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뼈(coccyx) 어원 제우스신이 인간 신체에 남긴 흔적과 연관
꼬리뼈를 다친 사람에게 "당신은 바람둥이군요"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다. 꼬리뼈 부상과 바람둥이의 상관성은 요즘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전자검사로도 결코 밝혀낼 수 없기 때문. 하지만 의학용어의 유래를 찬찬히 살펴보면 꼬리뼈는 분명 바람둥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누군가는 꼬리뼈의 위치를 떠올리고 "아하!" 라는 감탄사와 함께 배시시 웃을 수도 있다. 그런데 틀렸다. 꼬리뼈와 바람둥이의 관계는 저 멀리 그리스라는 나라의 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방학숙제로 자주 읽던 그리스 신화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웬일인지 진료실 밖이 어수선하다.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한데…. 뭐지? 누가 후송되어 온 걸까? 잠시 뒤, 30대 중반의 젊은 남자가 부축을 받으며 진료실로 들어온다. 앰뷸런스를 타고 온 주인공. 앰뷸런스를 어깨에 둘러메고 왔다고 해도 좋을 만큼 건장한 남자다. 그의 사연은 이랬다. 이틀 전 욕실에서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크게 찧었다. 그날은 그냥 아픈 대로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다음 날은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도무지 통증을 참을 수 없어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왔다.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통증을 이야기하는 입에서 불꽃이 튀었다. 가만 보니 건장하면서도 그리스 조각상처럼 잘 생겼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神)들의 왕 제우스는 천하의 바람둥이로 알려져 있다. 여러 여인을 탐했고 자녀들 수는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 그러나 제우스도 종종 유혹에 실패했던 경우가 있었다. 미모의 여신 헤라를 탐하다 여러 번 거절당했던 것. 거기서 포기할 제우스는 아니었다. 제우스는 뻐꾸기로 모습을 바꾸고 헤라의 무릎 사이로 날아든다. 뻐꾸기로 변신해 바람을 피우려던 제우스도 '꼬리가 길면 잡힌다'란 만고불변의 법칙을 피해갈 순 없었다. 제우스의 반복되는 속셈을 눈치 챈 헤라에게 들켜 퇴짜를 맞는다.
그리스 조각상처럼 생긴 30대남자를 진찰했다. 꼬리뼈 쪽의 통증이 너무 심해 촉진(환부를 만지면서 하는 진찰)도 못할 정도. 꼬리뼈가 부러졌나, 척추뼈는 괜찮을까 등등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X-ray를 찍었다. 다행히 골절은 아니다. 꼬리뼈는 그 주변부에 통증을 느끼는 신경들이 많이 모여 있다.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을 땐 골절되진 않았더라도 통증이 심해 한 달 이상 앉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이 남자가 바로 그런 경우다.
뻐꾸기 변신술로 바람을 피우려던 제우스 때문일까? 꼬리뼈의 의학용어 칵식스(coccyx)는 그리스어 뻐꾸기(coccygo)가 어원이다. 제우스가 사람 엉덩이 근처를 못 떠나고 꼬리뼈가 되어버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바람둥이 제우스가 인간의 신체에 남긴 자신의 흔적인 셈이다.
건장한 30대남자의 조각상 같은 얼굴을 보며 필자는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와 뻐꾸기와 꼬리뼈를 떠올렸다. 자연스레 필자의 얼굴에 언뜻 미소가 번졌던 것 같다. "당장의 통증만 해결하면 시간이 지나며 차차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필자의 말에 그가 찡그리며 필자를 바라본다. "남은 아파 죽겠는데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네. 웃기는 또 왜 웃어?" 라는 표정이다.
꼬리뼈는 골절되더라도 대부분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 체중이 꼬리뼈 부위로 집중되지 않도록 조심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치료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앉는 시간이 많아지면 악화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래서 앉아야할 경우를 대비해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린 '도넛방석'을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 물론 가능하다면 서있거나 누워있는 게 훨씬 좋다.
제우스처럼 건장하고 잘 생긴 남자가 진료실을 나갔다. 그가 앰뷸런스를 둘러메는 대신 도넛방석을 손에 들고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의 꼬리뼈가 부디 빨리 완쾌되기를 의자에 앉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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