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와 소울, 그리고 리듬 앤 블루스(R&B), 힙합은 한국 대중가요에 영향을 끼친 미국 흑인음악 장르다. 리듬 앤 블루스(R&B)와 힙합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더없이 친숙한 장르가 되었고 소울은 1960년대 후반, <펄시스터즈>, 박인수, 김추자 같은 신중현사단 가수들에 의해 '소울사이키 가요'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각광받았다.

블루스는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한을 표출한 음악이다. 한마디로 가장 고독하고 괴로움과 절망감에 빠진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부르는 삶의 노래고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매력적인 장르다. 1939년 이난영이 노래한 '다방의 푸른 꿈'은 당시로서는 희귀한 블루스 스타일 가요의 효시격인 명곡이다. 같은 해 탄생한 황금심의 '외로운 가로등' 역시 가슴에 진한 상흔을 여지없이 남기는 쓸쓸한 정서가 압권인 초창기 한국 블루스의 명곡이다.

'한국 대중문화는 한의 문화'라는 말처럼 블루스라 하면 한의 정서를 담은 슬픈 노래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사실 사랑의 아픔과 이별의 정서를 표출하는데 블루스만큼 최적의 장르도 없다. 1980년대 중후반 프로젝트 그룹 <신촌블루스>의 이정선, 김현식, 한영애, 엄인호와 명혜원, 윤명운, 남성듀오 <하사와 병장> 출신 이경우가 등장하기 전까지 블루스(혹은 부르스)라는 제목을 단 노래들은 트로트 블루스의 전형을 고수했었다. 1941년 발표된 '선창의 부르스'는 이 장르의 효시라 회자된다. 해방 이후 '청춘 부루스'(옥두옥 노래)를 시작으로 1959년 '대전블루스(안정애 노래)'로 대폭발을 이룬 블루스 제목 노래는 80년대까지 무수하게 양산되었다. '눈물의 부르스', '신사동 부르스', '영동 부르스'를 부른 절창 주현미는 가히 트로트 블루스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끈적거리는 질감으로 무한 중독성을 발휘했던 명예원의 '청량리블루스'는 노래 제목이 안겨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극한의 슬픈 정서를 유발시켰다. '청량리'는 경춘선을 타고 떠났던 MT여행의 상큼한 추억이 가득 찬 기차역의 이미지와 서울 변두리 최대 향락지인 소위 '588번지 집장촌'의 어두운 이미지가 중첩되는 공간이다. 사회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빈부의 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널찍한 간극을 이루며 혼탁했던 1985년 당시, 명혜원은 퇴폐적인 분위기의 느릿한 숨결을 지닌 기막힌 노래를 들고 등장했다.

명혜원의 이름을 기억하는 대중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지상파 방송을 장식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긴 했지만 비주얼 가수가 아니었던 그녀는 음악적 능력에 비해 다소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 1985년에 발표된 명혜원과 혼성보컬그룹 <제3시대>의 스필릿 음반은 '청량리블루스' 한곡을 위한 앨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세아레코드에서 나온 음반이 초반이고 빅히트를 터뜨린 음반은 지구에서 나온 재반이다.

지명소재 블루스 노래 양산

정통 블루스의 필에 트로트의 질감이 가미된 몽환적인 그녀의 노래는 우선 공간감이 느껴지는 끈적거리는 창법에다 그로테스크한 가사가 휙휙 귀에 감겨왔다. 그나저나 '화병 속에서 타들어가 시든 한송이 국화'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아마도 청자들은 은밀한 공간에서 삶의 허무를 곱씹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던 청량리의 여인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한때 이 곡이 잠시 방송금지곡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대에 삶의 허무를 겪은 이들이 어디 청량리의 여인들뿐이겠는가. 이 노래에 광활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지점이다.

그때까지 블루스라 하면 트로트를 연상시켰던 대중적 인식은 이 노래로 인해 전환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조용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청량리블루스'는 한국 블루스의 질감을 트로트 일색에서 정통 스타일로 한 차원 끌어올리는 촉매가 되었다. 또한 '영동', '청계천', '신촌', '서초동', '남포동' 등 지명을 소재로 한 블루스 제목 노래들이 양산되는 트렌드까지 형성시켰다. 지난 1996년 이광조에 이어 2006년 재즈보컬리스 웅산을 통해 리메이크된 이 노래는 한국 블루스의 명곡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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