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실험의 희생양 '영장류'

대신맨… 영장류인 원숭이는 약물시험에 있어 더 없이 훌륭한 인간의 대신맨이다. 이는 마치 버터와 마가린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종간 특성차이 거의 없어 최적 평가자료 확보 가능

獨서 임산부용 신약 개발
독성실험 쥐·개만을 대상… 5000명 기형아 출산 비극

연 400만마리 동물 국내서 각종 연구 수행

매년 '실험동물의 날' 개최
숨진 개체들에 대한 헌화… 인도적 차원 실험 다짐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후보 물질을 대상으로 유효성(효능)과 안전성(독성) 검증이 필수다. 하지만 어떤 부작용과 독성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임상시험에 나설 수는 없다. 이때 인간을 대신해 동물들이 흑기사로 나선다. 특히 인간과 종(種)간 차이가 가장 없는 영장류는 신약과 백신의 개발, 신물질의 효능과 독성테스트는 물론 노화 및 질병 연구 등에서 다양한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 영장류 독성시험평가로 국내 신약개발의 첨병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안전성평가연구소 영장류 동물실의 일과를 동행했다.

빠삐용은 없다… 원숭이는 똑똑하다. 그래서 간단한 잠금장치 정도는 우습게 열고 우리를 탈출한다. 이를 막고자 모든 우리에는 이중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어 빠삐용의 탄생을 원천봉쇄한다
대덕연구단지 내 안전성평가연구소 지하1층의 영장류 동물실. 이곳에는 원숭이 4마리가 며칠 전 체내에 무선센서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고 현재 회복 중에 있다. 이 원숭이들은 무선센서를 활용, 모 제약사가 개발 중인 생물의약품의 전임 상시험(독성평가)에 투입될 예정이다.

영장류 동물실을 책임지고 있는 24년차 베테랑 양병철 팀장은 "원숭이 몸속에 삽입된 무선센서가 24시간 혈압과 심전도를 측정, 약물의 부작용 여부를 알려준다"며 "심전도 등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독성유전체 연구팀에 샘플을 보내 심장 독성 관련 유전자 변화 등의 연구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를 전임상 시험에 이용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양팀장은 "예전에는 비글 등 주로 개를 활용해서 독성평가시험을 했지만 사람과의 종간 특이성이 커서 신뢰도가 떨어졌다"면서 "원숭이는 해부학적, 생리학적 측면이 사람과 가장 유사하고 약효 및 독성발현 기전이 비슷해 최적의 독성평가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 독성시험 분야는 일부 민간 비임상 위탁연구기관(CRO)들이 운영되고는 있지만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안전성평가연구소가 국내 수요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영장류의 수급이 말처럼 간단치 않은데다 관리와 시험의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현재 영장류 동물실에는 양 팀장을 비롯해 총 6명의 숙련된 전문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독일 탈리도마이드 사건

신약 개발용 실험동물로서 영장류의 중요성은 독일의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사건'이 극명히 말해준다. 임산부들의 입덧 방지를 위한 진정제와 진토제로 1957년 개발된 탈리도마이드는 임신 중인 쥐와 개를 대상으로 한 독성 시험에서 부작용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지만 시판 후 이를 복용한 임산부들이 무려 5,000명에 달하는 기형아를 출산하는 비극을 맞았다. 양 팀장은 "만일 영장류를 대상으로 독성시험을 펼쳤다면 이 같은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업체들은 안전성을 최우선 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주로 동남아 등지서 도입

영장류 동물실 내부에는 현재 약 220여 마리의 원숭이들이 운집해있다. 이들은 주로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등지에서 도입된 게잡이 원숭이와 붉은털 원숭이다.

이홍수 연구원은 "체격이 비교적 작은 게잡이 원숭이는 일반 독성평가에, 붉은털 원숭이는 바이러스와 에이즈의 치료제 개발 등에 활용된다"며 "세계적으로 실험용 원숭이 사육은 중국, 베트남 등 4~5개국에 한정돼 있어 원활한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숭이들의 가격은 얼마나 할까? 이 연구원에 따르면 전 세계가 실험용 원숭이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어 원숭이의 몸값은 서로 공개하지 않는 게 국제적인 불문율로 통한다. 다만 그는 한 마리당 가격이 최소 500만원을 호가한다고 특별히(?) 귀띔해줬다.

영장류 동물실에서는 원숭이들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결핵, 기생충, 인수전염공통병 등 질병 여부를 확인한다. 이를 위한 검역기간만 30일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이미 산지에서 30일 동안 사전검역을 거쳐 보내졌음을 감안하면 원숭이들의 영장류 동물실 입성에는 최소 두 달 정도가 소요된다. 여기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에 한해 우리에 한 마리씩 수용되며 이후에도 주기적인 추가 검사를 반복한 뒤 이상이 없을 때 각종 독성시험에 투입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임상시험에서는 쥐, 생쥐 등의 설치류를 시작으로 비설치류 대상의 실험을 실시하고 최종적으로 영장류 독성평가시험이 진행된다. 독성평가시험 단계에서는 연구원들이 원숭이에게 약물을 투여한 후 체중이나 행동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 기초자료를 작성한다. 그리고 시험의 마지막 단계로서 실험대상 원숭이들을 부검, 약물이 체내에 미친 영향을 정확히 확인하고 시험책임자가 최종 평가를 내린다. 부검을 마친 사체는 모두 소각 처리된다.

