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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 쭉쭉 뻗은 금강송 선비 지조 닮았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맑은 죽계천 휘돌아 흐르고 입구에 수백 년 된 소나무숲 장관
국보 등 많은 보물 품어 옛 문화와 전통 간직한 선비촌 이웃
고택에서 숙박 체험도 가능해
  • 학문을 강론하던 강학당은 보물 1403호로 지정되었다.
쭉쭉 뻗은 소나무 수백 그루가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그것도 그냥 평범한 소나무가 아니다. 춘양목, 황장목, 미인송, 금강송 등으로도 불리는 고귀한 금강소나무다. 수백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이 낙락장송 군락은 흡사 소수서원을 향해 경배하고 있는 듯하다.

이 금강송림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뒤가 허한 소수서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소수서원에는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맑은 시냇물인 죽계천 등이 어우러져 아늑한 공원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5호로 지정된 소수서원은 제향 기능의 사우(祠宇)와 교육 기능의 서재(書齋)를 겸비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어서 더더욱 소중하다. 1542년(조선 중종 37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의 유학자 문성공 안향의 사묘(祠廟)를 세우고 이듬해 학사(學舍)를 옮겨 지어 백운동서원을 설립하면서 소수서원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 후 1544년에는 안축과 안보를 추가로 배향했으며 1550년(명종 5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조정에 상주하여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음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私學)이 되었다. 1633년(인조 11년)에는 주세붕을 추가로 배향했으며 1871년(고종 8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가운데 하나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국보인 안향 초상 등 문화재도 많이 품어

  • 소수서원 초입의 울창한 송림이 정취를 돋운다.
소수서원은 보물 제1402호로 지정된 사당인 문성공묘(文成公廟), 학문을 강론하던 곳으로 외부에 백운동 편액 및 내부 대청에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 편액이 걸려 있는 강학당(보물 제1403호), 직무실 겸 숙소인 직방재와 일신재, 유생들이 공부하던 학구재와 지락재, 장서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성공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집으로 안향의 영정과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坐圖)를 안치하고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11호로 지정된 안향 초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영정으로 1318년(고려 충숙왕 5년) 제작되었다. 충숙왕이 안향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궁중에서 일하던 원나라 화가에게 비단에 채색해 그리게 했다. 본디 순흥향교에 안치해 왔으나 1457년(세조 3년) 부사 이보흠이 세종의 여섯째아들인 금성대군과 함께 일으킨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후 순흥부가 폐지되자 한양의 안씨 종가에 옮겨졌다가 소수서원이 세워지자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85호로 지정된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는 공자와 72제자상을 그린 인물 배열도로 1303년(고려 충렬왕 29) 안향이 원나라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소수서원 건너편 죽계천 바위에는 경(敬)과 백운동(白雲洞)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주세붕은 백운동서원을 세운 후 죽계천 옆 돌출된 바위에 敬자를 새기고 “세월이 흘러 건물이 허물어져도 이 글자는 길이 남아 회헌 선생(안향)을 경모하였음을 전하게 되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옛 문화와 전통 더듬어볼 수 있는 영주 선비촌

  • 직무실 겸 숙소로 쓰였던 일신재
敬자 바위에는 순흥 땅의 아픈 역사와 전설이 얽혀 있다. 단종 복위운동 실패로 희생당한 순흥부 주민들의 시신은 이곳 죽계천에 수장되었고 그 후 밤마다 억울한 넋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하여 당시 풍기군수 주세붕이 원혼을 달래기 위해 敬자에 붉은 칠을 하고 위령제를 지냈더니 울음소리가 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敬자 위에 쓰인 白雲洞 글씨는 퇴계 이황이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

소수서원 입구 오른쪽 숲 속에는 통일신라 작품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59호로 지정된 숙수사지 당간지주(宿水寺址 幢竿支柱)가 우뚝 서 있다. 통일신라 전기에 창건된 숙수사는 단종 복위운동 실패로 순흥부가 풍기군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면서 없어졌으나 높이 3.91m 너비 52cm의 이 거대한 당간지주는 여전히 남아 당시 숙수사의 품격을 짐작케 한다.

소수서원은 우리의 옛 문화와 전통을 더듬어볼 수 있는 영주 선비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57,717㎡ 부지에 들어선 선비촌은 1997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2004년 9월 22일 문을 열었다.

만죽재 고택, 해우당 고택, 김문기 가옥,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 김세기 가옥, 두암 고택, 김상진 가옥 등 기와집 7동과 장휘덕 가옥, 김뢰진 가옥, 김규진 가옥, 두암 고택 가람집, 이후남 가옥 등 초가집 5동이 복원되었으며 정자, 누각, 연자방아, 물레방아, 디딜방아, 산신각, 정려각, 원두막, 곳집, 대장간, 강학당 등도 세워졌다. 이곳 고택에서의 전통 숙박 체험이 남다른 정취를 선사한다.

# 찾아가는 길

  • 소수서원 옆으로 흐르는 맑은 개울인 죽계천
풍기 나들목에서 중앙(55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다음, 풍기 방면 931번 지방도-봉현 교차로(우회전)-931번 지방도-순흥을 거친다.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고속버스, 직행버스, 중앙선 열차 등을 타고 풍기나 영주로 온 다음, 소수서원으로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 맛있는 집

소수서원 인근의 순흥면 읍내리에 묵밥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전통묵집(054-634-4614)이 있다. 옛 혼례식 때의 전통 묵을 재현하여 1983년경부터 시작해 30년 가까운 연륜을 자랑하는 맛집이다. 순우리 메밀만으로 묵을 쑤어 이튿날 썰어서 손님에게 내놓는다. 메밀묵 위에 김, 깨소금, 파, 참기름 등을 얹어 공깃밥과 함께 나온다. 식성에 따라 밥에 비벼 먹어도 되고 반찬으로 따로 먹을 수도 있다. 소백산 산행 후에 이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들이키는 등산객들도 많다.

  • 죽계천 옆 바위에 敬과 白雲洞 글자가 음각돼 있다.
  • 높이 3.91m에 이르는 숙수사지 당간지주
  •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가 위풍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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