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음악행사를 위해 급조된 걸 그룹 <무키무키만만수>는 한국종합예술대학교에서 음악과 미술을 공부하는 여대생들이다. 이들의 음악은 세련된 음악어법과는 한참을 빗겨나 있다. 기타를 치는 만수와 장구를 직접 개조한 ‘구장구장’을 두드려대는 무키의 덜 숙성된 사운드와 사정없이 내지르는 보컬은 실로 용감무쌍하다. 시설 좋은 공장에서 화려한 걸 그룹들이 대량 생산되는 시대에 이렇게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는 걸들이라니.

예명이 만수인 것은 교내 신문사 국장 친구 중에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만수라는 남자가 있어 생긴 별명이라 한다. 무키는 활동을 숨기기 위해 배명훈 작가의 소설 <엄마의 설명력>에 등장하는 인도에서 한국으로 입양을 온 여자아이 이름 ‘묵희’에서 예명을 가져왔다. 데뷔앨범 <2012>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신선함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음악적 한계로 인해 대중과 평단의 호불호에 대한 대립각이 날카롭다.

총 12곡이 수록된 이들의 데뷔앨범은 ‘안드로메다’, ‘남산타워’, ‘방화범’, ‘7번 유형’처럼 파격적인 펑크 성향의 곡들과 ‘2008년 석관동’, ‘식물원’, ‘너의 선물’ 같은 전혀 다른 질감의 서정적인 곡들이 혼재되어 있다. 사실 노래가 부족해 만들어 놨던 노래들을 긁어모아 녹음을 했다니 치밀한 기획 하에 제작된 앨범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냥 만든 음악이 예상 밖의 강력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공연에서 들려주는 거친 사운드에 비해 앨범의 사운드는 제법 치밀하다. 달파란 강기영의 프로듀싱 덕이다.

타이틀 곡 ‘안드로메다’는 설익은 연주와 낮게 깔리는 코러스가 슬그머니 들어오는 트럼펫 소리와 의외의 조화를 이루며 귀를 잡아 끈다. 단순 반복적인 ‘7번 유형’에서 고조된 열기는 쉬어가는 듯 ‘2008번 석관동’에서 서정적으로 급변한다. ‘머리 크기’는 불협화음에다 음정불안까지 그야말로 빵 터지는 트랙이다. 만약 이 노래가 70년대에 발표되었다면 박찬응의 ‘섬아이’에 이어 ‘창법불량’으로 금지된 두 번째 곡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산울림의 노래를 괴성과 함께 발랄하게 재해석한 ‘내가 고백을 하면 아마 놀랄 거야’는 이들의 음악적 뿌리를 가늠케 한다. ‘식물원’은 만수가 무키에 대해 쓴 일기를 모티브로 한 다정한 노래다. 은근 배꼽 잡게 하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와 동시에 다른 가사가 중첩되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너의 선물’도 실험적 시도가 인상적이다. 숭례문 화재를 다룬 ‘방화범’과 엔딩곡 ‘투쟁과 다이어트’ 같은 원초적이고 파격적인 트랙들 사이에 배치한 서정적 질감의 노래들은 묘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사실 괴상하고 유치해 보이는 이들의 음악이 각광받는 현실에 당혹감을 느끼는 뮤지션들이 상당할 것 같다. 하지만 넘쳐나는 웰메이드 음악에 길들여진 대중에게 이들은 큰 웃음을 선사했고, 새로운 음악에 목말라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공감대를 형성시킨 음악적 성과는 단순히 음악을 완성도 여부로 재단하는 것을 경계하게 한다. 이들이 구현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폭발적인 끼는 치명적인 음악적 약점마저도 극복하는 미덕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노래는 정서적 화학작용에 따라 색채를 달리한다. 상업적, 음악적 성과에 민감한 뮤지션은 유행하는 트렌드나 장르의 관습을 거부하기 힘들다. 이 음반은 대중의 반응과 상업적 성과를 기대하지 않았기에 관습의 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가창력을 논하기에도 민망한 읽고 소리 지르는 수준의 보컬과 정교함과는 거리가 먼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그 누구도 성취하지 못한 새로운 분위기와 에너지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사실 이런 앨범을 선뜻 제작한 비트볼 이봉수 대표도 범상치는 않다.

이들의 음악을 소개하는 이유는 다시는 듣기 힘든 음악일 것 같아서다. 이렇게 기발하고 기괴한 시도야 말로 한국대중음악의 다양성을 위한 자양분이다. 무키와 만수는 밴드활동을 ‘고행’이라 말하며 활동 지속여부에 대해 부정적이다. 하지만 단 한 장의 음반으로 그칠지라도 이들은 이미 한국대중음악계에 강펀치를 한방 사정없이 날렸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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