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7월 28일 대한뉴스 '국내 첫 LP' 논란 잠재워

국내 최초의 LP가 제작된 시점은 그동안 1956년, 1957년과 1958년 세 가지 설이 난립하며 혼란을 안겨주었다. 또한 1962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12인치LP로 제작된 여성듀엣 <김치캣>의 독집 이전에 국내에서는 10인치 LP만을 제작한 것으로 공식화 되어 있었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번에 확인되었다.

국내 최초의 LP제작에 대한 모든 논란을 뒤엎는 확실한 자료가 있다. 1958년 7월 28일 상영된 공보실 제작 대한뉴스 제 174호 보도영상이다. 정부에서 제작한 대한뉴스는 1945년 해방 이후에 전국의 극장을 통해 의무적으로 '3분 보도'로 상영되었고 1994년 12월 31일 2040호를 끝으로 종영했다.

당시 흑백으로 제작된 대한뉴스 제 174호 보도영상은 "7월 23일 서울 정동 서울방송회관에 마련된 국내 최초의 LP제작소가 개소식을 했다."고 LP제작 모습과 당시 오재경 공보실장의 개소식 시찰모습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대한뉴스 제 174호에 앞서 소개한 자료들은 그동안 국내 최초 LP 제작연도에 혼선을 빚게 만든 주범들이다. 반세기 동안 매주 정기적으로 공식보도를 했던 공보처의 대한뉴스는 이 중 가장 공신력 있는 기록일 것이다.

1958년 대한뉴스 동영상과 한국 방송사료 보존회가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한국방송사'에 1957년으로 기술한 4장의 스틸사진을 살펴보자. 1년의 간극이 있지만 개소식 장소와 참석 인물들이 착용한 의상까지 정확하게 일치한다.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개소식 장면이란 이야기다.

문제는 두 자료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반팔 의상을 착용하고 있는 점으로 미뤄 계절적으로 여름이 확실하다. 고로 방송사료 보존회의 '4월 30일' 기록은 오류이고 대한뉴스의 '7월 23일' 방영기록이 설득력이 있다.

한국 최초의 LP는 대한뉴스 제 174호 'LP제작소 개소식' 보도에서 전하는 1958년 7월 23일에 공식 제작된 것이 확실하다. 한국 방송사료 보존회의 LP제작 기록은 "건전가요와 민요, 이승만대통령 탄신기념행사 내용을 제작했다"고 수록곡 내용에 대해 전하고 있지만 최초로 제작한 LP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명기 하지 않고 있다.

기술한 내용에는 치명적 오류가 무수한데 글에 명기한 1957년에 모든 팩트를 의도적으로 맞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니까 '1957년에 이승만 대통령 82년 탄신 기념음반을 제작했다'는 설명도 실제 제작된 LP 실체가 '84회 탄신 기념음반'이기에 명백한 오류다. 이승만대통령이 1875년 3월 26일생이니 이 음반은 1959년에 발매된 것이 정확하다.

현재 KBS에는 최초로 LP를 제작했던 LP제작소의 상황을 증언할 인물이 없다. LP는 KBS기술진이 아닌 외부기술자들을 영입해 제작했기 때문이다. 외부 기술자를 영입해 제작한 사실은 한국 방송사료 보존회의 '사진으로 보는 한국방송사' 내용에 게재된 여러 장의 LP제작사진을 통해 확인되었다.

그 단초는 1950년대 한국대중음악산업에 대한 증언을 듣기 위해 만났던 오아시스레코드 창립자 봉철대표의 인터뷰가 시발점이 되었다. 봉철대표가 언급한 오아시스레코드의 기술이사 이름과 KBS LP제작실 개소식 사진 속 인물이 동일 인물임이 확인되면서 한국 최초의 LP에 대한 의문점은 그 오랜 봉인이 풀리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봉철 대표는 인터뷰 때 "KBS가 LP를 제작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다. 솔직히 나이가 들어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지만 민간의 음반제작사로는 오아시스레코드가 최초로 LP를 제작한 것만은 분명하다."고 증언했었다.

사실 봉 대표는 1973년에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국내 최초의 LP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는 봉철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아시스에서 1956년 제작한 손인호의 '비내리는 호남선'이 국내 LP시대의 막을 연 1번 타자"라는 오보했었다.

1958년 국내 최초로 제작된 LP음반은 건전가요, 민요, 가곡을 담은 음반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복잡한 음반번호 체계 때문에 어떤 음반이 최초인지 추정조차 쉽지 않았다. 이 난제에 대한 해답 역시 대한뉴스 제 174호 보도영상에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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