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휘 5집의 백미는 '쿠바를 떠나네'다. 이 노래는 카스트로와 함께 혁명을 성공시킨 쿠바의 2인자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남미의 게릴라 지도자로 숨진 체 게바라가 쿠바를 떠나며 남긴 편지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이 곡이 방송 금지된 이유는 다종예술가 임의진이 의역한 가사가 일방적 의견을 담고 있고 무엇보다 '즐처드셈'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즐겁게'의 준말인 '즐'은 인터넷에서 '무시하겠다'는 의미로 쓰인다. '처드셈'은 '드세요'의 비속어로 '즐처드셈'은 '웃기지 마시길'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사실 '쿠바를 떠나네'는 정규앨범 이전에 2차례나 취입한 곡이다. 하지만 녹음 사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늘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60년대 아날로그장비의 음원을 따온 멜로트론의 음원을 디지털화하고 오카리나 사운드로 자신의 음악적 화두인 서정과 서사를 꽉 차게 구현했다. "더 외칠 수 있지만 외치지 말자"는 절제력이 빛나는 보컬도 압권이다. 앨범 수록곡들은 앨범은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가 강력하다. 지난 3월, 통합진보당 사태를 경험한 그는 알량한 기득권에 집착하는 모습에 진보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좌절을 느꼈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는 희망으로 신보 제작의 원동력을 수혈 받았다. 그는 "기득권을 포기한 체 게바라의 편지 '쿠바를 떠나며'를 완성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이번 앨범은 9번 트랙까지가 정규앨범이고 나머지는 일종의 보너스 트랙이다. 전주 전간후주 테마가 똑같은 1, 6, 9번 트랙은 일종의 콘셉트 구성이다. 그러니까 '담대하게', '승리의 여신', '나란히 가지 않아도 Ⅲ'는 그가 제시하고 싶었던 일종의 '승리 트릴로지'다. 3곡 모두 도입부에 같은 선율의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와 멜로트론 연주를 넣었다. 월드뮤직 전도사 성시완에 열광했던 키즈였던 그는 평소 꿈꿔오던 아트록의 질감을 살리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에 갈증을 느껴 익숙한 모든 것들과 이별을 단행하는 모험을 택했다. 가수가 바뀌지 않으니까 녹음 환경이라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날로그 장비가 있는 석기시대 녹음실을 선택했고 아날로그 정서를 이해하는 밴드 코스모스와 이반의 뮤지션인 김상혁과 강승희에게 엔지니어링을 맡겼다.

8월에 끝내려 했던 일정은 녹음 프로 수 오버와 믹싱까지 늦어지는 악재로 난항을 겪었다. 그는 "스트레스는 극심했지만 인내와 소통으로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나도 사람이 되어간다는 기쁨을 맛봤다"고 전한다. 9월 초에 발표된 손병휘 5집에는 서정과 서사를 아우른 따뜻한 마음으로 채색된 노래 13곡이 담겨있다. 7곡은 이번에 창작한 노래들이다. 이 시대에 진보적 인사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를 고백하는 '너에게 가는 길'과 지치고 좌절한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린 '구르는 돌', 20년 동안 변함없이 응원해준 아내에게 바치는 연가인 '손병휘의 제비꽃', 힘겨운 현실에도 힘을 내자는 메시지를 담은 '승리의 여신'은 멜로디가 아름다운 새로운 민중가요다.

그는 "좋아하는 음악으로 데모를 하자"는 마음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1986년 동교동 철길 옆에 있었던 '힐 스트리트 블루스' 음악카페에서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와 격일제로 노래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카페를 찾아온 동아리 멤버 중 그의 시선을 잡아끈 수수한 외모의 이대생이 조동진의 제비꽃을 신청했었다. 그의 아내가 된 그 여대생은 자신과의 추억을 녹여낸 '손병휘의 제비꽃'을 듣고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돈을 못 벌어도 자기 자신만 포기 않으면 된다"며 용기를 준 아내에 대해서도 그렇고 TV에 나오지 않는 자신의 노래를 다 따라 부르는 아들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망울은 어느새 붉어졌다.

손병휘는 "아직도 아내를 생각하면 뭉클하다. 그래서 히트곡 하나 없지만 스캔들도 없다."고 웃는다. 민중가수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 현실에 대한 목소리를 음악으로 표출할 때 존재가치를 획득한다. 그러나 서사와 서정이라는 음악적 표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의 뮤지션으로서의 순정적 모습에서 새로운 존재가치가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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