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로 먼저 명성을 날리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가수로 공식 데뷔하는 독특한 음악행보를 걸었던 대표적인 뮤지션은 조동진일 것이다. 공식데뷔는 늦었지만 오랜 기간 구축해온 음악내공 덕에 그의 데뷔작에 담긴 음악은 신인가수의 그것과는 질감 자체가 다른 차원이었고 70-80년대의 시대적 이정표로 구분되는 명반으로까지 평가받았다.

조동진이 걸었던 길과 흡사한 음악여정을 걷는 뮤지션이 또 있다. 만약 윤영배란 이름을 기억한다면 한국 대중음악에 꽤나 관심이 많다고 말할 수 있다. 데뷔 17년 만에 확고한 자신의 음악스타일을 담보한 2장의 EP앨범을 내며 활동하고 있는 그와 조동진의 차이는 싱글과 정규앨범이란 볼륨감 차이 정도다. 그만치 윤영배는 베테랑 기타리스트이고 앞으로 주목해야 될 기대치가 넘치는 탁월한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첫 EP에서 자신의 별명을 '이발사'라 지었다. 미국 작가 웬델베리의 장편 소설 '포트윌리엄의 이발사'에 등장하는 작은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이발사의 모습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원형질을 보았기 때문. 실제로 그는 대학생 때 친구들끼리 부엌가위로 서로 머리를 깎아주던 추억이 있다고 한다. 이발사 윤영배는 1993년 제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학동아리 후배인 이한철과 팀을 이뤄 '겨울이 오면'으로 입상한 후 하나뮤직에 들어갔다. 장필순의 1994년 4집부터 2002년 6집까지 수록된 노래 중 명반으로 각인된 5집 수록곡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는 그의 창작곡이다.

기타 한 대로 연주하고 노래

작곡가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윤영배는 하나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외로운 이층집, '길들이지 않은 새' 2곡을 노래했었지만 솔로 앨범 발표까지는 장구한 세월이 필요했다. 지난 2010년 기타 한 대로 구성된 소박한 연주로 노래한 첫 창작 솔로 EP <바람의 소리>가 조용하게 세상에 나왔고 금년에 두 번째 EP <좀 웃긴>을 연속해 발표했다. 사실 두 앨범 중 어느 앨범을 명반으로 인증할지 고민을 좀 했지만 내 선택은 감흥의 강도가 확실했던 첫 EP다. 베테랑 신인의 첫 솔로 앨범이었기에 당연 정규앨범과 의미심장한 음악적 임팩트를 기대했기에 아쉬움은 있다.

사실 그는 화려한 외모와 절창의 가창력과는 거리가 있다. 앨범엔 화려한 편곡으로 치장된 풍성한 사운드도 없다. 헌데 그의 노래와 기타 사운드는 조용하게 청자의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환상의 매칭을 구현한다. 윤영배의 첫 앨범엔 모던 포크 스타일의 창작곡 6개가 수록되었다. 소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해 온 자신의 자화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앨범은 명반의 가치판단기준을 새롭게 제시했다. 그러니까 폭넓은 대중과 소통 가능한 유려한 멜로디와 무한 공감대를 안겨주는 가슴 찡한 가사나 화려한 편곡 그리고 다채로운 실험성이 명반의 자격조건으로 전부가 아님을 그는 담백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읊조리는 창법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웅변한다.

모던 포크 스타일의 6곡

첫 트랙 '이발사' 는 기타 한 대와 목소리만으로 청자를 잡아 끄는 마력의 노래다. 2번째 트랙 '바람의 소리'는 여행길에서 만났던 자연과 길 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쾌한 느낌이 근사하다. 유려한 멜로디와 동화 같은 아름다운 가사가 압권인 3번째 트랙 '키 큰 나무'는 이 앨범의 백미다. '내 머리 타던 날'도 기타 사운드의 매력을 한껏 뽐낸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기타와 친구가 된 그는 대학에 들어간 후 록밴드 동아리 'ecos'에서 활동했고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참가를 준비하면서 '겨울이 오면'을 만들며 창작의 물꼬를 텄다. 그 첫 곡이 마지막 트랙 '어쩐지 먼'이다.

네덜란드에서 유학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그는 자연이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밭을 일구고, 땔감나무를 구하는 자연친화적 삶에 빠져 한동안 기타를 손에서 놓았다. 하지만 좋은 소리와 감정을 내기 위해 기타 연주 연습에 몰두하는 것보다,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한 제주의 생활은 그 자체가 노래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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