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양들이 몰려와 '법화경' 경청 '白洋寺'라 이름 지어내장사의 단풍 보다 원시적이고 태고의 자연미 돋보여

백학봉 아래로 쌍계루와 호수, 단풍이 어우러졌다.
백암산의 주봉인 상왕봉(741미터)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일명 학바위라고도 불리는 백학봉이 솟아 있다. 웅장한 암봉이 인상적인 백학봉을 배경 삼아 자리 잡은 백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로서 40여 개의 사찰을 관할하고 있는 고불총림(古佛叢林)이다.

632년(백제 무왕 33) 승려 여환선사가 백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으며, 1034년(고려 덕종 3) 중연이 중창하면서 정토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1574년(조선 선조 7) 환양선사가 중건하면서 백양사라고 개칭했다. 당시 환양선사가 절에 머물면서 <법화경>을 독송했더니 흰 양들이 몰려들어 경청하자 사찰 이름을 백양사(白羊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사찰의 주요 건물 중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인 극락보전이 가장 오래되었다. 환양선사가 세웠다는 극락보전은 면적 50㎡에 이르는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43호)은 1917년 만암 스님이 주지로 있을 때 백양사를 중건하면서 새로 세운 것으로 석가모니불과 보살입상, 16나한상 등이 봉안되고 있다. 이외에도 백양사는 사천왕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44호), 명부전, 칠성각, 진영각, 선실, 요사채, 범종각 등의 당우를 거느리고 있다. 소요대사 부도(보물 1346호)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있는 9층탑도 소중한 유물로 꼽힌다.

백양사를 둘러보고 나서 백암산 등반에 나서는 것도 좋다. 백양사 옆 계곡을 따라가다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중종 때까지 천제를 지냈던 국기단-구충제로 이용하기 위해 고려 고종 때 심은 비자나무 군락-남한 최고의 참선도량으로 고려 충정왕 때 각진국사가 개창한 운문암을 거쳐 상왕봉 정상에 이르는 길은 2시간 가량 걸리며, 국기단-비자나무 군락-약사암을 거쳐 백학봉으로 오르는 길은 1시간 남짓 걸린다.

잎이 작고 유난히 색이 고운 아기단풍

범종·법고·목어 등을 소장한 범종각.
'춘백양 추내장'이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백양사, 가을에는 내장사의 풍광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춘백양'이라는 말은 천연기념물 153호로 지정된 약 5천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봄이면 일제히 꽃을 피운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흔히 내장산 단풍이 백양사 단풍보다 낫다고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서슴없이 반론을 제기한다. '양적으로는 내장산 단풍이 앞설는지 모르지만 질로 따지면 백양사 단풍이 더 곱다'는 것이다. 이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두 곳의 단풍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같은 내장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지만 백양사를 품은 백암산과 내장사를 거느린 내장산은 산세가 천양지차다. 기암절벽으로 무장한 내장산이 남성적인 반면, 백암산은 백학봉을 제외하고는 부드러운 인상을 풍긴다. 단풍 역시 내장산이 인공적으로 심은 단풍나무가 많아서인지 세련되고 화려한 느낌을 주는 데 비해, 백양사는 원시적이고 순수한 태고의 자연미가 도두보인다. 특히 잎이 작고 유난히 색이 고운 아기단풍(애기단풍)은 백양사의 자랑이다.

수백 년 묵은 갈참나무 거목과 단풍나무가 도열하듯 늘어선 울창한 숲길을 헤치고 백양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쌍계루가 눈에 들어온다. 백학봉을 중심으로 운문암과 천진암이 자리 잡은 양쪽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마주치는 곳에 작은 호수를 만들고, 그 위에 올려 세운 2층 누각이다. '백양제일경'이라고도 불리는 쌍계루는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85년 새로 지었지만 여전히 그림 같은 풍광을 자아낸다.

쌍계루 일원의 오묘한 단풍 빛이 일품

백양사 계곡에 단풍이 물들고 있다.
백양사 단풍의 진수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쌍계루 일원이다. 앞으로는 팔뚝만한 잉어가 노니는 작은 호수가 드리우고, 뒤로는 병풍 같은 기암절벽인 백학봉이 우뚝 솟아 절경을 연출한다. 여기에 단풍까지 곁들이면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황홀경에 도취된다. 백학봉과 누각, 그리고 붉은 단풍의 그림자가 물에 비친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가 부럽지 않다.

쌍계루 옆에는 1974년 12월 26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가 2002년 9월 25일 보물 제1346호로 승격된 소요대사 부도가 있다. 조선 중기의 고승 소요대사 태능(1562~1649)을 기리는 묘탑으로, 대사가 입적한 1649년이나 1650년 무렵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로 규모는 높이 1.58미터, 지름 1미터, 둘레 2.85미터에 이른다.

소요대사 부도 앞 단풍도 놓치면 아까운 진경으로, 이곳 단풍은 초기에서 절정기로 치닫기 직전에 가장 매혹적이다. 새빨갛게 익은 단풍잎과 아직 덜 물들어 분홍과 노랑, 연두색을 띠는 단풍잎이 뒤섞여 오묘한 색감의 조화를 이루는 까닭이다. 천연기념물인 비자나무 숲과 어우러진 단풍도 백양사만이 간직한 독특한 매력이다. 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백양사 단풍은 보통 10월 말부터 물들기 시작하여 11월 상순 무렵에 절정을 이룬다.

▲ 찾아가는 길

백양사 나들목에서 호남(25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백양사 안내판을 따른다.

단풍 숲 사이로 백학봉이 보인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광주, 장성, 호남선 백양사역 앞(북이면 사거리) 등지에서 백양사로 가는 버스를 탄다.

▲ 맛있는 집

백양사 입구 식당촌에 산채정식 전문점이 10여 곳 있는데 그 가운데 전주전통식당(061-392-7418)이 유명하다. 해마다 80㎏들이 8~10가마 분량의 콩으로 메주를 빚어 고추장과 된장을 직접 만드는 맛집이다. 갖은 산나물과 생선구이, 낙지, 오징어무침, 홍어, 물엿으로 버무린 늙은 호박, 달걀찜, 된장찌개 등 30여 가지 반찬이 따르는 한정식이 푸짐하며 이외에 다양한 토속 음식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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