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필요해' … CD 없는 음반

유성기로 시작된 음반 미디어는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LP, 카세트테이프, CD, MP3등 다양한 형태로 진보돼 왔다. 음반을 소장했던 아날로그시대에서 음원을 소비하는 디지털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다. 디지털 음원이 대세인 시대라지만 가수나 뮤지션들은 방송홍보를 위해 혹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리기 위해 지금도 음반을 제작하고 있다.

흥미로운 2개의 음반이 발표됐다. 이 음반들은 음반시대의 몰락을 불러온 디지털음원이 장악한 대중음악시장의 거센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는 점에선 다분히 저항적이다.

하지만 새로운 형식의 음반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아이돌그룹 '샤이니'는 2달 간격으로 파트1, 파트2로 연결되는 연작으로 구성된 정규 3집을 발표했다. 그리고 여성 싱어송라이터 시와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음반이 없는 음반'을 발표했다.

시와는 "전남 담양으로 귀촌해 사는 친구가 전기를 쓰지 않고, 촛불을 켜고 아궁이에 불을 때며 평화롭게 사는 모습에 감동받아 가능한 것부터 제 삶을 조금씩 바꿔보고 싶었어요.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플라스틱 CD가 마음에 걸려 'CD 없는 음반'을 만들자는 결심을 했습니다."라고 음반 탄생배경에 대해 말해준다.

일종의 '디지로그' 형식인 시와의 프로젝트 음반 '시와, 커피'는 디지털 음원과 재킷, 소책자만 존재하고 CD가 없다. 그러니까 재생지에 콩기름으로 인쇄한 음반 소책자를 무료 배포하고, e메일로 음반을 주문하면 답신에 노래를 첨부해 보내주는 방식으로 배포되는 음반이다.

자연보호의 메시지를 담긴 이 음반을 제작을 위해 그녀는 독립 레이블 '나무가 필요해'를 직접 만들었다. 디지털 파일로 음악을 듣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대중을 위해 현재 친환경적인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CD 제작을 타진 중이라 한다.

3장의 음반을 유통해 본 그녀는 정식 유통한 2집에서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에게 좀 더 집중하고 공연을 하며 음반을 판매하는 것이 더 효과적임을 깨달았다. 음반 타이틀 '시와, 커피'는 2012년 10월부터 시작된, 그녀의 홈페이지와 팬 카페의 기획 공연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 싱글은 정규앨범이 아닌 열두어 명 남짓한 소박한 공간에서 가수와 청자가 마주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소박한 음악을 나누기 위해 만든 11곡 중에서 가장 호응이 좋았던 4곡을 선곡한 프로젝트 음반이다.

'시와'라는 예명은 이집트 북부에 있는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의 이름이자 예전에 그녀가 자주 찾았던 홍대 인근에 소재한 맥주 바의 이름이기도 하다. 전시와 공연이 자주 열리던 그 곳에서 자신의 공연을 꿈꿨던 그녀는 바가 사라진 후에 클럽 공연을 시작하며 예명을 스스로 작명했다. 그러니까 '시와'라는 예명은 곧 이제는 다시 갈 수 없는 사라진 공간과 대상들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가 담겨 있는 셈이다.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서울과 인천, 포항을 오가며 성장한 그녀가 자연을 사랑하는 친환경적 유전인자를 품게 된 것은 아파트 단지 인근의 논, 밭에서 개구리 알을 채집하며 자연과 더불어 놀며 성장했던 어린 시절의 생활환경이 한 몫 했다.

어린 시절 노래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라디오 음악방송을 끼고 살았지만 직업적인 가수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1996년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입학해 노래패 동아리 활동을 하며 기타를 배우고 민중가요를 많이 접했는데 서정적인 노래를 특히 좋아했다.

졸업 후에 교사로 일하면서 특수아동을 위한 음악치료과정을 연수받았다. 작곡을 하면서 음악만의 힘과 매력에 빠지기 시작한 그녀는 2006년 '누군가 자신의 음악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30세의 늦은 나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가? 실제로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면 한 폭의 그림이 연상되는 회화성이 탁월하다. 가수와 교사생활을 병행했던 그녀는 좀 더 오래, 좀 더 즐겁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노래란 생각에 2010년 교사 생활을 접고 프로뮤지션으로 변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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