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개막된 TV영상시대와 미8군 무대의 활성화는 귀엽고 섹시한 춤과 노래로 사랑받았던 걸 그룹의 개체 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며 걸 그룹 전성시대를 활짝 꽃피웠다. 당시는 주류장르인 트로트와 더불어 급속하게 유입된 서구 대중음악의 영향으로 팝, 록, 포크, 재즈 등 다양한 장르가 공존했던 한국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미8군 무대와 일반대중을 상대로 한 일반무대 활동을 병행했던 당대의 걸 그룹들은 특이한 음악적 성향을 드러냈다. 미8군 무대에서는 파격적이고 야한 서양의상을 입고 팝송을 불렀지만 서구 대중음악장르에 둔감했던 일반대중을 위해 트로트와 민요를 함께 부르는 진풍경을 연출했던 것. 아시아 최초로 미국에 진출한 김시스터즈가 국제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을 때, 국내 무대를 평정한 슈퍼 걸 그룹 <이시스터즈>가 등장했다. 이들은 1968년 <펄시스터즈> 등장 이전까지 국내 걸 그룹계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했다. <이시스터즈>의 전신은 듀엣 <허니김스>다. 3살 터울의 자매 김명숙, 김천자(현재 김희선으로 개명)는 학창시절부터 각종 노래자랑대회를 휩쓸었을 만큼 노래재능이 뛰어났다.

60년대 슈퍼 걸그룹으로 등극

1962년 KBS의 연말 톱 싱어 경연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한 한 걸 그룹이 불참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대타로 참가해 당당히 2등에 입상하며 음반취입 기회를 잡았다. 이후 철도청에 근무하던 언니 김천숙의 직장 후배 이정자가 메인보컬로 영입되며 팀명도 리드보컬의 성을 따 <이시스터즈>로 변경했다. 맑고 발랄한 고역의 화음을 구사했던 그녀들은 1966년 TBC 방송가요대상 중창단상 수상에 이어 제1회 KBS 고운노래대상 시상식에서도 '모래위에 적어 본 이름'으로 금상을 차지했다. 이에 신세기레코드는 수상 기념음반을 발표했다.

멤버들의 결혼과 더불어 리드보컬 이정자가 솔로가수로 팀을 탈퇴하고 새로운 멤버 김상미를 영입하는 침체기를 겪은 후, 봉봉사중창단과 함께 발표한 스필릿 음반을 발표했다. '울릉도 트위스트',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목석같은 사나이', '남성금지구역'을 연타석 히트시킨 1967년은 최대 전성기로 기억된다. '울릉도 트위스트'는 이들을 60년대의 슈퍼 걸 그룹으로 공인시킨 명곡이자 6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대중가요의 고전이다.

한국전쟁으로 황폐화된 경제를 재건하는 것이 국가적 모토였던 당시 온 나라를 신나는 트위스트 리듬으로 채색시킨 밝고 경쾌한 이 노래는 우울했던 당대 대중에게 밝고 흥겨운 분위기를 수혈했다. '울릉도 트위스트'는 '울릉도'와 발음이 연결되는 '울렁울렁'이란 표현도 신선했지만 당대의 대중의 뜨거운 트렌드였던 트위스트 댄스 리듬을 민감하게 도입한 제작자 황우루의 기획이 돋보였다. 한서경, DJ DOC, 걸 그룹 윙크 등 많은 후배가수들이 리메이크작업을 했고 지금도 많은 대중의 노래방 애창곡으로 사랑받는 것은 이 노래가 발휘하는 시대초월적인 영향력에 대한 증명일 것이다.

처음엔 가사 유치해 거절

흥미로운 사실은 미8군 출신으로 음악적 프라이드가 대단했던 멤버들이 처음 이 곡을 받았을 때 "가사가 너무 유치해 부르지 않으려고 거절했다"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 멤버들은 물론이고 기획자 황우루 조차도 정작 울릉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상상으로 만들어진 노래에 60년대 대중이 그토록 열광했던 것은 가난한 시대에 품었던 밝고 희망찬 미래에 대한 이상향을 울릉도를 소재로 한 신나는 가사와 멜로디로 대변한 노래였기 때문일 것이다. 화진포에는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이, 충주에는 '좋아졌네'의 이시스터즈 노래비가 있다. 헌데 국민가요로 사랑받는 '울릉도 트위스트'의 배경인 울릉도에는 노래비가 없다. 멤버 김희선은 "예전에 노래비를 건립하려 한 지인이 군청에 문의했는데 '오징어가 풍년이면 시집가요 나를 데려가세요'라는 가사를 지적하며 '우리 처녀들을 왜 외지에서 데려가려 하냐'고 못마땅해 했다"는 일화를 전해준다. 이 같은 근시안적 행정 시각은 지역을 대표하는 대중가요를 통해 전 국민이 향유할 지역문화축제를 창출해 지역경제에 일조하는 시대적 트렌드와도 역행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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