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 손병휘가 4집 <삶86> 발표 이후 긴 공백을 훌훌 털고 5집 <너에게 가는 길>로 돌아왔다. 이번 앨범은 아티스트로서 음악선 노선에 혼돈을 겪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극명하게 투영되어 있다. 신보 발표에 필요했던 5년의 세월은 방황의 시간이었다. 이번 앨범은 지난 2000년 데뷔한 이래 13년차가 된 아티스트로서 음악선 정체성과 노선에 혼돈과 치열한 갈등을 겪고 있는 모습이 극명하게 투영되어 있다.

자신을 '시민가수'로 불러달라는 이유는 민중가요와 대중가요를 아우르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손병휘는 1993년 서총련노래단 '조국과 청춘', 1994-1998년 포크그룹 노래마을에서 그룹 활동을 하다 2000년 솔로 1집 '속눈썹'으로 공식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5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했다. 혼자서 작사·작곡·노래를 하는 싱어송라이터에다 프로듀서·매니저 노릇까지 하기에 스스로를 '싱어송매니저'라고 소개한다.

그는 긴 공백에 대해 "그동안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했기에 창작자로서는 만족하지만, 프로듀서와 매니저로서는 지쳐 있었다"고 말한다. 대중을 상대로 활동하는 가수라면 모두가 기억해 주는 히트곡 보유는 지속적 활동여부에 너무도 중요하다. 민중가수로는 제법 인지도가 있고 내용 있는 앨범을 발표해 왔지만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13년 동안 음악활동을 지속해온 그의 음악활동은 기적에 가깝다.

5집까지 활동을 이어 온 원동력은 '갈증'이다. "4집 이후 신보를 발표까지 5년의 공백을 가졌던 것은 프로의 세계는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을 하지 않으면 뭘 하지 생각했을 때 캄캄해졌다. 음악을 응원가로만 만들 수 없다.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고 했을 땐 다른 거다. 그런데 어디서 출연요청 전화가 오면 공짜 개런티까지는 좋은데 남의 노래로 레퍼토리까지 정해서 불러달라고 할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 나는 무대에서 내 노래를 하고 싶다는 갈증에 여전히 목이 마르다."

방향성과 가능성 찾아

작, 편곡에서 프로듀싱, 홍보까지 1인 4역을 감당하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그는 더 근사한 사운드 구현에 대해 고민하는 뮤지션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고 있다. 이번 앨범은 저렴하고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는 이점이 있는 기존 녹음실을 포기하고 아날로그 장비를 갖춘 스튜디오를 선택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LP로 듣는 것 같은 따뜻한 아날로그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서사적 메시지와 아티스트의 순정. 이번 5집은 정반대의 음악을 놓고 고민하는 뮤지션으로서의 치열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총 13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은 비트 강한 노래들과 어쿠스틱 포크 질감의 서정적인 곡들로 선명하게 나뉜다. 록 비트로 임팩트를 가한 노래들은 대부분 메시지 전달에 중점을 둔 서사적 노래들이고 포크 선율로 채색된 서정적 노래들은 아티스트로서의 순정성을 담은 결정체다. 마치 두 장의 음반을 섞어 놓은 것 같은 혼란스런 앨범이 절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가야할 음악적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크 록을 기반으로 아트 록으로 지평을 넓힌 이번 앨범에서는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아코디언과 무그 신디사이저, 멜로트론을 앞세운 드라마틱한 선율과 꼼꼼한 편곡으로 내공이 깊어진 중견가수로서의 존재가치를 신선한 사운드로 웅변한다.

비판과 성찰로 무장한 서사적 메시지를 극복하려는 손병휘의 고민은 오늘 날 민중가수들이 겪고 있는 솔직한 모습이다. 5집의 핵심은 메시지가 아닌 아날로그 사운드다. 서정적이고 선동적인 극과 극의 사운드가 공존하는 이 앨범의 혼란스런 정체성은 따뜻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희망'이란 주제의식의 화학작용을 통해 극복된다. 아트 록을 구현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악기와 사운드를 시도했고 기승전결이 분명한 특유의 창법에도 절제력을 가미시키는 변화를 시도했다. 이 앨범의 백미인 타이틀 곡 '쿠바로 떠나며'는 손병휘가 제시한 해답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노래를 방송금지곡으로 대접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