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시행 후 공룡 이통사 웃고, 중소판매점 울고

보조금 제한 뒀지만 중소 판매점 몰락 부추겨

대기업 유통점, 우회적 방법으로 보조금 및 혜택 제공

휴대폰 유통업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요구

지난 2008년, 이른바 ‘재벌 빵집’ 논란은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빵집을 비롯해 음식점 등 식품 및 유통 쪽에 주로 머물렀던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해 논란이 이제는 IT업계에도 번진 모양새다.

신도림 테크노마트 근처 지하 상가에는 소규모의 휴대폰 판매점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휴대폰을 사기 위해 삼삼오오 몰려 있는 손님들을 쉽사리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 그런 발걸음은 뜸해졌다. ‘입소문’을 타고 좀 더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살 수 있었던 구조가 ‘단통법’의 시행으로 불법이 됐기 때문이다.

엉뚱하게도 이 단통법은 소비자들의 만족 대신 중소 유통점들의 몰락을 앞당기고 있다. 대기업들은 자체 유통망, 타 기업과의 제휴, 임직원 할인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보조금 지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인프라가 없는 중소 유통점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공정한 경쟁’

지난 23일,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와 참여연대, 통신공공성포럼, 통신소비자협동조합, 경제민주화네트워크, 전국‘을’살리기운동본부, 전국유통상인연합회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통신재벌 3사에게 이동통신유통업 골목상권 위협과 침탈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등은 대기업 통신 3사의 골목상권 침해로 생존권에 위협을 받고 있다며 동반성장위원회 측에 이동통신 유통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할 것, 또 이동통신 판매점ㆍ대리점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특히 중소 이동통신 판매점 및 대리점들은 단말기 유통법, 이른바 ‘단통법’ 시행 후 벼랑 끝에 서게 됐다고 주장했다. 협회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 후 중소 판매점 매장 수는 1만2000곳에서 1만1000곳으로 10% 감소했다. 하지만 통신기업 3사의 직영점은 2014년 1100여점에서 2015년 1480여점으로 35% 증가했다. 특히 대기업 대형 유통점인 롯데 하이마트의 경우 2013년 322점에서 2015년 440점으로 37%나 늘었다고 지적했다.

단통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유통점이 고객들에게 주는 보조금을 제한하지만 대기업 직영 유통점들의 경우, 우회적 보조금과 별도의 프로모션으로 불공정행위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이통통신 업계 관계자들은 “공정한 조건에서의 경쟁을 원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대형 유통점들은 유통 점포 전용 카드할인, 쿠폰할인, 마일리지 적립 등 대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해 고객들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단통법으로 보조금에 제한선까지 생긴 중소 유통점은 이러한 프로모션은 꿈도 못 꾸는 처지이다.

벼랑 끝에 선 중ㆍ소형 유통점들은 이동통신 유통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보호해달라 주장하고 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동반성장위원회에 중소기업 적합업종 신청서를 제출할 것이라 밝혔다. 또 20대 국회 초반에 중소기업적합업종보호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관련 협회들과 힘을 모을 계획이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조형수 변호사는 “단통법 시행 후 통신 3사는 마케팅 비용의 절감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그러나 이동통신 골목상권들은 매출 감소로 적자 및 폐업 위기에 놓였다. 현재 제도에선 통신 3사의 직영점 확대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자영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권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소 유통점들의 몰락은 청년 일자리 감소와도 이어지고 있다. 매장을 운영할 수 없을 정도로 수익이 악화되면서 점장-직원의 2~3인 체제를 이어왔던 매장들이 사장이 직접 운영하는 1인 매장으로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1000개의 매장이 줄어들며 약 3000개의 일자리가 소멸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이동통신 유통업은 40세 미만 청년층의 고용 비중이 64%로 청년 실업 해소에도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휴대폰 사면 텔레비전 준다? 꿈도 못 꾸는 마케팅

특히 단통법은 소비자층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지만 중소 유통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를 만들고 있다.

