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심경·측우기에 딴죽 거는 중국'빨리빨리'에 믹스 탄생 '한국의 에디슨' 우유팩 개발통신·휴대폰 기술 상당수가 국내기업 작품

커피믹스
'최초'라는 말에는 묘한 마력이 숨어 있다. 비록 '최고'가 되지 못했을지라도 어떤 길을 가장 먼저 갔거나 중요한 물건을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심오한 학문 영역에서부터 일상 생활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기록을 모아 만든 '기네스북'에 '최고'뿐만이 아닌 '최초'의 기록들이 함께 담겨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 최초라고만 해도 의미가 적지 않은데 '세계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다면 그로 인한 영예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이에 <주간한국>에서는 우리나라 사람이 발명한 것으로 '세계최초'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들을 모아 살펴봤다.

직지심경, 측우기에 딴죽 거는 중국

교통ㆍ통신의 발달로 전세계가 하나의 가족으로 묶인 요즘은 누가 어떤 것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불과 수백년 전만 해도 다른 나라 사람의 발명품을 확인하기 어려웠고 과거의 기록에 의존하다 보니 '세계최초'를 둘러싼 분쟁도 자주 일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물 논란이다.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는 해당 도서관의 소장품 중에서 불경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심경) 하권을 1967년 발견했다. 직지심경은 고려 말기의 고승 경한이 역대 여러 부처 및 조사의 게송, 법어 등에서 선의 요체를 담은 내용을 뽑아 엮은 책이다.

국제 정보통신 전시회인 ‘엑스콤 와이어리스 코리아’에서 세계최초로 시연된 위성 DMB폰.
박 박사가 발견한 직지심경은 경한이 입적한 지 3년 뒤인 우왕 3년(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은 초간본으로 구한말 주한 프랑스 공사에 의해 반출,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었다. 당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고 있었던 구텐베르크의 성경이 인쇄된 것이 1455년이니 무려 78년이나 앞선 직지심경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이 되는 셈이었다.

이에 박 박사는 3년간의 고증을 거쳐 직지심경이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앞선다는 연구 결과를 내고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직지심경을 출품했다. 직지심경은 2001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직지심경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정받자 중국 학계에서는 북경도서관에 소장된 '어시책'이 동으로 만든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1341~1345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병순 성암고서박물관장이 일본 미쓰비시그룹 정가당 문고에 소장된 어시책 원본을 확인, 1341년 편찬된 목판본이라는 것을 밝히며 직지심경은 여전히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남아있다.

흥미로운 것은 금속활자본뿐만 아니라 목판인쇄물의 '세계최초'도 우리나라가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현존하는 목판인쇄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하 다라니경)으로 704~75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돈황에서 발견된 '금강반야바라밀경'(868년)은 물론이고 일본에서 발견된 '백만탑다라니'(776년)에 비해서도 훨씬 빠르다.

세계최초의 '우량계' 또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 세종 23년(1441년) 발명된 '측우기'가 그 주인공이다. 측우기는 이탈리아 카스텔리의 우량계(1639년)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것으로 세계최초의 우량계라는 명예를 갖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우유팩은 ‘한국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신석균 박사가 개발했다.
세계최초의 우량계로서의 측우기에 대해서도 중국은 딴죽을 걸었다. 중국 기상학자인 주커전은 1954년 '기상학논문집 1919~1949'의 서문을 통해 "중국에서는 풍향, 우량의 관측이 한조부터 행해졌고 1424년에는 우량계가 널리 설치됐으며 건륭 시대인 1770년 조선에도 보내줬다"고 주장했다. 증거로는 1247년 중국 수학책에 원뿔이나 항아리 모양의 그릇에 모인 빗물의 깊이를 바탕으로 강우량을 추측하는 산수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은 원뿔이나 항아리 모양으로는 우량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고 실제로 1700년대까지도 강우량과 관련한 기록은 전무했다는 점을 들어 중국의 주장을 일축했다. 원통형인 측우기는 현재 세계최초의 우량계로 전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세계최초의 온실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쓰였다. 15세기 중반에 의관이었던 전순의가 농업과 생활에 관해 쓴 책 '산가요록'에 따르면 기름먹인 한지를 씌워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가마솥에 물을 끓여 수증기를 이용하는 등 매우 과학적인 방식의 온실이 당시 운영되고 있었다. 이는 그 동안 세계최초의 온실로 알려졌던 1619년 도이칠란트의 하이델베르크 온실보다 170여 년 앞선 것이다.

전세계가 즐기는 , 우유팩

근대로 넘어와서 가장 눈에 띄는 세계최초의 우리나라 발명품은 바로 다. 커피와 크리머, 설탕이 배합된 는 1976년 동서식품에 의해 세계최초로 만들어졌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상류층 위주로 판매되던 커피가 대중화된 것이 의 발명 덕분이라고 할 정도로 해당 제품은 큰 인기를 끌었다. 저렴한 가격 덕분에 일반 가정은 물론 식당에서도 공짜커피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과학관에 소장 중인 금속활자판 직지심경.
휴대가 간편하고 보관이 손쉬운 데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누구나 동일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점도 의 인기요인이었다. 느긋하게 커피를 내려먹었던 유럽, 미국과 달리 '빨리빨리'가 통용되던 우리나라의 민족적 특성 또한 의 인기를 뒷받침했다.

