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싸움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자리한 두 부부. 그러나 대화는 어른 싸움으로 흘러가고, 미셸-베로니끄 부부가 내준 보드카를 마시고 속이 거북해진 아네뜨(오른쪽 두번째)가 남편 알랭 쪽으로 구토를 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당신 왜 그래, 누구 편이야?"

"뭘~"

부부(夫婦) 는 자녀들과 함께 가족이기 때문에 '같은 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관념이 '아이 싸움을 어른 싸움'으로 만들고 '부부 싸움'으로 이어진다. 결국'편 가르기'가 갈등과 소통 부재의 원인이 되는 셈이다.

열한 살짜리 사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싸웠다. '페르디낭'이란 아이가 친구인 '부르노'를 막대기로 때려 앞 이빨 두 개를 부러뜨렸다. 애들 싸움이 시작됐다.

아프리카 다르푸르 분쟁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 부르노의 엄마 베로니끄(이연규)와 아빠 미셸(이대연)은 가해자인 페르디낭의 부모를 만나 '폭력 사건' 해결을 위해 대화를 나눈다. 하얀 튤립 등으로 집안 분위기를 바꾸고, 미리 합의문 초안까지 써놓았다.

박지일(알랭 역·왼쪽)-서주희(아네뜨 역)
"댁의 아들이 막대기로 '중무장'하고 우리 아이를 때렸으니~"

교양 있는 여자 베로니끄가 선택한'중무장'이란 단어가 어른들 기 싸움의 불씨가 된다. 변호사인 페르디낭의 아빠 알랭(박지일)이 '중무장'이 아닌 그저 '막대기를 들고'라는 쪽으로 표현의 정정을 요구하면서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진다. 가정주부인 페르디낭의 엄마 아네뜨(서주희)는 엉뚱하게 흘러가는 어른들의 싸움 속에서 구토를 하는 등 대화의 자리는 엉망진창으로 변한다.

아이들의 싸움이 집안끼리의 싸움이 되고, 다시 부부 싸움으로 뒤섞이면서 스스로 모두가 '학살의 희생양'이 된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블랙 코미디다.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현대인의 허위와 부도덕, 더 나아가 삶의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싸움의 앞뒤 상황을 몽땅 배제한 채 '내 아들'보호에 급급한 베르니끄, 모든 일을 꼬치꼬치 따지면서 자기 주장이 강한 베로니끄에게 지친 미셸. 집안 일보다 변호사 업무에 푹 빠져 도덕성이 무감각해 진 알랭, 시도 때도 없이 업무 전화라며 휴대전화를 끼고 사는 알랭의 행동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아네뜨.

이연규(베로니끄 역·왼쪽)-이대연(미셸 역)
오늘을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두 부부, 네 명의 남녀가 주고 받는 대화는 매끄럽다. 아이들의 싸움을 마무리하기 위해 찾아가는 해법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더니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한다.

연극은 장면이나 장막의 변화도 없다. 소파와 탁자, 책꽂이, 벽화가 무대의 전부지만 등장 인물들의 대화와 동선은 관객들에게 지루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커피와 파이, 보드카 그리고 전화기 등의 작은 소품들로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2010년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초연된 뒤 한국연극대상을 수상했고, 아네뜨 역을 맡은 서주희는 개성 있는 연기로 동아연극상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

초연 때도 부부로 호흡을 맞췄던 서주희와 박지일은 다시한번 흠 잡을 때 없는 코믹 연기로 관객을 사로 잡았고, 이연규와 이대연도 피해자 부모의 엇갈린 심리 상태를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다.

서주희는 초연 때와 똑같은 의상과 스카프로 무대에 올랐지만 박지일은 폴더형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꿔 들고 더욱 능청스럽게 관객과 소통한다.

'킥킥' 웃음이 나지만 강한 여운을 남기는 연극 '대학살의 신'은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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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기자 ch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