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고등학교의 졸업식장에 가보면 학교 정문 앞에는 순찰차가 세워져 있고, 사복을 입은 경찰관은 교문을 통과하는 학생의 복장과 소지품까지 챙긴다.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도를 넘은 폭력적 졸업식 뒤풀이 문화 때문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축사와 송사 그리고 답사에 이어 '졸업의 노래'가 불리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눈물바다를 이루었던 그 시절의 졸업식 문화는 대중가요 속에서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졸업을 소재로 한 명곡들은 무수하다. '졸업'이란 같은 제목으로 노래를 발표한 가수만 해도 40명이 넘고 시대 초월적이다. 남성듀오 '전람회'와 혼성 인디밴드 '브로콜리너마저'는 앨범 타이틀을 아예 '졸업'으로 발표해 성과를 올렸던 그룹들이다. 만년 소녀가수 김인순의 '여고졸업반'은 졸업시즌을 대표하는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이 노래는 1975년 하이틴 영화의 거장 김응천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주제가다. 요즘엔 지상파 방송에서 푼수 아줌마로 등장하지만 임예진은 이 영화 출연으로 대종상시상식에서 신인장려상을 수상하며 청소년의 우상으로 급부상했다. 귀엽고 청순한 외모로 남학생들의 로망으로 군림한 그녀는 이후 이덕화와 함께 하이틴 영화 전성시대를 만개시켰다.

김응천 감독의 하이틴 영화 <여고졸업반>은 유료관객 4만 명에 육박하는 흥행기록을 세웠다. 영화에 수록된 많은 주제가 중 대중적으로 가장 각광 받았던 '여고졸업반'은 독집 수록곡은 아니다. 이 노래는 신세계에서 발매한 <골든포크앨범 12집>의 타이틀 곡이다. 이 음반에는 장재훈과 혼성듀엣으로 노래한 '소녀의 기도'와 '나는 열아홉이어요'와 함께 김인순의 노래 3곡이 수록되었다. 그녀의 대표곡이 된 '여고졸업반'은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각 방송의 인기가요순위프로 1위를 올킬하며 단숨에 톱 가수의 반열에 올렸다.

신인가수로는 이례적으로 인기정상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1976년 MBC 10대 가수로 선정된 김인순은 특히 남자 중고등학생들의 우상으로 군림했다. 1988년 35세의 한창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가수이지만 만년 '여고졸업반'으로 기억되는 그녀의 밝고 푸르른 여고생 이미지는 세월이 정지된 듯 지워지질 않는다. 청소년기의 풋풋함이 가득한 그녀의 노래들은 학창시절의 추억을 되돌려주는 마력을 발휘한다.

고2 때까지 교내에서 7번의 개인리사이틀을 연 이화여고의 소문난 노래꾼이었던 김인순은 여고졸업을 앞둔 1972년 CBS '세븐틴'의 김진성PD에 의해 방송에 출연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그녀는 여고졸업 후 가수로 데뷔했고 KBS 라디오 '젊은이의 광장', 동양라디오 '팝송 다이얼'의 DJ로 활동하며 1974년 5월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가요정화운동이란 미명아래 군사정권의 대숙청이 이뤄졌던 1975년은 신인가수 김인순에게는 오히려 음악인생에 큰 획을 그려준 빛나는 해였다.

1976년부터 김인순은 하이틴 영화 주제가들을 싹쓸이하며 전문 가수 이미지를 굳혔다. 1월 김응천 감독의 <청춘을 이야기 합시다>에서 김세환과 함께, 2월엔 최현민 감독의 <학창시절>, 5월 김응천 감독의 <소녀의 기도>에서 전영록, 현이와 덕이와 함께, 6월 정인엽감독의 <청색시대>에서는 주제가는 물론이고 직접 출연까지 했다. 주가가 오른 김인순은 오리엔트 기획에서 메이저 레이블 지구로 스카우트되었고 TBC 라디오 '3시의 다이얼' DJ를 맡으며 절정기를 구가했다. 7월 이형표 감독의 <너무 너무 좋은 거야>, 10월 김응천 감독과 <푸른 교실> 그리고 1977년 3월 <첫 눈이 내릴 때>의 주제가도 싹쓸이했다.

이외 '친구사이' '선생님 안녕히'등 수많은 하이틴 주제가로 히트 퍼레이드를 벌인 김인순은 1977년 1월과 7월에 2장의 개인 영화주제가 모음집을 발표하며 정점을 찍었다. 늘 여고생 같은 쾌활한 성격으로 주변과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만년 소녀가수로 기억되는 김인순. 그녀가 남긴 '여고졸업반'은 돌아가고픈 순수하고 낭만이 넘쳤던 70년대 졸업식 문화를 대변하는 명곡으로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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