼라이언스의 결성 목적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에 맞서 좀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신생 스타트업은 시장에 안착하기 쉽지않고 시장을 선도하는 스타트업 또한 흑자를 내기 어렵다. 결국 스타트업들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인수되거나 기존 오프라인 사업자들에 대한 인수 및 지분 투자의 길을 걷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이른바 ‘카피캣’과 같은 사업 아이템을 낸다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들은 유저 1명을 모집하는 데도 많은 돈이 든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앱 다운로드를 통해 신규 유저를 모을 수 밖에 없는 스타트업 입장에선 웬만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아닌 이상, 장기적으로 서비스를 활용하는 유저를 확보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호기심으로 앱을 다운받았지만 이 유저가 장기적 고객이 될 지도 불명확하다.

이렇게 유저 한 명, 한 명을 모집하는 것이 소중한 상황에서 네이버나 카카오처럼 포털 사이트나 메신저를 통해 손쉽게 유저를 끌어들일 수 있는 대기업과는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큰 기업들이 신규 O2O 서비스를 시작할 경우, 서비스를 홍보하는 탄탄한 채널들을 갖고 있어서 신규 스타트업보다 훨씬 더 시장진입이 유리하다.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얼라이언스를 통한 협업 및 이벤트로 자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대기업의 ‘카피캣’을 금지할 방안은 없다. 스타트업 기업들은 대기업에 맞서는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자생력을 키우는 게 과제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O2O 사업을 기반으로 한 만큼, 온라인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탄탄한 현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오프라인과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기업의 잇단 사업 영역 침해를 스타트업 혼자 막아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장애물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만 찾으려는 형국이다. IT업계에서도 골목상권 침해를 금지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필요하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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