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죄를 네가 알렸다."

사극 속 사또들은 언제나 동헌에 앉아 압송해온 죄인에게 근엄하게 호령한다. 그리고 형장은 두둑한 곤장으로 매질을 한다. 끌려온 자는 말도 하지 못한다. 세종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가 배경이라면 완전히 틀린 설정이다.

조선시대의 법 집행이나 형장을 떠올릴 때면 낙형, 자자형, 주리 틀기, 능지처사 같이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한 형벌과 고문을 먼저 생각한다. 과연 그랬을까. 그동안 조선의 법률 문화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탓에 오해와 편견이 있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심재우 교수가 조선 사회를 뒤흔든 사건과 형벌의 형장을 수사보고서, 형사 판례집 등을 통해 꼼꼼하게 추적해 '죄와 벌의 사회사'를 정리했다. 조선의 법률 체계가 나름의 합리성과 일관성을 지녔지만 능지처사와 같은 몇몇 잔인한 육형(肉刑)으로 평가 절하됐음을 지적한다. 또 전근대 시대 동서양 모두 사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수준의 형벌 체제를 갖추었는데 동양의 법률만이 미개한 듯 인식하는 것은 19세기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이란 것이다.

춘향의 목에 씌운 칼은 여성에게 사용이 금지된 형구였고, 곤장은 뼈를 추스르지 못할 만큼 위력이 대단해서 군법을 집행할 때만 사용했을 뿐 고을 수령은 사용할 권한이 없었다.

심 교수는 '대명률'을 기본으로 한 조선의 법률과 형벌을 소개하면서 동시대의 중국, 일본의 법률 체제와 형벌, 고문 방식, 감옥, 형구의 생김새와 쓰임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법률과 형벌을 보면 그 사회가 보인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로 인기를 모았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유죄 판결에 대해 "대법원 판결은 '나꼼수'때문"이라며 수감됐다. 무죄를 주장하는 지지자들을 뒤로 하고 감옥으로 들어갔다.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법은 합리적으로 집행돼야 법으로서 존재 가치를 갖게 된다. 도서출판 산처럼, 1만8,000원



이창호기자 ch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