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노래는 마술 같다. 때론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을 오래 전 추억으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옷을 사러 갔을 때 정말 나에게 딱 어울린다 싶은 진짜 내 옷 같이 느껴지는 옷이 있듯이 노래도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최근 각종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통해 과거의 명곡들이 수도 없이 리메이크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엔 '임자'가 따로 있는 경우가 참 많다. 이 노래는 이 가수가 주인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오리지널 가수가 따로 있는 노래들 말이다.

얼마 전 중견가수들이 서바이벌 경연을 벌이는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한국 록의 명곡인 '아름다운 강산'의 가수가 이선희로 표기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랬다. 그 노래의 오리지널 가수는 록밴드 <신중현과 더 맨>의 리드보컬 박광수이고 이선희 이전에도 이미 수 십 명의 가수가 취입을 했었다. 실제로 노래를 작사, 작곡한 신중현은 활동금지에서 벗어난 1980년에 결성한 밴드 <뮤직파워>를 통해 노래를 직접 불러 히트까지 시켰었다. 이선희는 무수한 리메이크 가수 중 한 명이지만 빅히트를 시키며 폭넓은 대중에게 노래의 우수성을 알린 공로 때문에 일반 대중은 당연히 그녀의 노래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가요 명곡들 중 히트를 터뜨린 가수보다 먼저 노래를 부른 오리지널 가수가 있는 경우는 무수하다.

전인권이 부른 '사노라면'은 한동안 구전가요로 알려졌지만 쟈니리가 노래한 '내일은 해가 뜬다'가 원곡이다. 정미조의 대표곡 '개여울'과 조용필의 대표곡 '돌아와요 부산항에', 김연숙의 '그날', 이수만의 '파도'도 원곡이 따로 있다.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친 김국환에게 음악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해준 '꽃순이를 아시나요'의 오리지널 가수도 조용필이다.

왜 이 같은 일이 수도 없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는 독특한 금지 문화의 아픔을 간직한 한국 대중음악계의 시스템이 낳은 결과일 수도 있고 가수 혹은 작사, 작곡자의 문제로 빚어진 개인적 결과일 수도 있다.

'그때그여인' 따가운 눈총

1978년 제 2회 대학가요제 본선 출전 이후 단숨에 '대학 가요제의 이단아'로 떠오른 심수봉의 창작곡 '그때 그 사람'은 7080세대 최고의 명곡으로 각인되어 있다. 당시 매일 같이 TV, 라디오의 가요 프로그램은 심수봉 일색일 만큼 열풍이 몰아쳤던 그 때, 그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26 시해 사건의 현장에 연루된 '그 때 그 여인'으로 한동안 세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비련의 주인공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사건 후 시야에서 사라진 심수봉에 대한 궁금증은 오히려 관심을 증폭시켰었다.

코미디언 출신 가수 방미가 부른 '올 가을에 사랑할거야'는 가을 시즌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불후의 시즌 명곡이다. 방미의 6집 타이틀곡으로 발표되어 빅히트를 터뜨렸던 이 노래 역시 오리지널 가수가 따로 있다. 심수봉의 '순자의 가을'이다.

활동금지 기간을 딛고 일어난 심수봉은 1980년 6월 3집을 발표하며 재기를 꿈꿨다. 그 해 11월 심수봉은 박호태 감독의 영화 '아낌없이 바쳤는데'의 주제가를 직접 부른 것은 물론이고 직접 출연까지 해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심수봉의 컴백만으로도 영화는 개봉 이후 관객 5만을 돌파하는 흥행몰이에 성공했고 홍콩으로 수출까지 성사되었다.

1979년에 만든 드라마 주제곡이자 영화OST인 '순자의 가을'은 그녀의 활동을 또 다시 제약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처음 노래가 발표되었을 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5공 정권이 출범하자 노래 제목에 당시 '영부인의 이름이 나온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를 당했다. 막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노래가 아까워 제목을 변경해 다시 취입하려 했지만 결과는 가혹했다.

방미에 의해 빅히트

결국 이 노래는 제목을 '올 가을엔 사랑 할꺼야'로 변경하고 가사 일부를 수정해 1983년 후배 가수 방미에 의해 빅히트가 터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984년 그녀의 방송 출연 금지 조치는 해지되었고 심수봉도 그 때의 아쉬움을 달래려 '올 가을에 사랑할거야'란 제목으로 다시 취입하는 웃지 못 할 사연을 남겼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