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김-양' 트리오 합작… 꿈을 잃은 대중에 큰 위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대중음악사를 살펴보면 어느 시대나 수많은 히트곡을 합작했던 명콤비들이 존재한다. 시각과 평가에 달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30년대의 <남인수-박시춘-이부풍> 콤비를 시작으로 40-50년대의 <현인-박시춘-유호>, 60-70년대는 <현미-이봉조>, <이미자-박춘석>, <배호-나규호-전우>, <패티김-길옥윤>, <혜은이-길옥윤>이 그랬고 80년대에는 <조용필-김희갑-양인자>, <이문세-이영훈>, <변진섭-하광훈-박주연>이 그리고 90년대에는 <김건모-김창완>, <쿨-윤일상>으로 그 찬란한 역사는 이어졌다.

'가왕'으로 불리는 조용필은 한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뮤지션이자 20세기 최고의 아이콘이다. 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를 관통하며 그가 부른 수많은 노래들은 어김없이 히트했다. 그가 히트곡 '비련'의 한 소절 '기도하는'을 부를 때마다 '꺅~'하고 내지르는 소녀 팬들의 괴성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장면으로 각인되어 있다. 싱어송라이터인 그에게도 명콤비가 있을까? 1인 독주시대를 굳혔던 80년대의 조용필을 언급할 때 양인자, 김희갑 부부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도 폭넓은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그 겨울의 찻집', 'Q' '서울서울서울' '바람이 전하는 말'그리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말이 필요 없는 이 콤비의 명곡들이다.

1980년대 대중가요 음반에서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이란 문구는 60-70년대의 '신중현사운드'를 능가하는 흥행 보증수표였다. 거기에 당대 최고의 절창 조용필까지 가세했으니 80년대 한국대중음악계에서 <조용필-김희갑-양인자>는 최고의 명콤비로 명성을 구가했다. 대중가요에는 노래마다 기막힌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노래들이 무수하다. <조-김-양> 트리오가 합작한 명곡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예외는 아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의 서두를 소재로 한 이 노래의 가사는 대중가요의 가사로 만든 것이 아니라 양인자가 대학시절 신춘문예에 거듭 낙방을 하고 있을 때, 당선소감으로 쓸 생각으로 다방 구석에 틀어박혀 미리 써 둔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처참한 처지를 위로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의미에서 쓴 노랫말이다.

그래서 인가. 이 노래는 유독 힘겨운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는 대중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안겨주는 기능을 발휘한다.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까지 가서 힘들게 먹이를 구하려 했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도전하면서 자신의 꿈을 끈덕지게 추구해야 하는 인생의 교훈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이 노래를 자신을 대변해주는 인생의 노래라고 말하는 남성은 실로 무수하다. 터프가이 배우 최민수도 그 중 한 명일 것이다. 그가 무명배우였던 시절, 눈발이 날리는 한계령을 넘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벅찬 감동에 차를 멈추고 끝까지 들었다"고 훗날 고백을 했다. 그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것은 짙은 고독과 남성적인 체취를 담고 있는 가사의 도전정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용필은 1985년 8집 준비에 들어갔다. 총 11곡이 수록된 조용필 8집에는 조용필이 창작한 노래가 단 한 곡도 없다. 앨범에는 김희갑이 작곡한 노래가 5곡으로 가장 많고 정풍송, 손석우, 김영광, 장욱조, 임석호, 김기표까지 6명의 작곡가들이 각각 1곡을 참여했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당대 최고 인기작곡가들이 무려 7명이나 참여한 독특한 내력의 앨범이다. 무수한 명곡이 동시다발적으로 한 앨범에 수록될 수 있었던 것은 변화를 꿈꿨던 조용필의 의지가 한 몫 단단히 했다. 조용필은 사적인 술좌석에서 '형님'으로 부를 정도로 무명시절부터 돈독한 사이인 작곡가 김희갑과 작사가 양인자 부부를 찾았다.

그가 이들 부부를 찾은 것은 80년대 들어 자신이 창작한 노래로 히트퍼레이드를 벌였기에 다른 작곡가들이 만든 노래를 취입해 새로운 음악적 변화를 시도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조용필에게 노래를 주고 싶은 작곡가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지만 그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이들 부부를 신보 앨범의 파트너로 가장 먼저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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