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의 성공은 탁월한 비주얼 음악의 매력에다 효과적인 홍보 전략도 한몫했다. 대형기획사의 전략 아래 무분별한 방송출연을 자제했고 2∼3곡의 레퍼토리를 정기적으로 교체하며 앨범의 생명력을 연장시켰다. 또한 신드롬으로 이어진 춤과 가창력이 담보된 노래들은 단숨에 당대의 10대 신세대문화를 장악하며 우상으로 떠올랐다.

2000년대 초반 한류는 중국에서 대폭발했다. 이는 개별적으로 진행된 이전의 한국 대중음악의 해외진출역사에서 드러난 한계를 극복한 여러 가수에 의해 집단적이고 지속적으로 소비된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화려했던 외형적 성과에 걸맞은 실질적 이윤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에 한류 거품론이 대두되었다. 국내가수들의 현지에서의 인기가 앨범 판매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은 중국 사회에 만연된 불법 음반시장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의 불법 음반 비율은 전체 시장의 90%이상으로 복사판이 난무했다.

H.O.T와 NRG는 중국에서 20만장이 넘는 판매기록을 세웠는데 불법 복제음반은 그보다 20배가 많은 400만장 정도가 팔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현지에서 발매된 '행복'등 히트곡들이 수록된 HOT의 음반은 한 달 만에 5만여 장이 팔려나갔고 1, 2집 합쳐 14만장을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에 힘입어 남성듀엣 클론, 박미경, NRG, 베이비복스, 유승준 등 국내 인기가수의 앨범들이 대거 중국에서 발매되었다. 하지만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던 중국 대중음악 음반시장의 특수성으로 인해 하나같이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금에 비해 턱없이 낮았던 중국의 환율도 한국가수들의 발목을 잡았다. 2001년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에서 획득한 인세가 한국의 1/20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K-POP에 열광적인 중국 청소년들의 뜨거운 반응을 접한 문화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은 1998년 11월, 김대중대통령의 중국방문 시기에 맞춰 한국대중가수들의 히트곡을 편집한 CD 5,000개를 제작해 중국의 방송사와 청소년,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CD에는 H.O.T의 '행복', 송창식의 '우리는', 조용필의 '친구여', 김건모의 '핑계', 박정현의 '나의 하루'등 15곡을 수록했다. 한류 초기, 중국에서 K-POP이 음반 시장이 아닌 공연시장에 집중되었던 것은 공연의 성공을 보장했을 정도로 인지도가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발매한 음반을 통해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H.O.T는 2000년 2월 중국 문화부 초청으로 베이징 공인체육관에서 공연을 열었다. 무려 1만 2,000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놀랍게도 공연장에는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는 중국 여학생들도 있었다. H.O.T와 함께 클론, N.R.G, 베이비복스, 태사자 등도 중국 팬들의 마음을 달궜다. 이에 후난(湖南)위성TV는 '쾌락대본영(快樂大本營)'이란 프로그램에 한국의 인기 아이돌그룹 NRG를 출연시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코요태, 구피 등 수많은 한국가수들이 중국 TV에 줄을 이어 출연했다.

현지 발매 음반 인기 폭발

관영 CCTV까지 한류 보급에 가세해 2000년 5월 계림에서 열린 NRG와 베이비복스 공연실황을 소개하며 한국음악 특집을 방송했다. 또한 '상하이 음악세계'등 중국에서 발행되었던 수십 종의 잡지는 매호마다 한국 가수들을 소개했다. 특히 '청춘지성(靑春之星)'은 1997년 이래 빌보드차트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한국가요 톱10'을 게재했다. 1999년 한국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자국 청소년들의 열기를 중국 공산당 청년기관지 '중국 청년보'가 최초로 '한류'로 표현한 뒤 2000년부터 모든 미디어들이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 진출 초기, 거대한 불법복제 시장, 중국 정부의 자국문화 보호정책 등으로 한국의 음악기획사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폐쇄적인 환경을 감수하고 중국 진출을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은 기업형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가장 먼저 구축한 SM엔터테인먼트 밖에는 없었다. 중국 현지 법인을 추진한 SM은 2001년 12월 강타, 문희준, SES, 신화, 플라이투터 스카이를 참여시킨 'SM 사대천왕 콘서트'를 시작으로 현지화 전략을 시도했다. 이후 SM 소속 가수들은 서서히 중국에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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