이렇게 영장류 동물실에서는 연평균 40~50건의 시험이 수행되고 있다. 이 연구원은 "시험기간은 약물의 단일투여의 경우 13주, 반복투여는 26주 정도"라며 "원숭이의 생애 전주기를 약물에 노출시켜야 하는 발암성 시험은 최소 2년 이상이 걸린다"고 알려줬다.

실험동물계의 VVIP

비싼 몸값에 더해 인간을 위한 값진 희생을 담보로 사육되고 있는 만큼 영장류 동물실의 원숭이들에게는 VVIP급의 편안하고 안락한 의식주가 제공된다. 사료 등 신선한 먹이를 공급받는 것은 물론 외부환경 변화에 민감한 원숭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항상 배설물을 깨끗이 치워주고 있다. 하루 24시간 내내 적절한 온도와 습도, 환기상태를 유지시켜 주는 것은 당연하다.

또 일정기간 동안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진 군(群) 사육시설에 수용돼 적응기간을 거치기도 한다. 야생에서 군집생활을 하던 원숭이들을 갑자기 우리에 격리 수용하면 스트레스를 받아 질병에 걸릴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혹여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린 원숭이들은 시험에서 제외된다. 이와 관련 양 팀장은 "다치고 병에 걸린 개체는 즉시 치료와 수술을 해주지만 나아지지 않을 때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원숭이들의 숙소라 할 수 있는 우리에는 두꺼운 자물쇠 등으로 이중 잠금장치가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대형 거울과 작은 거울이 달려있다. 양 팀장은 "개나 고양이와 달리 원숭이는 지능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2중 잠금장치가 아니면 우리를 열고 탈출하는 사고가 발생한다"며 "거울의 경우 원숭이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특히 영장류 동물실은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무균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공기의 유입에 따른 오염물질과의 접촉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같은 이유로 동물실은 내부의 기압을 외부보다 낮게 유지해 내부공기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만큼 이곳에 출입하기 위한 절차도 매우 까다롭다. 완전히 살균된 위생복과 장갑, 고글, 마스크 등으로 완전 무장해야만 출입이 허가된다. 또한 간염보균자들은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며 작업을 마치고 나오면 의복과 장비는 곧바로 소독실에 보내진다.

시험대상 원숭이들의 체중은 약 2~5㎏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반 성인 남성 이상의 괴력(?)을 발휘해 연구자들을 애먹일 때가 많다. 이 연구원은 "그래서 원숭이에게 혈액을 채취하거나 주사제를 투입할 때는 반드시 2인 1조 이상의 인원이 함께 투입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숭이에게 물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까. 이 연구원은 "간혹 원숭이에게 물리는 일도 일어난다"며 "그때는 인수공통전염병 감염 우려가 있으므로 반드시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원숭이들은 철저한 검역을 거쳐 도입되고, 무균 환경에서 사육되므로 질병에 노출될 확률은 매우 낮은 편이라고 이 연구원은 덧붙였다.

가슴 아픈 이별

그런데 이쯤 해서 한동안 동고동락했던 원숭이들과의 이별을 맞는 연구원들의 심정이 궁금할 만하다. 영장류 동물실에 왔다는 것은 사실상 천수를 누리지 못할 운명임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영장류인 원숭이는 쥐, 개, 고양이 같은 여타 시험동물과는 좀더 다른 애틋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사실이다. 시험을 할 때만큼은 연구자 본연의 모습에서 원숭이들을 다루고, 특이사항을 분석하지만 막상 원숭이가 죽거나 부검을 위해 안락사를 시킬 때는 가슴 한 부분에서 가여운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한 해 동안에만 약 4백만 마리 동물들이 각종 실험에 이용되고 있다. 이 중 영장류는 '살아있는 시약'으로까지 불리며 해마다 활용 개체수가 30~40%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에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인간의 연구 활동에 희생되는 실험동물들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매년 '실험동물 사랑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 실험동물사용관리위원회(IACUC) 주최로 연구소 내에 마련된 실험동물 사랑의 비(碑) 앞에서 진행되는데 인도적 차원의 실험동물 사용에 대한 다짐과 실천의 글 낭독, 실험으로 숨진 동물들에 대한 헌화가 이뤄진다.

이 연구원은 "1988년부터 매년 이 같은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며 "기관의 위상이 높아지고 연구가 활발해지는 것과 더불어 3R 정신에 입각해 더 나은 조건의 동물실험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와 함께 개선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동물들이 실험에 이용되더라도 그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연구자들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덕=구본혁기자 nbgk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