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가수 싸이의 빌보드 싱글 핫100차트 1위 등극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1894년 미국 뉴욕에서 창간한 '빌보드'는 1950년대 중반부터 대중음악의 인기 순위를 집계해 발표해왔다. 최고의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는 빌보드 차트는 그 선명성으로 세계 최고의 차트로 공인되어 있다.

국내 대중가요 인기차트는 대표성을 지닌 선정기관이 전무했다. 각 방송과 잡지, 단체별로 일관성이 없는 각기 다른 인기가요 차트를 발표를 했기에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모든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보존되어 있는 빌보드 차트와는 달리 한국대중가요의 과거 차트는 거의 보존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금껏 애창되고 있는 명곡들이 실제 가요 차트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렸는지를 확인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지금은 폐간하고 사라진 대중음악월간지 음악세계 1989년 3월호에는 무려 7개의 대중가요 인기 차트가 소개되어 있다. 그 중 1989년 1월 16일부터 2월 15일까지 한 달 동안 각종 차트와 조사를 종합적으로 집계한 는 서울시 내 16개 음반 도매상 조사 분이 30%, 음악세계 독자 투표 30%, 전국 DJ연합회 차트 20%, 뮤직박스 차트 10%, KRTC방송 차트 10% 등 음반과 노래에 대한 판매, 방송, 대중의 반응 등 여러 가지 사안을 다각도로 반영했던 비교적 공정한 차트였다.

조덕배의 3집 수록곡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거야'는 2월 차트에서 45위에 랭크되어 있다.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꿈에', '나의 옛날이야기'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감성적 보이스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들려준 그는 1985년 '사랑이 끝나면'으로 데뷔했다. 그는 1989년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에서 10대가수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는 포크 발라드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는 지체장애를 딛고 성공한 뮤지션이다. 가슴을 파고드는 그의 애절한 노래들은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노래는 한줄기 구원의 빛

힘겹고 위태로워 보였던 삶처럼 그의 음악활동 또한 평탄치는 못했다. 1991년 이후 4차례에 걸쳐 대마초를 피우다 적발되어 활동을 중단했고 지난 2009년에는 뇌졸중 판정을 받으며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했다. 음악은 그에게 언제나 한줄기 구원의 빛이 되었고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를 북돋아 주었다.

남자가수들이 노래에 몰두하는 경우는 대개 노래가 외로운 자신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경우와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을 때가 일반적이다. 조덕배 역시 애틋한 짝사랑 때문에 창작의 물꼬를 트며 가수가 되었다. 중학생 시절, 그는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로 가늘어진 다리가 부끄러워 학교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고 한다. 목발을 한 채 등하교하는 자체가 곤욕이었던 것. 학교에서도 늘 놀림의 대상이었기에 가슴속에는 언제가 큰 상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형에게 기타를 배웠다. 음악과 친구가 된 그는 학교 가는 날보다 집에서 기타를 치는 날이 많아졌다. 학교에 가지 않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어느 날, 자신의 방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집 2층 창가에 두어 살 아래로 보이는 긴 생머리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그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말없이 창문을 열어놓고 그의 노래를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날부터 조덕배는 소녀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짝사랑에 빠졌던 것. 그러나 불구의 몸으로 그녀에게 다가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창문가에 바짝 다가가 좀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는 것뿐이었다.

마치 그의 노래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창문을 활짝 열고 노래를 들어 준 소녀에 대한 감정을 노래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인가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 애틋한 그리움의 정서가 녹아 있다. 시간이 흘러 조덕배는 앞집이 헐리고 신작로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녀가 이사 가는 날. 용기를 내 목발을 짚고 한 손에 꽃다발을 든 채 소녀의 집으로 갔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휠체어를 탄 소녀는 슬픈 눈으로 그의 방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 노래 제목처럼 그가 더 이상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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