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마의들이 쓰던 말침과 침통.
한국 드라마 최초로 수의학 세계를 조명해 화제를 모은 '마의'가 지난 1일 베일을 벗었다. 이 드라마는 말을 치료하고 돌보는 '마의(馬醫)'라는 독특한 소재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

지난 주 방송된 '마의' 1편을 보면 조선시대 마의의 낮은 지위를 암시하는 듯한 대사들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천한 마의 주제에", "말똥 냄새는 씻고 왔습니다" 등 마의를 비하하는 대사를 통해 조선시대 마의가 상대적으로 천대받는 직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 속 마의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지금에야 동물을 반려동물로 인식하고, 소위 '동물권'을 보호하려는 문화가 성숙해지면서 수의사 또한 선망 받는 직종으로 부상했지만, 조선시대 마의는 도류(道流)나 화공(畵工)과 같이 잡직(雜織)에 속해 양반에 들지 못했다. 오늘날 수의사는 의과대학과 마찬가지로 예과 2년, 본과 4년을 이수한 후 국가자격시험에 합격해야 자격을 얻게 되지만, 당시 마의는 마필관리자 가운데 의학지식을 대충 갖춘 사람을 수시 채용하는 임시방편적인 선발 방식을 취했다.

말의 건강관리를 잘못했을 때는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경국대전에는 '거세한 마(馬)가 거세한 지 21일 내에 죽으면 그 거세 수술한 자와 합쳐서 책임을 논한다. 우마가 죽으면 죽은 우마 2필에 대하여 1필씩 변상 징수한다'는 규정이 있다. 특히 말의 병이나 죽음에 건강관리의 부실함이 그 원인이 있는 경우 가중 처벌하도록 규정하였고, 이 규정은 조선말까지 지속됐다. 이를 통해 '마의'는 천대 받았지만 '말'은 중요한 국가 자원으로 엄격하게 관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민간에서 활동했던 마의들은 주로 독학을 통해 드물게 마의 노릇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 '마의'의 주인공인 백광현 또한 의서를 보지 않고 민간에서 자기만의 침술 방식으로 경험을 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무렵의 생활상을 전하고 있는 오희문(吳希文)의 일기 <쇄미록>에는 자신이 기르는 말이 다리를 저어 다른 지방에 사는 말 의원을 불러 치료한 후 소주 한 사발과 누룩 한 장을 수고비로 지불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따르면 말 의원의 본업은 갓 만드는 사람이었으나 부업으로 마의 노릇을 했으며 갓을 팔러 장에 온 김에 그를 불러 말을 치료했다고 한다. 마의는 지금의 수의사와 같은 전문직종은 아니었던 셈이다.

말침을 놓을 때 사용했던 혈명지도.
현대판 마의라 할 수 있는 말 수의사들의 드라마 '마의'에 대한 반응은 어떠할까. 서울경마공원 동물병원의 한 수의사는 "드라마에서 천대받는 마의를 보니 지금 마의를 하는 것이 다행인 것 같다. 하지만 말똥 냄새가 옷에 베이는 것은 똑같다"며 "이번 드라마가 수의학 전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드라마 '마의'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홍성필기자 sph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