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큼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민족도 없다. 좋은 일에도 슬픈 일에도 노래가 빠지는 법은 없다. 각종 모임에서 '여흥=노래'란 등식이 공식화된 것은 노래가 그만큼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와 있다는 증거다.

과거 각종 국가적 행사 때 애국가 제창은 기본이고 학생들은 교가, 군인들은 군가, 회사원들은 사가를 불렀다. 1970년대의 국민은 '새마을운동 노래'를 들으며 모두 기상을 했고 청와대에서는 한일 수뇌가 '가라오케 정상 외교'를 벌이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처리한 후, 측근들을 청와대나 안가로 초청해 주연을 즐겼다. 그 자리에 당대의 인기가수와 배우들이 동석했다는 사실은 이제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반골가수로 정권에 미운털

2012년은 대통령 선거와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온 나라가 선거 열풍으로 휩싸일 것은 자명하다. 요즘은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이 자신의 애창곡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시대다. 대중가요를 통해 자신의 부드러운 이미지 구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역대 대통령들이나 유명 정치인들이 어떤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지에 대해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노래에 관한 에피소드는 공적 공간이 아닌 사적인 공간에서 대부분 이뤄진 탓도 크지만 대중가요를 천박하게 인식했던 대중적 시각도 한 몫 했다. 즉 과거에는 애창곡 공개 여부가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과거와 달리 대중적 파급력이 막강해진 대중음악을 소홀하게 대할 대통령후보는 이제 아무도 없다.

1948년 19세의 나이에 '눈물의 오리정'으로 데뷔한 박재홍은 '유정천리', '울고 넘는 박달재', '물레방아 도는 내력', '경상도 아가씨'등을 비롯해 무려 550여곡을 발표하며 1950~60년대를 풍미했던 당대의 인기가수다. 구수한 음색이 매력적이었던 그의 노래들은 격변의 시대상을 노래했고 상처받은 서민의 마음을 어루만진 가락이었다. 특히 한국전쟁 시기에 발표된 히트곡 '물레방아 도는 내력'은 전쟁 속에서도 추잡한 모습을 보였던 부산 정치 파동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귀거래사로 여겨진 의식 있는 노래였다. 그때부터 반골가수로 여겨진 그는 정권에 의해 미운털이 박혔다.

반야월이 작사하고 김부해가 작곡한 그의 대표곡 '유정천리'는 격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당하는 수난을 안겨준 사연 많은 노래다. 1959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 주제가인 이 노래는 윤보선 대통령의 애창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선을 앞둔 1960년 이 노래는 자유당을 비판하는 내용의 가사로 둔갑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대통령 선거일을 한 달 정도 남겨두고 대선 후보였던 조병옥 박사가 미 육군병원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4년 전인 1956년 대선 때도 해공 신익희 선생을 잃었던 국민들은 연이어 같은 일이 반복되자 망연자실했다. 조 박사의 서거를 기화로 그동안 쌓여왔던 민초들의 울분이 대폭발했다. 1960년 3.15 부정선거는 자유당 정권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사표를 내고 귀향하는 공무원과 양심선언을 하는 경찰관들이 속출했다. 교사들도 '차마 얼굴을 들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며 학교를 떠났다.

조병옥박사 추모곡 되어

박재홍의 '유정천리'는 이런 혼탁한 시류를 타고 노래 가사가 바뀌어 대선을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대통령후보 조병옥 박사의 추모 곡으로 불리며 시대의 명곡이 되었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경북 전역의 고등학생들이 '유정천리' 곡조에 맞춰 조박사 추모 노래를 부르자 교사들은 추궁을 받을까봐 학생들의 호주머니를 뒤져가며 가사가 적힌 쪽지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바뀐 가사내용은 이렇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길을 따라/ 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 박사도 떠나갔네 /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당선 길을 몇 구비냐/ 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 오네/ 세상을 원망하랴 자유당을 원망하랴/춘삼월 15일에 조기선거 왠말인가/ 천리만국 타국 땅에 박사 죽음 왠말 인가" 과연 지금의 대중가요들이 이 같은 시대적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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