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아플때 다른 한명도 아프고 위험할 때 멀리서도 직감…
쌍둥이 1/3이 텔레파시 경험
일반인보다 잦고 강도 높아 "정신적 동일성 영향" 추측

"뇌구조 비슷해 송수신 가능"
아직 심증단계일 뿐 텔레파시 원인 해명 역부족
유전자·면역성 같으니 당연하다는 주장도

한 명이 아프면 다른 한 명도 아프다. 한 명이 위험에 처하면 다른 한 명은 그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어떨 때는 동시에 같은 꿈을 꾸기도 한다. 죽도록 사랑하는 연인 사이냐고? 아니다. 쌍둥이들의 얘기다. 쌍둥이에게서 흔히 나타난다는 이런 기이한 현상들은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얼마 전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쌍둥이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해 서로 텔레파시가 통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하나같이 "있다"고 답했다. 쌍둥이 남성 듀오 량현량하의 형인 량현은 "계곡에 놀러갔을 때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동생이 계곡 물에 휩쓸려 간신히 바위를 붙잡고 있었다"며 "나중에 안 사실인데 동생은 소리를 지른 적이 없다더라"고 전했다. 또 가수 허각의 형 허공은 "갑자기 이상한 기분과 함께 어떤 장소에 가고 싶어져 그곳에 갔더니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있었다"고 밝혔다.

소름 끼치는 직감

이 같은 텔레파시 경험들은 스튜디오에서 직접 진행된 실험에서도 증명됐다. 쌍둥이 중 형과 언니의 눈을 안대로 가린 상태에서 동생들이 특정 의자에 앉았다 일어났는데, 모든 형과 언니들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동생들이 앉았던 자리를 찾아냈다. 개중에는 "이 자리가 확실하다"며 자신의 '직감'을 강력히 피력하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출연자들은 신체 부위가 서로 비슷하게 변했다는 증언도 했다. 량현은 어릴 때 입술 밑에 피어싱을 했는데 이후 동생 량하의 입술 밑이 검어졌다고 했다. 병원에 가도 자국이 지워지지 않았지만 량현이 피어싱을 빼자 그제서 지워졌다는 것이다. 이들이 털어놓은 갖가지 경험들은 시종 패널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과연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쌍둥이들의 정신적 교감, 다시 말해 텔레파시가 통한 결과일까.

텔레파시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오감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생각이나 감정을 주고받는 일종의 초능력을 뜻한다. 그러나 텔레파시 현상이 실재하는지 여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18세기 서양에서 최면 상태에 빠진 피술자(被術者)에게 술자(術者)가 느끼는 미각이나 통각이 직접 전달될 수 있다는 게 처음 알려진 이후 텔레파시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과학과 미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일찍이 텔레파시와 같은 초자연적 현상이 환상이 아닌 사실임을 주장했다. 말년에는 '공시성(synchronicity)' 혹은 '동시성'이라 명명된 난해한 학설을 주창하기도 했다. 이 학설의 핵심은 둘 이상의 의미심장한 사건들이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에는 우연성 이상의 무엇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제3의 새로운 차원이 존재하며 그곳에서 초현상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그리고 신비하게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제3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잠재돼 있어 감각기관을 통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상호 교감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초감각은 있다! 어디에?

초심리학에서는 텔레파시나 투시력, 예지력 등의 초자연적 현상을 한데 묶어 '초감각적 지각(ExtraSensory Perception, ESP)'이라 부른다. 이 단어는 미국 듀크대학 조셉 B. 라인 박사가 처음 사용했는데 그는 직접 ESP의 증명을 시도하기도 했다. 1934년 'ESP 카드'라는 특별한 도구를 사용, 피시험자들이 카드의 모양을 맞출 확률이 우연한 기대값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의미를 가질 만큼 높을 때가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ESP의 증거로 제시한 것.

이렇듯 텔레파시의 실재를 긍정하는 여러 이론 및 실험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심심찮게 맞닥뜨리게 되는 절묘한 순간들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렇다면 텔레파시가 존재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쌍둥이들이 일반인보다 훨씬 잦고 강도 높은 텔레파시를 경험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이 ESP에서 한층 우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듯 보이는 이유 말이다.

이와 관련 영국의 유전학자이자 우생학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골턴을 위시한 몇몇 학자들은 쌍둥이의 약 3분의 1이 텔레파시와 같은 현상을 경험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쌍둥이는 신체적 특징은 물론 정신적 취향까지 필연적으로 동일성을 지닌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쌍둥이는 일란성과 이란성으로 구분된다. 일란성은 하나의 난자, 이란성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난자에 수정이 이뤄지며 잉태된다. 따라서 일란성 쌍둥이는 마치 복제인간처럼 DNA가 동일하다. 반면 이란성 쌍둥이는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갖는다. 이란성과 달리 일란성 쌍둥이가 외모는 물론 대부분의 특성이 유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유전공학이

발전하면서 일란성 쌍둥이도 기존의 생각만큼 무조건 똑같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고는 있지만 말이다.

일반적 통계를 볼 때 전체 쌍둥이 중 일란성의 비중은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잉태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유전적 요인, 산모의 신체 특성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 정도가 알려진 사실의 거의 전부다.

어쨌든 일부 학자들은 일란성 쌍둥이가 일반인은 차치하고라도 이란성과 비교해도 심리적으로도 더 친밀한 관계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텔레파시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이 흡사한 외모 때문인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는 ESP적인 요인 때문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텔레파시 본질은 뇌파?

