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슬로프 길이만 213㎞ 달해알프스 준봉들 내려다보며 스키 타다가 일광욕 즐기고커피 한 잔 음미하는 스키어 천국 팝 콘서트 등 다양한 축제도 열려

스키코스 아래의 봉우리들
스위스 융프라우는 겨울 호흡이 숨가쁘다. 산악마을의 상점들은 겨울에 접어들면 일제히 문을 열고, 호텔 숙소 예약은 한달 전에 동나기도 한다. 융프라우의 겨울시즌은 알프스의 설원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빽빽하게 채워진다. 열차를 타고 올라 '순백의 낙원'에서 스키런을 즐기는 상상이 이곳에서는 곧 현실이 된다.

융프라우 지역에는 융프라우, 묀히, 아이거 등 알프스의 준봉들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3,454m)인 융프라우요흐까지 산악열차로 오르면 알프스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융프라우와 알레치 빙하의 장엄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멀게만 느껴졌던 빙하 위의 만년설은 겨울이면 산 아래까지 자연스럽게 흘러 내린다. 봉우리, 빙하 구경에 알프스 스키체험까지 곁들여 지는 흥분되는 시기다. 붉은색 산악열차는 알프스의 청정 산악마을과 스키 코스를 연결하며 달린다.

스키를 지니고 산악열차에 오르다

설산을 오가는 산악열차
이곳에 스키 슬로프가 따로 마련돼 있는 것은 아니다. 한적하게 열차를 타고 오르거나 봄, 가을 트래킹을 즐겼던 대부분의 코스가 눈이 내리면 천연 슬로프로 바뀐다.

아무도 지나지 않는 설원 위에 흔적을 남기고, 터널 위에 쌓인 눈을 점프로 지나치는 스키어들을 흔하게 목격하게 된다. 12월 시작된 융프라우의 스키시즌은 4월까지 이어진다.

열차에 스키나 보드를 지니고 오르는 모습은 이곳에서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열차 안에는 스키 거치대가 별도로 마련돼 있을 정도다.

스키를 즐기는 연령대도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부터 서너 살 꼬마까지 다양하다. 한국처럼 멋진 스키복으로 몸을 치장하지는 않았어도 그들 모두 생활에서 경륜이 묻어나는 스키어들이다.

아이를 학교까지 바래다 준 후 집에 올 때는 스키를 타고 귀가한다는 현지 아줌마의 얘기에는 귀가 솔깃해진다.

가장 높은 고도에서 열리는 스노펜 에어콘서트
겨울 융프라우가 단순한 설경 관광지가 아니라는 것은 스키코스만 살펴봐도 납득이 간다. 융프라우 일대 스키코스의 총 슬로프 길이는 213km에 이른다. 웬만한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거리다. 그중 최장 스키코스는 12km나 된다.

천연의 산자락이 슬로프가 되니 슬로프 개수를 일일이 세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굳이 헤아리면 총 79개의 공식 슬로프가 존재한다. 매년 월드컵 대회가 열리는 최상급코스 외에도 가족 단위로 이용할 수 있는 초보자용 슬로프들도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융프라우 일대를 오가는 산악열차는 겨울이 되면 리프트의 역할도 함께 한다. 열차를 타고 올라 중간 간이역에 내려 스키로 내리꽂는 질주본능이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다.

알프스를 채색하는 겨울축제들

이 일대의 눈은 부드러운 '파우더 스노우'다. 넘어져도 큰 통증은 없다. 그 눈이 몇m씩 쌓인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한국처럼 콩나물 슬로프에 리프트를 타기 위해 오랜 시간 대기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없으니 쉼 없이 반나절만 타도 오히려 체력이 부친다. 스키를 타다 말고 의자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거나 뜨거운 커피 한잔 마시며 설산을 음미하는 팔자 좋은 사람들도 있다. 융프라우 알프스 스키의 낭만은 또 이런 점들이 묘미다.

융프라우 지역 전체가 거대한 스키장이지만 스키 지역은 클라이네 샤이덱~멘리헨, 그린델발트~피르스트 구간으로 크게 구분된다. 클라이네 샤이덱 코스는 슬로프 어느 곳에서 라이딩을 하던 아이거 북벽이 배경이 되고 융프라우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옆을 붉은 색 산악열차가 영화속 장면처럼 유유자적 지나친다. 그린델발트~피르스트 구간은 완만한 슬로프가 많아 초중급 가족 스키어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 구간은 봄, 가을이면 바흐알프제 트레킹과 트로트 바이크 타기로 멋진 알프스 마을 경치를 선사했던 곳이다. 슬로프 아래는 소들이 풀을 뜯어먹던 초원이었다.

산악마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겨울축제는 스키시즌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린델발트에서는 겨울 내내 월드스노우 페스티벌이 펼쳐지는데 이 눈조각 전시회는 한 일본 조각가가 1983년 하이디의 눈조각상을 만든 뒤로 매년 이어지고 있다.

매년 1월 중순 산악마을 벵겐 인근의 라우버호른에서 열리는 국제스키대회 때는 내로라하는 스타급 선수들이 출전한다. 벵겐, 그린델발트 모두 융프라우가 품어낸 마을들이다.

젊은 청춘들의 피를 가장 뜨겁게 달구는 것은 3월 열리는 스노우펜 에어 콘서트다. 가장 높은 고도에서 열리는 야외 팝 콘서트로 해발 2,061m의 클라이네샤이덱에서 선율이 쏟아진다. 세계 유명 팝 가수가 한자리에 모이는데 유럽의 청춘들이 너도나도 몰려와 설원 위를 빼곡하게 채운다.

스키 외에도 융프라우 지역에서는 눈썰매 또한 인기다. 질주 속도는 스키 못지 않다. 세계 최장의 눈썰매 코스로 표고차는 1,600m나 된다. 일부 눈썰매 코스에서는 야간조명 아래에서 밤늦게까지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융프라우의 산자락 위에 올라선다면 굳이 스피드를 즐기지 않아도 좋다. 설산아래 둥지를 튼 산악마을의 절경만 바라보고 그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숨은 턱턱 막힌다. 때묻지 않은 설산의 겨울 감동은 쌓이는 눈처럼 가슴 깊이 내려앉는다.

여행 메모

가는 길=취리히까지 항공으로 이동한 뒤 베른 등을 경유하는 열차를 타고 인터라켄에 도착한다. 산악열차로 갈아탄 뒤 그린델발트를 기점으로 곤돌라를 이용해 피르스트 구간에서 스키를 타거나 클라이네샤이덱까지 열차로 오른 후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스키=리프트는 오후 4시 까지만 리프트가 가동된다. 한국에서의 중급자라면 초보자(easy) 코스를 이용하는 게 적당하다. 관광과 스키를 겸하려는 여행자에게는 반나절 스키가 가능한 '스키 익스피리언스 패스'가 유리하다. 오전에 융프라우요흐를 등정하고 클라이네샤이덱에서 스키장비, 스키복, 장갑 등을 빌릴 수 있다. 2,3일짜리 스키패스에는 융프라우요흐 왕복 외에도 열차, 리프트 탑승이 포함된다. 겨울시즌 산악마을의 숙소는 사전예약이 필수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