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고려궁지 북장대에 올라 송악산을 바라보다 61x180㎝ 2010년 한지에 다색목판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여 앎과 모름을 똑부러지게 분간해야만 제대로 아는 것이 된다는 공자 말씀이 있다.

나는 강화도를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는가. 김억의 강화도 목판화첩은 우리가 모르는 강화도를 보여주려 한다. 그냥 무심코 덤덤하게 지나쳤던 갯벌과 산 언덕과 해협을 그는 유심히 세세하게 목판 판각으로 붙들었다. 그에게 붙들린 강화도가 말을 걸어온다.

강화 랜드마크 황산도 갯벌

"그냥 평범한 섬인 것이 아니지? '황산도 갯벌'이라는 작품을 제대로 살펴보라구. 이 갯벌은 세계 4대 간석지의 하나라 하고 여의도 면적의 52배에 달한다고 한다는데?"

황산도 갯벌은 북쪽으로 새롭게 개통된 초지대교가 놓이고 남쪽에는 동검도의 육로화와 순환도로의 건설 등으로 훼손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표적인 강화 섬의 랜드마크이다. 지리학자 최영준은 무엇보다도 '갯벌 간척사'에 초점을 맞추어 강화도를 살펴야 한다고 했는데 마이산의 전등사 일대는 별도의 섬이었다는데 이를 간척 사업으로 통합하였다는 것이니 황산도 갯벌에서 이러한 간척사를 역사적으로 고찰해볼 필요가 있겠다.

강화염하 용두돈대 분할도 (원본)487.0 x 40.0 ㎝ 2000년 한지에 목판
외세 맞선 용두돈대

"'용두돈대'는 왜 저렇게 툭 튀어나온 거야? 성이 잔뜩 난 용머리처럼 생기기는 했는데 저 돈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용두돈대' 목판화는 하늘 위에서 아래로 부감하는 경관이니, 해협 요충지의 하이퍼 리얼리즘 부각의 새로운 발견이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어냈음에도 이제껏 광성보 용두돈대는 거센 격랑의 외세(外勢)에 돌출되어 있어도 위풍이 당당하기 그지없구나.

"고려 무신란 시대에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하여 왕궁 터를 잡은 '고려궁지 북장대'…, 뭔가 특별한 게 있나?"

특별한 것이 있다. 화가는 북장대에서 오만가지 감회를 다 품어보았던 것인가. 하나의 목판화면 속에 과거(고려궁지), 현재(복원된 북장대), 접근 불가(송악산)의 영역을 포개놓고 있다. 서로 다른 특성의 장소를 3중으로 중첩시키고 있다. 국토 시간의 우여곡절이여, 국토 공간의 사무친 회한이여!

강화 황산도 갯벌 61x92㎝ 2010년 한지에 다색목판
송악산은 '임진북-예성남 정맥'이라 한다. 임진강 북쪽과 예성강 남쪽 사이로 뻗어 있는 백두대간 13정맥 중의 하나이다. 목판화는 송악산만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정맥 전체를 아로새긴다. 이 그림에서 맨 왼쪽에 삼각형으로 솟구친 산이 덕물산(288m)인데 최영 장군을 신으로 섬기는 굿당이 많았다고 한다. 그 오른쪽에 말안장처럼 낮은 구역이 서관대로(의주로)의 길목인데 그 너머로는 의적 임꺽정의 산채였다는 청석골이 있다. 그 오른쪽이 고려 개경 사람들의 공동묘지 구역이었다는 만수산(228m)인데 이방원의 시조에 나오는 '만수산 드렁칡'은 곧 이 산을 지목한 것이기도 했다. 마침내 삼각형의 자태가 아름다운 송악산(488m)이 의연히 목판화의 중앙 부분에 자리하는데 높이 보다는 넓이를 넉넉히 확보하여 주위의 산하를 압도시키고 있다. 그 오른쪽의 보다 큰 삼각형이 오관산이고, 다시 그 오른쪽 뒤의 넓은 삼각형이 천마산(762m) 연봉이 된다.

과거-현재-미래 품은 강화

북녘 산하는 임진강-한강-조강-애기봉 등지의 여러 구역에서 전망해볼 수 있으나 북장대(北將臺) 조망은 강화 북녘에 놓인 장대가 품어온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엮어보게 한다. 타임캡슐의 저장소이면서 타임머신의 터미널이 되는 것이 아닌가. 강화도의 강화(江華)여! 임자를 만나고 보니 그대의 화려함이 더욱 마냥 벅차 오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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