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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읽고 바다로 나아가다

● '중진 판화가' 김상구 목판화전
바다·나무 주제 25점 1일부터 나무화랑 전시
하늘에 떠있는 나무 등 사물들 본질 벗고 회화로 자유롭고 따뜻한 만남
  • 김상구 목판화. No 1043
'중진 판화가'김상구는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왕성하게 작업하고, 후배 작가들과도 소통하고 있다. 작품 속 바다와 나무를 닮아가는 작가다.

김상구 목판화전이 1일부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14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바다'와 '나무'를 주제로 작업한 근작 25점이 관람객을 만난다.

김상구가 즐겨 그리는 소재들은 이미 그 자체로 명료한 언어로 개념화된 일반적 대상들이다. 그런 대상들이 김상구의 그림에 자리를 잡는 순간부터 본래의 의미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물들이 작가에 의해 본질이나 개념을 박탈 당하면서 하나의 회화적 기호로 전이된다.

작가는 새가 날고 있는 하늘을 검은 색, 혹은 텅 빈 공간이란 생각이나 개념으로 어떤 색을 선택하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관객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작가처럼 생각하고 느낀다면 소통이 일치하지만, 고정 관념에 사로잡힌 채 작품에 접근한다면 혼란스러울 것이다. "어떻게 나무가 하늘에 떠 있을 수 있지?","말도 안돼, 어떻게 바다가 하늘이 되고, 하늘이었던 것이 나무가 될 수 있지? 완전 불가능한 일이야!" 라고 생각한다면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관객이 '하늘에 떠 있는 나무가 내 마음에 심어진 나무처럼 참 쓸쓸하구나' 라고 느꼈다면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소통이 이루어진 셈이다. 바다가 나무로 변한 것도 자신의 상상으로, 기호로, 의지로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게 소통은 이루어진다.

김상구의 소재들은 출발점부터 대상과의 '닮음'이나 '사실성'을 배제한다. 그림은, 이미지는 '사실(Reality)'이 아니라 허구지만 사람의 감성이나 기억에서는 리얼리티로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아서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진하 나무화랑 대표는 "김상구 작가는 조형성 이외에 즐겨 사용하는 기표(소재와 표현)에 어떤 기의(의미나 내용)를 애초부터 상정하지 않았다"며 "기의를 찾아서 즐기는 것은 관객의 몫이고, 그 과정에서 작가나 관객 모두가 서로 다른, 혹은 같을 수도 있는 의미나 느낌을 나름대로 즐기면 된다"고 말했다.

하나의 그림을 백 명이 보았는데 모두가 똑같은 것을 느낀다면, 그것은 정확한 정보 전달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예술로서는 상상력이 제거된 채 이루어지는 일방적 고지요, 강요라는 것이다.

미술은 한 장면에 작가의 생각과 감각을 압축시키는 예술이다. 그것도 조형성이나 방법론에 주목하는 형식주의 회화에서는 정확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유다. 정지된 회화의 화면은 독해가 어렵다. 소통은 공용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된다.

회화나 판화가 시각 이미지를 다루면서도 영화와 다른 존재 조건이나 가치를 갖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상구의 목판화는 기의가 사라진 자리에 자유로움, 따뜻함, 고적함, 부드러움, 격렬함, 우수, 싱그러움 등의 즉발적이고 정서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다양한 감흥이 관객의 마음에 오롯이 들어앉는다. 이는 설명이나 개념이 아닌 느낌, 시각성과 촉각성을 아우른 회화적 상징이 있기에 가능하다.

목판화는 나무판의 평면적 조건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표현을 유도하는 매체다. 김상구의 장점은 기의를 거세하고 기표만으로도 충분하게 소통을 이루는 목판화의 매체적 특성을 잘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김상구의 목판화는 쉽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목판화란 매체에 대한 이해가 밑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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