출시 초기부터 관심을 모았던 는 동서식품이 1978년 동결건조 공법을 도입한 '맥심' 출시 이후 날개를 달았다. 맥스웰하우스 등 여타 회사가 고수했던 분무건조공법에 비해 시설 투자 및 가동비용이 컸던 동결건조공법은 영하 40도 이하에서 커피를 농축ㆍ분쇄ㆍ승화함으로써 향의 손실을 극소화했다.

우유팩 또한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 대표적인 발명품으로 꼽힌다. 원래 우유팩을 처음 개발한 것은 1934년 미국의 'EX-Xell-O 사'였다. 그러나 현재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삼각지붕 모양의 게이블 탑(Gable Top) 모양의 디자인은 1953년 신석균 박사가 개발했다.

5,000종이 넘는 발명품을 만들어내며 '한국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신 박사가 만든 우유팩이었지만 개발 당시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터라 특허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결국 미군들에 의해 미국으로 전달된 우유팩은 사실상 주인 없는 국제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특허 지키지 못해 3조원 날린 MP3플레이어

지난해 말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소식이 있었다. 바로 소니가 33년간 생산해온 휴대용카세트플레이어 '워크맨'의 생산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1970~1980년대 청소년들의 로망이었던 워크맨은 음질이 좋은 CD플레이어가 출시됐을 때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지만 결국 MP3의 출현에 완전히 힘을 잃었다. 수많은 노래를 다운로드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만들어진 MP3는 이후 스마트폰에 들어가며 성장세에 탄력을 받게 됐다.

MP3를 처음 만든 것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인 디지털캐스트의 황정하 사장이었다. 연구개발과 사업화 비용이 부족했던 디지털캐스트는 새한정보시스템과 MP3 설계 특허권을 1997년 공동 출원했다. 이후 양사는 세계최초의 상용 MP3 '엠피맨 F10 '을 개발하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양사의 전략적 제휴는 얼마 가지 못해 깨졌고 디지털캐스트는 다이아몬드멀티미디어와 대만의 S3, 일본의 D&M홀딩스 등을 거쳐 시그마텔에 최종 매각됐다. 새한정보시스템을 인수한 레인콤도 2005년 MP3 특허를 시그마텔에 팔았다. 이후 국내 기업들의 유사제품 출시와 특허무효 소송을 거치면서 국내특허는 권리범위가 축소된 후 결국 특허료 미납으로 소멸됐다.

소멸된 국내특허와 달리 유효하게 존속한 해외특허는 2007년 텍사스MP3테크놀로지가 시그마텔로부터 모두 사들였다. 텍사스MP3테크놀로지는 미국에서 삼성전자, 애플, 샌디스크 등 국내외 대기업들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한 후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특허료를 지급받고 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MP3 기술 적용기기는 전세계적으로 13억대 이상 판매됐으며 로열티 수익을 대당 2달러로만 계산해도 약 27억달러(3조1,500억원)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해외를 떠돌던 MP3 특허는 올해 초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아이리버가 텍사스MP3테크놀로지에서 해당 특허권을 6년여 만에 다시 매입한 것이다. MP3 시장 자체가 위축된 상태라 과거와 같은 로열티 수익을 얻긴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크로스라이센스를 통해 다른 기업의 특허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통신ㆍ휴대폰 최초 기술 상당수가 한국산

현재 글로벌 휴대폰 시장은 애플과 삼성전자가 양분하고 있다. 또한, LG전자와 팬택 또한 전세계 제조사 중 상위권에 위치하며 한국의 위상을 떨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각 기업들의 기술력이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휴대폰 분야에서 유독 많은 '세계최초'를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DMB폰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는 영상이나 음성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기술 및 이를 휴대용 IT기기를 통해 방송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DMB방송을 휴대폰에서 볼 수 있게 만든 DMB폰은 2004년 세계최초로 국내에서 상용화됐다. 같은 해 LG전자에서 지상파DMB폰까지 개발하며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DMB폰 종주국에 올라섰다.

세계최초로 두 개의 CPU(Central Processing Unit)를 탑재한 듀얼코어 스마트폰도 우리나라가 시초다. LG전자가 2011년 출시한 '옵티머스2X'는 세계최초의 듀얼코어 스마트폰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두뇌가 2개인 만큼 기존의 싱글코어 스마트폰에 비해 속도가 월등해진 듀얼코어 스마트폰이 큰 인기를 끌자 제조사들은 멀티코어 전쟁에 나서기도 했다.

휴대폰 제조사만큼이나 우리나라 통신사들도 세계최초 명단에 자주 올라간다. 1994년 세계최초로 개발된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코드분할 다중접속) 기술이 그 주인공이다. 세계최초로 개발된 CDMA 기술을 바탕으로 퀀텀점프를 한 우리나라의 이동통신 사업은 세계적으로도 기술적인 우위에 설 수 있었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이 세계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수 있었던 것도 CDMA 기술 개발로 이뤄진 통신환경 덕분이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4G LTE(Long Term Evolution) 전국망을 구축하는 쾌거도 이뤘다. LG유플러스는 2011년 LTE를 상용화한지 불과 9개월 만에 전국망 사업자로 올라서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