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1000 년 역사를 간직한 체코 프라하. 해마다 수천만명의 관광객이 흥청거리는 오래된 도시에는 지난한 사연들이 바닥에서 스멀거렸다. 사진은 블타강을 잇는 까를교와 프라하성.
음영 짙은 도시는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1000년 역사를 간직한 체코 프라하. 해마다 수천만명의 관광객이 흥청거리는 오래된 도시에는 지난한 사연들이 바닥에서 스멀거렸다.

도시는 소리 없이 울고 있는데 귓전에는 빠른 비트의 음악이 맴돌았다. 그 사이를 스며드는 둔탁한 발자국 소리들, 얼굴에 흐르는 빗물…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문을 걸었지만 어느새 나흘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똑같은 거리를 반복해서 걸었다. 60년대 피로 얼룩진 '프라하의 봄'의 배경이 됐던 바츨라프 광장을 아침마다 가로질렀으며 우연히 길을 걷다 보면 해골인형의 천문시계와 틴 성당으로 대변되는 구시가지 광장을 지나쳐야 했다. 또 해질녘이면 습관적으로 까를교 주변을 서성이며 프라하성의 야경을 감상했다.

미로 같은 길을 거닐면서도 그 거리를 쉽사리 떠나지 못했던 것은 익숙한 것에 대한 미련과도 같았다. 잔뜩 찌푸린 하늘, 2차 대전의 생채기로 검게 그을린 건물들. 깊은 가을로 접어 드는 도시는 한껏 우울함으로 가득한데 이곳을 찾은 이방인들만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도시를 거니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손에 여행 안내 책자를 들고 있었으며, 음식점 보다 많은 듯한 환전소는 밤늦게까지 손님맞이를 위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거 아세요. 환전할 때는 BUY가 아니라 SELL 요금을 확인해야 한다구요. 환전수수료가 얼마인지도 챙기셔야 하구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이틀 먼저 프라하에 도착했다던 남자는 고급 정보인 듯 환율에 대한 얘기로 마무리 인사를 했다. 그 남자의 손에는 "여동생에게 주려 한다"며 프라하 인형극 무대에 나왔던 작은 목각 인형이 들려 있었다. 지친 다리를 쉬게 할 틴 성당 뒤편의 광장은 새벽마다 깔끔하게 청소되는 도시의 다른 공간과 달리 낙엽이 뒹굴고 있었다.

광장에서 만난 엽서 노점상 청년의 모습이 도시와 닮아 있어 무작정 엽서 한 장을 샀다. 엽서에는 프라하성의 '황금소로'가 담겨 있었다. 하늘색, 분홍색이 어우러진 파스텔톤의 골목은 분명 전날 봤던 그 길인데 관광객들과 기념품가게가 사라진 사진은 더욱 예뻤다.

금을 만드는 연금술사들이 살던 황금소로 골목의 22번지 집은 젊은 시절 프란츠 카프카가 글을 썼던 공간이었다. 3~4m 남짓한 방에서 수척한 얼굴의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카프카는 딱정벌레처럼 몸을 숨긴 채 '변신', '성', '소송' 등의 글을 써내려 갔다.

유대계 독일인으로 프라하에서 태어나 유대인 집단 거주지 게토에서 자라났던 카프카의 뒷모습을 막연하게 떠올렸는데 광장의 엽서장수 청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9코르나짜리 황금소로가 담긴 엽서를 집어 드는데 예상대로 청년의 눈이 깊고 수척했다. 그는 "지에쿠유밤"이라며 고맙다는 짧은 체코 인사로 내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프라하성으로 향하는 까를교에는 중독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까를교는 보헤미안의 애환과 600년을 함께 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와 프라하성을 연결하는, 블타바 강의 가장 오래된 다리였다. 다리의 난간 양쪽에는 체코의 성인 등 30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중년의 악단과 거리의 화가들 역시 까를교의 한 단면을 장식했다. 체코가 낳은 감독인 카렐 바섹이 "프라하성과도 바꿀 수 없다"고 칭송한 까를교는 영화, 드라마, CF의 단골 촬영 장소로 그 사랑을 이어가고 있었다.

프라하성 성비트 성당.
밤이면 프라하 성과 까를교의 야경을 외면한 채 외딴 곳에서 체코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을 마셨다. 낮이어도 비가 내리면 카페 귀퉁이에 앉아 필스너 우르켈을 마셨다. 빈 속에 마시는 맥주는 우울함을 몽롱하고 알싸하게 변질시켰다. 맥주를 마시면 달그락 거리는 발자국 소리와 차바퀴 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도시의 골목을 가득 메운. 발바닥을 차갑게 붙들던 갈퀴같은 돌길들… 나흘 동안 헤매었던 우울한 미로를 가까스로 빠져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또 속절없이 도시의 빗물이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맥주 필스너우르켈 톡쏘는 맛 일품
여행팁

가는 길=대한항공과 체코항공이 인천~프라하 직항편을 공동운항한다. 열차를 이용할 경우 독일 뮌헨이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들어가면 가깝다. 입국 때 별도의 비자는 필요 없다. 불시에 티켓 검사를 하니 버스 등을 탈 때 무임승차는 삼가야 한다. 최근에는 인근 중세마을 체스키 크르믈로브까지 둘러보는 여행이 인기다.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르믈로브까지는 열차로 3시간 소요.

먹을 곳, 묵을 곳=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필스너 우르켈을 꼭 마셔본다.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프라하에서는 구시가 인근의 'U Kilina'와 메트로A선 스타로메스카역 근처의 'U Spirku' 등에서 체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한국 민박집들도 20여 곳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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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황금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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