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ttle of Cenception'
코리안아메리칸으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데비 한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전이 11일 개막한다.

성곡미술관이 임진년 두 번째 전시로 마련한 이번 기획전은 작가가 2003년말 국내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시작된 8년 동안의 한국에서의 작업과 미국시절의 작업을 한자리에서, 함께 돌아보기 위해 마련된 회고전 성격의 전시다.

26년간 작품활동을 해온 데비 한의 작품세계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1985년부터 1996년에 이르는 시기로, 작가는 이 기간에 감성적이면서도 내적인 추상을 표현하는데 몰두했다.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 겪은 삶의 혼돈에 맞서 '나는 누구인가' '살아 있음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작품에 담았다. 그가 '절망 시리즈'로 부르는 드로잉과 회화 작품들이 이 시기에 속한다.

'존재'에 대한 탐구는 1기를 넘어 2기에서도 꾸준히 이어진다. 작가는 그가 작품활동을 하는 한 '존재'는 영원한 테마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존재(BEING)'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제2의 고향인 LA를 떠나 뉴욕으로 옮겨온 1999년부터 그의 작품세계는 두 번째 시기로 접어든다. 내면을 표현하는데 천착했던 작가가 세상을 향해 소통을 시도하는 시기다.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창작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구체적인 고민으로 옮겨온다. '달콤한 세상'시리즈와 같은 조각작업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초콜릿과 같은 정크푸드를 소재로 '세상이 진짜 달콤한지' 비틀어 표현한다. 이후 LA로 다시 돌아와서는 '콘돔 시리즈'를 발표한다. 길거리에 버려진 거대한 콘돔 그림과 철재로 만들어진 콘돔 조각 등을 통해 '성에 대한 이중성'을 비판한다.

'깨진 조각상들'
작가는 2003년 석 달 일정으로 들어온 한국에서 현재까지 8년여의 세월을 보내며 새로운 작품세계를 모색해왔다. 첫 작품은 지우개 드로잉으로, 획일적인 테크닉을 주입하는 한국의 교육제도를 비판한 작품이다.

이후 작가는 여성의 미를 주제로 한 '여신 시리즈'에 매달린다. 얼굴은 석고상 같은 서양 미인이지만 몸은 한국인의 형체를 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그는 "서구 문화를 해체하면서 한국의 일상을 담은 작품들"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사진작품뿐 아니라 조각작품에 나오는 미인들의 얼굴은 대부분 비뚤어져 있다. 작가는 이런 부조화를 통해 '미의 기준이란 무엇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데비 한은 이번에 특히 부식된 동(銅)을 이용한 조각상을 새로 선보인다. 이 역시 미란 무엇인가라는 그의 철학적 주제에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청자와 백자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도했다 실패한 , 동양의 12지신과 서양의 별자리과 어우러진 나전 테이블도 만나 볼 수 있다. 소재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의 실험정신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작품의 장르를 계속 바꾸는 이유에 대해 "익숙한 것에 안주하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간단치 않은 철학적 주제들을 끝까지 움켜쥔 작가의 창작혼이 전시실 3곳을 가득 채운 작품 60여점에 오롯이 배어 있다.

2월 10일부터 3월 18일까지 전시. 월요일 휴관. (02)737-7650



홍성필기자 sph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