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 백두산 목판화는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화면일 것이고 다른 어떤 이에게는 색다른 화면일 것이다. 실사 출력의 카메라워크 영상과는 다른 그의 미술 작품에서 백두산 문예학의 중요함을 새삼 일깨운다.
2008년에 고구려 문화유산 답사단이 편성되어 중국 랴오닝성(요녕성) 일대를 탐방했을 적에 화가 김억이 이에 참가한 것은 국토문예미술의 새로운 시야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 그는 타임머신 탐험자가 되어 고조선의 하늘, 고구려 왕도와 산성, 압록강과 요하 일대에 산재하는 문화유적들을 목판영상 입체 화폭으로 창출해내고 어떤 면에서는 복원해 내었다.
장엄하고 웅대한 백두산을 그는 또한 당연히 탐구하였는데 이전에는 ‘장백 폭포’라 부르기도 했던 ‘비룡 폭포’의 목판화가 우선 사경(寫經)과 실경에서 더 진전된 진경(眞景)의 거대 공간구성이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리면서 물길이 뻗어 내리는 원초의 감성을 그는 표현하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백두산 천지와 비룡 폭포 목판화는 필설(筆舌)로 나타내지 못할 ‘절대 경치’를 돋을새김으로 표현코자 하는 그의 화심(畵心)을 표출하고 있다.
14.4km의 둘레에 213.3m의 평균 깊이, 그리고 수면은 해발 2,257m의 고도가 되는 천지(天池)는 문자 그대로 ‘하늘 연못’이다. 동-남-서의 세 방향은 16개 연봉으로 둘러싸이고 북쪽으로만 물길을 틔워 비룡 폭포∼송화강으로 흘러내린다.
분단 한국인의 ‘백두산 사모곡’은 국경을 넘고 장벽을 헤쳐야 하는 ‘님의 행진곡’이 되어오고 있다. 이에 확인해보고 싶다. 백두산은 과연 어떠한 거대 영상이고 거대 담론인가.
나의 오랜 친구인 화가 이반은 한국-중국 국교가 이루어지던 1992년에 먼저 한라산을 찾아 백록담의 물을 담고 이어서 백두산에 올라 천지의 물과 백록담의 물을 혼례, 세례하는 나름대로의 행위 미술 제전을 가졌던 바 있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생명 평화의 두 줄기 생명수를 그는 합수, 화해하여 일통(一統)하는 예업(藝業)을 이루어 보았노라 했다.
백두산은 19세기로부터 이미 어지러운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하여 20세기의 격변 시대를 겪어냈거니와 이러한 어지러움을 지워낸 21세기의 백두 경관을 우리는 새롭게 맞이하고 싶고, 찾아내야 한다.
백두산은 태초에 우주산(宇宙山)이면서 세계산을 이루어온 신화를 갈무리해오고 있는데, 물론 더 이상 신단수(神檀樹)의 아이콘을 찾아내려 할 수는 없게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백두산 대장엄 인문주의’의 정신과 그 맥류(脈流)를 놓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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