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이란 동양화가에게는 기교보다는 마음으로 그려야 하는 어려운 주제다. 들숨과 날숨의 호흡 조절과 함께 난 잎을 쳐내는 한 획에 모든 정신을 담아야 하는, 사군자 중 가장 고난도의 숙련된 붓질이 필요한 대상이다.

지난해 사군자 중 첫 번째로 매화 전을 열었던 동양화가 문봉선이 두 번째로 35년간 연구 정진한 결과물인 난 작품 100여점을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선보인다.

이번에 전시하는 문봉선의 난은 크고 압도적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형 묵란(墨蘭)들이 춤추듯 전시장을 가득히 메우고 있다. 작게는 6폭 크게는 10폭으로 9m를 넘는 대형작품으로 구성된 난 연작들은 그동안의 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해 보인다. 마치 화면 안에 실제로 바람이 불어 휘어지고 흔들리듯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작가는 전통적인 화법을 구사하기도 하지만 과감히 새로운 화법을 이번 전시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4m의 폭에 돌과 난으로 구성된 대형 작품은 돌 안에 초서를 빼곡히 써넣어 돌의 질감을 대신하기도 하고 초서로 가득 메운 사이에 난을 피워 글씨일까 혹은 그림일까 라는 즐거운 상상을 돋우기도 한다.

일명 돌 사이에 피어난 난인 석파란(石坡蘭)을 작가의 작품에서는 현대적인 공간구성을 가진 대형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데, 7폭의 연작 안에 커다란 여백을 두고 펼쳐진 돌과 난의 역동적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난' 연작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난치기를 즐겨 했던 작가는 학업을 통해 중국의 난과 한국의 난이 다르다는 걸 체감하고 한국의 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주가 고향인 작가는 제주의 한란과 안면도 송림의 야생춘란 군락지를 찾아가 생물학적 특징부터 면밀히 분석하고 사실적인 탐구를 거듭해 오롯이 작가 문봉선만의 정신과 마음의 향을 물씬 먹은 난을 피워냈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비움과 채움의 미학을 한껏 살려 무한한 공간에 묵직함과 가득함 그리고 상상력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종이뿐만 아니라 견과 모시에 그려 낸 묵란들은 먹과 천이 가진 고유의 물성으로 인해 종이 위에 그려 진 묵란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먹 맛'을 보여준다. 3월 14일부터 4월 1일까지 전시. (02)735-9938.



홍성필기자 sph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