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행보의 연속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미국 빌보드 싱글 메인차트인 서 64위에 올라, 지난 2009년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기록한 76위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또한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체코,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리투아니아, 파라과이, 페루, 슬로바키아,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타이완, 타이 등 18개 국가의 아이튠즈 'TOP SONGS 차트' 1위를 휩쓸고 있다.

'강남스타일'은 열풍의 근원인 유투브 조회 수도 2억 건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싸이의 놀라운 신드롬 행진은 포화상태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 아이돌 위주의 K-POP에 다양성을 수혈하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세계인과 소통하고 있는 이 노래의 텍스트적 강점은 웃기고 쉽고 단순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집단군무가 인상적이고 모두를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말 춤'은 어린 아이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단순한 춤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명곡들을 살펴보라. 하나같이 난해하기보다는 쉽고 단순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음악인생의 정점을 내달리고 있는 그의 지난 11년 음악여정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그는 지난 2001년 '나 완전히 새됐어'란 유행어를 동반한 랩 댄스곡 '새'로 화려하게 데뷔했었다. '싸이코'에서 앞부분을 따온 예명부터 엽기적이었던 그의 전략은 솔직하고 거침없는 당당함에 있었다. 싸이 음악의 멜로디 라인은 단순 반복적인 특징이 있다. 그의 음악은 단숨에 대중을 사로잡는 흡입력에도 불구하고 평단으로부터 정당한 음악적 평가를 받아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쓰러져도 일어서는 '오뚝이'

지상파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마다하지 않았던 행보로 인해 싸이는 뮤지션보다는 엔터테이너 이미지가 강했다. 그 때문에 모든 곡을 스스로 만들고 요리하는 프로듀싱 능력까지 겸비한 훌륭한 뮤지션이라는 사실이 희석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선희, 김완선 같은 예상치 못한 가수들을 피처링 작업에 참여시킨 것이 그랬듯 싸이의 음악엔 최고의 보컬리스트들이 채색한 다양한 음악적 색깔이 녹아있다. 수용 가능한 표현의 경계를 절묘하게 줄타기해온 그의 파격적인 노래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특유의 웃음코드 때문이다.

'노래하는 사회운동가'를 자처했던 2집 '성인용'도 '19금' 딱지가 붙었을 만큼 위태했지만 뮤지션으로서의 진지한 태도가 처음으로 읽혀진 인상적인 앨범이었다. 성공적 데뷔도 잠깐. 대마초 파동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열정과 끼를 분출한 수많은 라이브콘서트로 반전의 기회를 마련했다. 3집 '챔피언'의 대박으로 되살아났지만 또 다시 공익근무 파동과 재입대라는 악재에 휘청거렸다. 그런데 또 재기했다. 쓰러지길 반복한 그의 음악인생은 위태위태해 보였지만 언제나 일어서는 '오뚜기'였다.

싸이의 성공은 K팝의 볼륨확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이돌 댄스 음악이 전부라는 K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그로 인해 허물어지고 있다. K팝은 '비주얼 음악'으로 대변된다. 그 점은 싸이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싸이는 '세련된 외모'와 '준수한 몸매'가 아닌 '엽기'와 '코믹'이라는 정반대의 질감으로 전 세계에 어필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담스러웠던 외모는 코믹이라는 배수의 진을 통해 친근하게 어필되는 극적 반전을 이뤄냈다. 잘나지도 않고 엽기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싸이가 화제의 중심이 되는 지금의 현상에 우리 시대의 대중은 대리민족이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은 당해낼 수 없다. 싸이의 성공은 어떤 음악이든 자기 색깔을 담보한 양질의 콘텐츠는 끝내 성공한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성공한 콘텐츠로 장르쏠림이 극심한 우리 사회의 천박한 관행이다. 그의 성공에 고무된 제작사들은 비슷한 스타일로 '묻지 마'식 따라하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공멸의 지름길이다. 싸이는 트렌드에 민감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색채가 분명한 음악으로 오랜 시행착오 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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