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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나는 한 마리 개가 되어 / 축축하고, 음침한 사망의 숲을 헤집고 다녔다 / 아무렇게나 자고, / 아무렇게나 먹으며, / 아무 것에다 짖으며, / 아무 데에나 침을 흘렸다 (…) 등골이 오싹한 한 여름날의 꿈.'

중견 목판화가 윤여걸(55)은 지난 여름 작업실에서 살았다. 그리고 꿈을 꿨다. 여름 날의 꿈, '하몽(夏夢)'이다. 개인전에 부치는 작가의 마음을 짧은 글로 대신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느낌이 다르다. 두텁고, 볼륨감이 있다. 한지를 여러 장 덧붙여서 질감을 십분 살려낸 표면 위에다 판화를 찍어낸다.

홍익대 동양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국립미술대학을 수료한 윤여걸은 1980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목판화 작업을 시작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애니메이션 작업에도 주력했다. 여름날 꿈에 나타난 세상이 아주 친숙한 것도 이런 작업 과정을 거친 때문이다.

'윤여걸 개인전 - 하몽'은 여름 날 꿈에서의 생명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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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치열한 현실을 비유하는 그 꿈은 그리 편안한 것이 아니다. 나이브(Naive)하게 자연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원시적 표현성이 곳곳에 숨어있다. 여름 날 숲 속을 헤맨 작가는 자연에 대한 관조보다는 거친 현실적 삶의 알레고리로 꿈을 설정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현실을 역설적으로 꿈 속인 숲 속에 투영했다.

이번 개인전은 지난 십 수년 간 진행해 왔던 판화, 애니메이션, 만화 작업과는 또 다른 지평에 있다.

나무판을 깎고 다시 그 위에 페인팅을 하는 일종의 회화다. 그러나 단순한 회화의 지점에 머물러 있지 않다. 작은 회화 원본을 판화, 만화, 애니메이션의 영역으로 다양하게 복제하고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원 소스 멀티(One Source Multi Use)의 상업적인 전략과 개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윤여걸 개인전 - 하몽'은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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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기자 cha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