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진남교반 132x 67㎝ 2009년 한지에 목판
'미래학'이라는 학문이 있고 미래학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다. 여러 저서를 통해 한국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로는 우선 앨빈 토플러가 있다. 1980년에 펴낸 '제3의 물결'이라는 저서에서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이은 제3의 물결로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었다.

피터 드러커는 대량생산 체계에 따른 고도산업사회 전개에 관해 분석하였는데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친한파'임을 자처했다. '단절의 시대'라는 저서에서 그는 특히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큰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러한 드러커가 이런 어록을 남긴 바 있다.

"내가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은 하나의 큰 폐허였다. 그러나 시골의 골짜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지금은 공해가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거의 파괴해버렸다. 자연환경을 되살리는 것은 한국의 정치가와 기업가들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의 하나이다."

이에 한국 정치가와 기업가들에게 묻게 된다. 대량생산의 고도산업사회가 더 이상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는 아니 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한국의 자연'을 되살리기 위한 과제를 과연 어찌 해결하고자 하는지 제시해 주어라. '개발 독재'라거니 '압축 성장'이니 하던 시대는 어서 빨리 마감시켜야 한다. 더구나 '토건 자본'의 개발 이익과 투기 이익으로 국부(國富)를 형성해온 측면이 있다면, 농어촌의 해체와 환경 파괴와 오염으로 야기되는 민빈(民賓)의 여러 양상들이 참으로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국토문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절박하게 목도하고 있다.

낙동강의 상류지대를 살펴보면 대체로 3강의 물줄기를 모으는 형세이다. 황지-안동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본류, 봉화-영주-예천으로 흘러오는 내성천, 그리고 속리산과 조령산 일대에서 내려오는 하천들이다. 이 중에서 세 번째에 해당되는 상류 지역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산 벼랑에 막히고 암초에 부딪쳐서 소용돌이를 치게 되는 여울목이 있다. 경북8경의 제1경으로 꼽는 진남교반-고모산성-토끼벼리(토천) 일대이다. 가은천(속리산 방면에서 내려오는 하천)-조령천(조령산 방면)-신북천(운달산 방면)의 세 물줄기가 뒤죽박죽의 형세로 합류되는데 오정산(805m)과 어룡산(617m)이 V 자 형태로 곤두서 있어 물길이 곤두박질을 친다. 이 지대가 영남대로의 길목을 이루게 되니 전통시대에는 '관갑천(串岬遷) 잔도(棧道)'라고 하였다. 하천을 꿰고 산 허리를 파헤쳐 간신히 뚫어놓은 오르막길 험로라는 뜻이다.

상주 경천대 133x47㎝ 2009년 한지에 목판
김억 목판화 '진남교반'은 관갑천 일대 잔도의 타임머신 입체 영상을 압축 저장해놓고 있다. 전통 도로(영남대로) 시대의 경관은 화면 중앙부에 보이는 진남관, 고모산성 성곽과 오정산 산허리의 숲길 풍경으로 살아남고 있으나 이미 더 이상 도로는 아니게 되었다. 근대기술의 지방도, 국도, 산업도로, 고속도로가 마구잡이로 '병목현상'의 쏠림 상황을 보여주는데 가관이 아니라 참으로 꼴불견의 추악한 형세이다. 초기 건설의 지방도와 교량은 이미 활용되지도 않는데 과연 이를 '도로 박물관'이라 할 수 있을까. 국토의 파괴, 곧 '삽질 국토'의 난맥상 현장 학습장이라 할 수 있을까.

김억 목판화 '상주 경천대'는 간신히 유지되어 온 낙동강의 전통 경관을 담아내고 있으나, 이미 4대강 사업으로 이 마저 훼손되기 시작했음을 증언해주는 기록화가 될 공산이 커졌다. 그의 목판화로서 낙동강의 아픔을 우리의 슬픔으로 각인해보게 되는 바이다. 우리의 미래학은 '지속 가능한 국토'의 지속 가능을 부인하면서 전개될 수 있을 것인지 정치가와 기업가들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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