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 경제도 온통 어지러운 요즘, 혼란스러운 마음을 보듬어줄 산문집이 나왔다. 동화작가 권정생의 작고 5주년을 맞아 그의 산문 43편을 모은 <빌뱅이 언덕>은 동화와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의 눈을 근본적인 곳으로 향하게 한다.

권정생은 <몽실 언니> <강아지똥> 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이미 국민문학의 반열에 올라 있는 동화작가다. 그는 가난하고 병든 자기 몸을 돌보기보다 자연을 사랑하고 약자를 대변하는 일에 온 생애를 바쳤으며 매년 적지 않게 들어온 인세를 거의 쓰지 않고 청빈하게 살다가 전 재산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쓰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참된 무소유의 실천가였다.

현재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권정생의 유일한 산문집인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 1996)에 비해 이번 산문집은 분단과 전쟁 시기에 그가 겪은 체험들을 솔직하게 담은 수기가 여러 편 실려 있어 그의 성장 과정과 사상의 뿌리를 잘 헤아릴 수 있다.

권정생의 산문은 소박하다.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꾸밈없이 쓴다. 그 문장 뒤편에는 가난한 삶을 실천하며 벼린 올곧은 정신이 든든하게 버티고 서 있다. 삶과 사상, 문학이 일치한 작가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산문들은 우리의 마음과 의식을 일깨워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일제 식민지, 해방과 분단, 6ㆍ25전쟁, 군사독재와 산업화 등 굴곡진 현대사를 겪으면서 그의 눈길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 문명이 자연을 파괴하는 현장, 도시화 속에 스러져 가는 농촌,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닿는다. 그의 산문은 약하고 힘없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이면서 동시에 전쟁을 반대하고 문명의 횡포와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을 비판하는 뜨거운 목소리가 된다.

평생 병든 몸으로 검소한 삶을 살았던 작가의 생활이 솔직하게 반영된 이번 산문집은 풍요와 편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우리 시대를 올곧은 정신으로 성찰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힘을 가진다. 권정생 지음. 창비. 1만3,000원.



홍성필기자 sph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