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앨범에서 상업적이든 음악적이든 기대 이상의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낸 가수들에겐 통과의례처럼 넘어야 하는 커다란 벽이 기다린다. '소포모어 징크스'다. 이는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해 큰 반응을 이끌어낸 전작과는 달리 두 번째 음반에서는 팬들의 넘치는 기대에 대한 부담감이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지난 2008년, 단숨에 명반의 지위를 획득한 1집 <기다림 설레임>으로 평단과 팬들 모두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낸 블루스 여성보컬리스트 강허달림이 3년 6개월 만에 2집 <넌 나의 바다>를 발표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제작과정을 홀로 책임지고 수행한 그녀 역시 소포모어 징크스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다시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비제작을 한 점은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음악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장점과 수준급 사운드를 구현하기엔 한계가 극명한 열악한 제작환경에서의 작업이라는 단점을 동반시켰다.

창작·자비로 앨범 제작

강허달림은 힘겨운 제작환경과 소포모어 징크스를 자신의 보컬 매력으로 극복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2집은 총 11곡이 수록되었다. 일단 소설가 김별아가 쓴 2곡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와 '그리되기를'의 가사를 제외한 모든 수록곡을 스스로 작사 작곡을 하며 창작자로서의 존재감을 재확인시켰다. 1집이 막막한 삶과 사랑의 아픔은 크지만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달리겠다는 의지를 탁월한 리듬감을 통해 극복하며 여성 블루스 보컬리스트로서의 존재가치를 알린 음반이었다면 2집은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자기 스타일로 해석하는 보컬리스트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타진한 앨범이다.

1집은 <신촌블루스>의 엄인호와 <져스트 블루스>의 채수영이라는 탁월한 기타리스트들이 앨범에 무게감을 실어주었다면 2집에서는 거장 이정선이 타이틀 '넌 나의 바다'에서 하모니카 연주로, 한국 재즈 1세대 트럼페터 최선배는 '꼭 안아 주세요'에서 트럼펫 연주로 그녀의 보컬에 강력한 감흥과 울림을 보탰다. 이 앨범의 백미인 '꼭 안아주세요' 가사에서 발견되는 '같이 웃고 가슴과 가슴 안고' 부분의 반복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그녀의 유연한 변화가 느껴진다. 경쾌한 셔플리듬이 인상적인 첫 트랙 '한번쯤은 좀 어때' 또한 1집에서 경험한 블루스 질감의 여운을 되살려주기에 충분한 어쿠스틱 버전이다.

소박한 편곡 트랙 포진

전작에 비해 한결 여유로워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의 노래들은 장르적으로도 블루스를 넘어 편안하고 익숙한 팝 영역으로 영토를 넓히며 폭넓은 대중과의 소통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 그녀를 블루스 보컬리스트로만 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앨범엔 '사랑이란', '멈춰버린 세상', '넌 나의 바다'와 같이 피아노와 기타 한 대를 중심에 둔 소박한 편곡 트랙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 이 노래들은 특유의 절규 없이 잔잔한 보컬만으로도 자신이 바다처럼 넓디넓은 사운드의 여백을 넉넉하게 채워나갈 수 있는 탁월한 보컬리스트로서의 능력을 담보했음을 조용하게 웅변하고 있다.

1집에서 경험한 애절한 감성과 탁월한 연주력이 합체된 가슴 찡한 감동을 기대한 대중에게 여유로워진 정서적 변화와 소박한 편곡 구성 그리고 보컬에 무게감을 둔 이번 앨범은 호불호가 나뉠 가능성이 다분하다. 사실 삶의 향기가 진동하는 한국적 블루스 필이 담겨있는 강허달림의 독특한 보컬 질감은 그 자체로 매력을 발휘하는 곡과 내공 깊은 연주와 앙상블을 이룰 때 감동이 배가되는 곡으로 확연하게 갈린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앨범은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기엔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그녀는 독보적인 여성 블루스 보컬리스트라는 달콤한 지분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대신 다양한 어법의 보컬 시도라는 험난한 음악적 모험을 택했다. 많은 대중을 감동시킨 애절한 정서가 사라진 아쉬움이 있지만 블루스를 넘어 팝, 포크, 록큰롤로 스펙트럼을 넓히며 사운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그녀의 진검 승부는 장르의 매몰이 아닌 장르의 해체를 통해 난관을 헤쳐 나가는 탁월한 보컬리스트로서의 의미 있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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