단통법 시행 후 정부는 정해진 보조금 외에 혜택을 더 주는 휴대전화 유통점들을 엄격한 잣대로 단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중소 유통점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대기업 유통점들은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우회적 방법으로 프로모션이 가능하다.

이동통신협회 등은 삼성 갤럭시 S7의 유통에 더해진 차별적 프로모션을 예로 들었다. KT는 G마켓 내 ‘슈퍼브랜드딜’ 코너에서 구매를 할 경우 신용카드 결제 금액의 10%를 즉시 할인해줬다. LG유플러스는 유플러스샵에서 가입시 단독 27%의 할인 혜택을 제공했고 하이마트는 현대 제휴 카드로 통신료를 납부할 경우 최대 20만원 상당의 통신료 혜택을 제공했다.

현재 단말기 유통법 2조 9항에 따르면 ‘지원금’은 이동통신단말장치 구매가격 할인, 현금 지급, 가입비 보조 등 이동통신단말장치의 구입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이용자에게 제공된 일체의 경제적 이익을 말한다. 협회 등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해 고시하는 상한액을 통해 지원금을 지급할 수 없으나 직영점과 대형 유통은 우월한 시장 지위와 대기업 인프라를 바탕으로 재원을 조달해 우회적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같은 우회적 보조금들은 중소 판매점을 배제한 차별적 프로모션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종천 이사는 “대형 유통점들은 휴대폰 판매와 동시에 웨어러블 기기, 휴대폰 액세서리 등 작은 품목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냉장고 등 가전제품과도 연계 마케팅이 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소 유통점들에게 똑같은 경쟁을 벌이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기업 계열 전자제품 전문 쇼핑몰의 경우, 가전제품 판매에 주력으로 나서야 하지만 휴대폰 판매까지 손을 대면서 중소 유통점들을 더 어려운 처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삼성, LG 등 대기업들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에도 나서고 있다. 삼성과 LG는 자사 임직원, 임직원 지인을 대상으로 한 우회적 보조금을 지급했다. 사실상 중소 유통점들은 꿈도 꿀 수 없는 마케팅 방법이다.

이와 동시에 정부가 대기업들에 대한 규제는 소홀히 한 후 중소 유통점에게만 엄중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협회 등이 대기업의 유통 프로모션이 불법이 아니냐 지적하면 정부는 오히려 방학이나 개학 등 휴대폰 수요가 발생할 때는 프로모션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반문하곤 한다”며 미래부나 방통위가 ‘대기업 봐주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했다. 신제품이 출시 되는 시기나 휴대폰 수요가 급증하는 타이밍에는 어느 정도 단속을 느슨하게 하지만 그 ‘느슨한 단속’ 또한 대기업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통3사는 단통법 시행 후 마케팅비 절감을 통해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KT의 지난해 마케팅 비용은 2조8132억원으로 2014년의 3조1528억원에 비해 10.8% 감소했다. KT는 전년보다 약 3400억원을 아낄 수 있었다. LG유플러스 역시 마케팅 비용을 절감했다. 2014년 2조962억원에서 작년 1조9987억원으로 4.7% 감소했다.

중소 유통업들은 단통법 시행 후 1년간 ‘고통의 시간’을 보내왔다. 업계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단말기 판매업을 지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되더라도 대기업의 진출을 강제로 막을 순 없다. 현재 동반성장위가 운영하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제도는 대기업의 진출을 자제하는 권고 수준에 그친다. 업계 또한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협회 등은 단말기 유통법에 대한 특별법 지정을 요구하는 추가적 대책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애초에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단통법의 원래 취지인 단말기 가격 인하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10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9월30일부터 10월 18일까지 시민 75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을 통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65.4%(498명)가 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결국 단통법이 원래 취지인 ‘차별 없는 할인’에 대해 소비자들이 만족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최근에는 오피스텔을 개조해 ‘음지 영업장’을 만들고 불법적 보조금을 챙겨주는 신종 단말기 판매 수법이 등장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법적으로 보조금을 제한하면서 손님을 끌어올 수 없게 되자 이러한 부작용까지 생겨난 것이다. 유통점들 또한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대형 유통점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고 업계 종사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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