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Tㆍ이통사 책임 미뤄, 특혜 의혹도

이동통신유통협 “스캐너 도입 받아들일 수 없다”…서울행정법원에 가처분 신청

KAIT “이동통신사가 선정한 모델이다”…이동통신사 “KAIT가 계약 주체”

성능 문제 생기자 특혜 의혹 불거져…협회 “공개 입찰 아닌 수의 계약 의문”

신규 스마트폰을 구입할 때면 신분증 전체를 복사해야 한다. 고객은 혹시 내 정보가 유출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유통점들은 혹여 위조된 신분증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이동통신사 직영점을 비롯해 중소 유통망에도 같은 모델의 신분증 스캐너가 공급됐다. 설치 비용을 ‘상생’ 차원에서 이동통신사가 부담하는 등, 취지는 매우 좋다.

그런데 이 신분증 스캐너를 둘러싸고 중소 유통망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이동통신사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신분증 스캐너, 계약 주체는 어디인가

휴대중소 유통점으로 구성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와 이동통신사가 결정한 신분증 스캐너 도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국 휴대전화 유통망에 설치되는 신분증 스캐너는 고객들의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전면도입됐다. 이 신분증스캐너는 은행에서 사용하는 전산 스캐너와 비슷한 형태로 신분증 위조 여부를 판단한 후 개인정보는 저장하지 않은 채 이통사 서버로 정보를 전송한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신분증 스캐너의 도입에 대해 몇 달 전부터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신분증 스캐너 도입이 골목 상권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라는 것이다. 협회 측은 “방문판매나 다단계 판매 등에는 별도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데 일선 유통점에서는 스캐너를 사용하지 않으면 개통이 불가능하다. 이는 중소유통망에 대한 또 다른 차별대우”라 밝혔다.

협회는 방송통신위원회를 대상으로 서울행정법원에 신분증 스캐너 도입을 전면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놨다. 12월 둘째주 쯤 조정 기일이 잡힐 것으로 전망된다. 협회는 조정 결과에 따라 향후 KAIT와 이동통신사를 상대로 한 가처분 신청 역시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또 KAIT와 신분증 스캐너 업체 간 수익 사업 연관성을 지적했다.

KAIT는 보임테크놀로지와 수의 계약을 맺고 신분증 스캐너 업체를 선정했다고 한다. 협회 측은 공개 입찰이 아닌 수의 계약이라는 점 또한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신분증 스캐너 계약의 주체에 대해 KAIT는 이동통신사를, 이동통신사는 KAIT를 가리키며 서로 떠넘기는 형국이다. KAIT 관계자는 “신분증 스캐너는 지난해부터 이동통신사 직영 판매점이 사용해 왔다. 이통사의 전산 시스템이 보임테크놀로지의 신분증 스캐너를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두고 있어 혼란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제품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수의 계약을 맺고 보급하는 것은 KAIT의 몫이나 이미 이동통신 3사가 보임테크놀로지의 신분증 스캐너를 택해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불필요한 전산 오류를 막기 위해 기존에 이통사가 사용하던 제품을 계약했다는 설명이었다.

KAIT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SK텔레콤 측은 “계약의 주체는 KAIT가 맞다. 중소유통망과의 상생을 위해 이동통신 3사가 비용을 댄 것은 사실이지만 주체는 KAIT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주최자를 알 수 없는 사업이라 꼬집었다. 협회 관계자는 “법적 대응을 하려 하는데 KAIT와 이통사가 서로 떠넘기고 있다. 양쪽 다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라 밝혔다.

자주 고장 나는 스캐너 vs 기능 숙지 제대로 안됐을 뿐

이번 신분증 스캐너 보급 문제가 논란이 된 것은 신분증 스캐너의 성능과도 관련이 있다. 문제가 된 신분증 스캐너의 모델명은 IDS600v이다. 지난 6월부터 이동통신사 직영점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에서는 당시에도 신분증 스캐너의 성능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직영점에선 신분증 스캐너의 성능이 영 시원치 않아 창고에 두고 사용하지 않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후 전면적으로 신분증 스캐너 도입이 결정됐을 때 협회 측이 스캐너의 성능을 문제삼았으나 KAIT에서는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협회 관계자는 성능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예전 버전이 그대로 보급됐다고 주장했다. 협회 관계자는 “스캐너의 성능 오류에 대해선 유통점들뿐만이 아니라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KAIT 관계자는 도입 초기에는 스캐너 활용법이 제대로 숙지가 안돼 오류가 생겼다고 이해하는 유통점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설명이 이뤄져 원활히 사용되고 있는 상태라 밝혔다. KAIT 관계자는 “현재 유통점에는 95% 이상 보급이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객의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설치한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전 판매점에 설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SKT 관계자는 “신분증 스캐너 성능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보급된 스캐너는 은행 등 금융권에서도 널리 쓰이는 제품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신분증 스캐너 구입을 강제하는 것이 불공정거래라 주장했다. 협회는 “휴대폰 가입 시 신용등급 조회, 본인 휴대폰 문자 인증, 신용카드 인증 등을 모두 처리하는 상황에서 특정 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영업제한”이라 강조했다.

이에 대해 KAIT는 “신분증 스캐너는 이동통신 3사가 중소 유통점에 대한 상생 취지로 재원을 출연하고 실구매 비용이 없도록 지원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신분증 스캐너는 이통사의 이용 약관에 반영돼 있으며 이통사는 전기통신사업법을 준수하는 범위에서 이용자의 개인정보 보호 및 유통점의 불편법 영업 행위 근절을 위해 운영하는 것으로 불공정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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