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사건기자, 신문에 연재된 최초의 범과학 리포트 출간현장을 누빈 생생한 경험… 법의학자·형사 자문 바탕'교통사고 위장한 살인' 등 36개 사례 담아

미국 드라마 'CSI'를 보면 생각지도 못한 놀랍도록 치밀한 수사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범죄 원인을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작은 증거 하나로 범인을 찾아내는 장면은 신기할 정도다. 이 드라마로 인해 과학수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수사는 사고의 원인을 파악해 범죄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신간 '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은 2011년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라는 제목으로 서울신문에 연재된 최초의 신문 범과학 리포트를 다듬고 보충해 출간한 책이다. 13년차 신문기자 유영규가 사건 현장을 누빈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 일선 형사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과학수사 이야기를 전한다. 사건기자라고 불리는 경찰기자로 6년 반을 생활하며, 연쇄살인범부터 다양한 인간군상까지 접한 경험을 바탕으로 36개의 사례를 책에 담았다. '데이트 강간 약물', '교통사고를 위장한 살인', '억울한 죽음의 단서가 된 치아', '살인 진실 밝혀낸 토양감정' 등 다양한 사건사고가 등장한다.

2010년 말,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성폭행사건의 범인을 잡은 사례도 대표적인 과학수사의 쾌거로 소개한다. 증거물 속 정액에서 정자가 확보되지 않아 DNA를 추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남성의 유전자형만 선택해 증폭할 수 있는 장치를 이용, 증거물 속 정액에 함유돼 있는 극미량의 요도 상피세포를 바탕으로 범인의 DNA를 검출해 용의자를 압축했다. 검거된 범인은 정관수술을 받은 남자였던 것이다.

이 책은 DNA 수사 기법 등 사건들을 단순한 흥미 위주로 다루지 않는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실마리도 제공한다. '데이트 강간 약물' 편에서는 약물 범죄에 관대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낮은 형량의 솜방망이 처벌이 결국 유사한 범죄를 재생산해낸다고 비판한다. 또 '보험금 노린 살인 혹은 자살' 편에서는 갈수록 늘어나는 생명보험 관련 범죄의 실상을 이야기함으로써 이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촉구한다.

저자는 "대한민국 과학수사를 예찬하지도 맹신하지도 않는다. 다만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 과학수사의 현실을 되짚어보고 더 나은 과학수사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며 "이 책의 목적은 범죄와 그로 말미암은 죽음을 단순히 흥밋거리로 삼고자 함이 아니다. 과거를 성찰해 교훈을 얻듯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한 이해를 넓혀 억울한 사람도, 안타깝게 은폐될 수 있는 죽음도 없애자는 취지다"라고 밝혔다. 알마 펴냄. 1만6,500원.



정용운기자 sadzo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