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순간의 애달픔을 스케치한 반야월의 감성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른 가수 박재홍은 1927년 경기도 시흥시에서 태어나 은행원으로 잠시 근무하다 1947년 오케레코드가 주최한 신인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데뷔했다. 1949년 서울레코드가 창설되자 전속가수로 '자명고 사랑', '제물포 아가씨', '마음의 사랑'을 취입해 제법 인기를 끌었다. 1950년 반야월이 창설한 '남대문악극단'의 단원으로 활약하던 중 '울고 넘는 박달재'를 취입했다.

노래 취입 한 달 만에 한국전쟁이 터져 부산으로 피난을 간 박재홍은 도미도, 미도파와 서라벌레코드를 통해 '물방아 도는 내력', '경상도 아가씨', '비 내리는 삼랑진', '번지 없는 항구'를 발표하며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인기가수로 군림했다.

박재홍의 대표곡 '울고 넘는 박달재'는 1968년 심우섭 감독에 의해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영화의 남녀 주인공은 당시 톱 가수였던 남진과 문희가 맡았고 이미 고인이 된 허장강, 도금봉 등이 조연으로 출연했다.

지난 2005년 KBS 성인가요 전문 프로그램인 '가요무대'가 방송 20돌을 맞아 '방송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를 조사 집계했을 때 이 노래는 전체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시대를 초월해 많은 대중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노래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울고 넘는 박달재'는 듣고 싶은 노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대중이 즐겨 부르는 노래 리스트에서도 빠지질 않는다.

2009년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은 창립 35주년을 맞아 만 13세 이상 남녀 1,704명을 대상으로 가장 즐겨 부르는 '18번 곡(애창곡)'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1.7%를 차지한 이은미의 '애인있어요'가 1위에 올랐고 박상철의 '무조건'이 3위, 장윤정의 '어머나'와 김수희의 '남행열차'가 각각 공동 4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오래된 노래인 이미자의 '동백아가씨'(1.1%)와 박재홍의 '울고 넘는 박달재'(0.9%)가 나훈아의 '사랑'(0.8%), 이문세의 '붉은 노을'(0.7%), 소녀시대의 '지(Gee)'(0.7%)와 함께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한국대중은 이 노래를 왜 이리 좋아하는 것일까? 아마도 '물항라 저고리', '부엉이 우는 산골', '성황님', '도토리묵' 그리고 '왕거미 집을 짓는' 같은 토속적인 향취를 물씬 풍기는 반야월의 가사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풍경도 반야월의 손을 거치면 근사하게 사람의 마음을 관통하는 한 편의 시로 둔갑했다. 특히, 2절 마지막 노랫말 중 '박달재의 금봉이야'라는 대목은 각색된 구전 전설로 탄생한 바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경상도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러 가던 중 백운면 평동리에서 금봉이라는 처녀를 만난다. 과거에 급제한 후 함께 살기로 약속한 박달은 금봉이 생각에 공부를 게을리해 과거에 낙방해 돌아가지 못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박달의 금의환향을 빌던 금봉은 상사병을 이기지 못하고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에서 그만 숨을 거둔다. 사흘 후 돌아온 박달은 금봉의 죽음에 낭떠러지로 떨어져 뒤를 따른 이후 그들이 헤어진 고갯마루가 박달의 이름을 따 박달재로 불리게 됐다.

이처럼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전설을 만들어낸 경우는 '울고 넘는 박달재'가 처음이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만한 순애보에 대해 생전의 반야월은 "이 노래 가사를 지을 때 박달과 금봉의 이야기는 알지도 못했다. '금봉이'라는 여자 이름은 이광수 소설 <그 여자의 일생>의 여주인공으로 이름이 하도 예뻐서 가사에 썼다"며 노래에 얽힌 설화는 사실이 아님을 증언했다.

현재 박달재휴게소 입구에는 노래 가사를 새겨 넣은 '박달재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고갯마루에는 동상이 된 박달과 금봉이가 다정하게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제천시는 박달재를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를 뿌리로 반야월의 소장 자료 350점을 모아 '한국가요사기념관' 건립을 추진했지만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투융자심사에서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부결됐다.

결국, 당초 전시관과 공연장, 녹음실, 수장고 등을 갖출 계획은 사업 규모는 축소됐다. 녹음실과 수장고, 야외 공연장 등의 시설은 짓지 않고 '울고 넘는 박달재' 가사를 쓴 고 반야월 선생의 유품과 한국대중가요 자료를 전시하는 전시관만을 건립할 계획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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