결론만 놓고 보면 현재로서 텔레파시 현상이 가장 극적으로, 강하게 나타나는 사람은 분명 일란성 쌍둥이다. 이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논제에 가깝지만 '뇌파(EEG) 이론'은 어느 정도 이를 과학적 시각에서 풀어준다.

뇌파는 대뇌피질의 신경 세포군에서 일어나는 뇌의 전기활동으로 두피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라 생각하면 된다. 뇌는 언제 어디서든 뇌파를발생하고, 뇌파 검사는 뇌의 기능적 변화 관찰을 위한 갖가지 실험에 이용된다.

뇌파 이론은 이 뇌파를 통해 일란성 쌍둥이들이 서로 교신한다는 게 골자다. 뇌를 휴대폰, 뇌파를 무선 이동통신 주파수 삼아 상호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복잡다단하게 연결되면서 일종의 회로처럼 작동한다. 또 신경세포 1개당 평균 1,000개의 시냅스(synapse)를 형성, 전체 회로구조가 무려 100조개에 이른다. 무려 100조 가지의 다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셈이다.

이토록 미묘하게 얽히고설킨 뇌파를 송수신하려면 무엇보다 뇌구조가 동일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DNA 구조가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가 교감에 유리할 것이라는 추정은 분명 일리가 있다. 앞서 언급한 허각 형제와 량현량하 형제의 사례 역시 설명이 된다. 위기에 처한 쌍둥이 중 한 명이 형제에게 자의적·무의적으로 뇌파를 송신했고, 이를 수신한 형제가 행동에 나선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 또한 심증 단계를 넘어서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비약적인 의료·과학기술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뇌를 인체 내의 소우주라 부를 정도로 우리는 뇌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수의 뇌과학자들은 오늘날 밝혀진 뇌에 관한 정보는 전체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떤 종류의 감정이, 어떤 부위에서, 어떤 호르몬의 작용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을 간신히 추리하는 수준일 뿐이다.

그러므로 텔레파시의 원인을 찾는 것, 일란성 쌍둥이에게서 일어나는 갖가지 기이한 현상들을 파헤치는 것은 아직 요원한 게 사실이다.

우연은 그저 우연일 뿐

그런 탓에 한편에서는 쌍둥이의 텔레파시 현상을 쉽사리 믿지 않는다. 그저 우스갯소리로 치부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유전자가 같은 일란성 쌍둥이는 유사한 신체적 특질을 지니고 면역성 또한 같을 수밖에 없어 한 명이 아프면 다른 한 명이 함께 아픈 것이 사실상 당연하므로 기이하다며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수학자 존 앨런파울로스는 자신의 저서 '숫자에 약한 사람들을 위한 우아한 생존 매뉴얼'에서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언젠가 우연과 같은 일은 없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런저런 예기치 못한 사건의 전개에 대해 끊임없이 떠든다. 하지만 그것이 우연의 일치이든, 융이 말한 공시성이든 이런 일은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흔하게 일어난다."

다시 말해 우연은 살아가는 동안 꽤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며 쌍둥이들의 텔레파시도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쌍둥이들이 경험한 초자연적 현상을 모두 '우연'으로 단정 짓는 것은 뭔가 개운치 않다. 이들의 사례를 거리에서 우연히 연락이 끊긴 초등학교 친구를 맞닥뜨리는 것과 동일선상에 놓기에는 너무도 극적이고, 절묘하다.

우리 주변에서는 시시각각 각종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과학이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것들은 쉽게 미신과 우연으로 치부되곤 한다. 쌍둥이의 텔레파시도 지금으로선 재미나고 신기한 에피소드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머지않아 쌍둥이를 대상으로 여러 연구를 통해 비밀은 풀리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쌍둥이를 주목해보자. 그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니까.

일란성 쌍둥이 원인은 '배반포'… 분열 이유는 아직 규명 안돼

일란성 쌍둥이는 난자와 정자가 만난 수정란이 초기 분열 과정에서 두 개로 분열, 각각의 개체로 발달하면서 태어난다. 수정 후 배반포가 둘로 갈라지기 때문에 유전자 배열이 동일하다.

현재까지 이 배반포가 무엇 때문에 두 개로 나뉘는지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배반포에서 껍질은 '투명대', 그 내막은 '영양포'라고 한다. 영양포는 태반이 되고 그 안에 있는 세포 덩어리는 태아를 형성할 배아줄기세포가 된다. 그러나 영양포 내 세포 사이가 주기적으로 약해지면서 체액이 새어 나와 영양포가 붕괴되고, 이후 다시 재생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영양포가 붕괴되면 세포 덩어리는 둘로 나뉘어 다시 영양포에 각각 달라붙는다. 이 덩어리들이 자궁 속에서 자라면 일란성 쌍둥이가 된다.

과학자들에게 쌍둥이는 훌륭한 연구과제다.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쌍둥이의 차이를 파헤침으로써 유전과 환경의 관계 등 인류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갖가지 문제에 대해 실마리를 찾고 있다.

쌍둥이 연구를 처음 창안한 인물은 프랜시스 골턴. 우생학을 주창한 그는 선별적 교배 기술로 동식물의 품종을 개량하는 것처럼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인종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이 같은 우생학은 히틀러가 자행한 유대인 학살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등 한동안 쌍둥이 연구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최근에는 유전병 연구에 유용한 연구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일란성 쌍둥이 연구를 통해 각종 질병이 어느 정도까지 유전적 영향을 받는지 등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박소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