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헝가리 부다페스트동유럽서 가장 먼저 개방된 수도… 고풍스런 풍광에 무뚝뚝함 부조화휴일이면 중세풍의 건물서 온천욕… 도시에 중독? 한달 넘게 머물기도

도나우강과 부다지구 전경.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는 중독의 희열을 느낀다. 동유럽 중 가장 먼저 개방된 고도는 도나우 강변의 매혹적인 풍광 때문에 '동유럽의 장미'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장미처럼 고혹하지만, 톡 쏘는 '가시'의 이면도 함께 지니고 있는 이채로운 도시다.

부다페스트행 열차를 타기까지는 망설임이 앞섰다. 크고 작은 시위가 끊이지 않는 시청 앞은 오랜 기간 열병을 앓고 있었고 메트로 역시 이방인의 발목을 잡았다. 오후 4시인데도 메트로가 끊겨 우왕좌왕 해야 했고 휴일에는 아예 메트로가 다니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유럽에서 런던 다음으로 메트로가 개통된 곳이 이곳 부다페스트인 것을 감안하면 이런 엉뚱한 메트로 시스템은 다소 당혹스럽다. 매표소의 아줌마들도 그리 부드러운 편은 아니다. 이데올로기 붕괴와 더불어 동유럽에서 가장 먼저 개방된 수도의 고풍스런 풍광과 무뚝뚝한 도시의 모습은 이렇듯 늘 부조화스럽다. 그렇다고 그들이 내면 깊숙히 불친절한 것은 아니다. 거대한 덩치에 깃든 무뚝뚝함이 외지인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뿐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부다 지구

개방의 열풍에 아랑곳없이 도나우 강변의 부다지구는 합스부르크 왕가와 건물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그중 부다왕궁은 13세기 때 왕궁이 지어진 뒤 외세의 침입을 숱하게 받고 파괴와 재건설이 수백 년 동안 반복된 곳이다. 미로 같은 골목길이 뻗어있는 부다왕궁을 시작으로 고풍스런 산책로가 이어진다. 도나우 강을 내려다 보며 길을 걷다보면 뾰족한 고깔모양의 하얀색 탑 7개가 늘어서 있는 기이한 형상의 어부의 요새도 만날 수 있다. 어부의 요새, 마챠시 교회 등은 부다페스트 시내를 조망하는 포인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해질녘이면 도나우강변과 부다페스트의 번화가인 바치거리로 향한다. 바치거리와 함께 평행으로 늘어선 도나우강변의 야경은 프라하의 야경과 견줄 정도로 명성이 높다. 강변을 따라 이어진 2번, 9번 트램을 타고 달리면 야경감상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서울의 명동같은 바치거리는 볼 것, 먹을 곳이 널렸다. 명품 숍과 기념품가게가 늘어섰고 광장에는 악사들이 수준 높은 음악을 선사한다. 가장 먼저 문호를 개방한 동유럽 국가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지만 호객하는 낯선 여성들도 공존하는 거리다. 부다페스트 시내에는 한국 단란주점류의 술집들이 골목 곳곳에 늘어서 있다.

고풍스러운 외관의 세체니 온천.
도시인의 일상이 담긴 온천문화

부다페스트 시민들만의 이색적인 모습은 그들의 독특한 목욕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휴일이면 수건을 들고 중세풍의 건물로 들어서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공산 체제기간의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마련된 테러하우스,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영웅광장을 뒤로하고 들어서면 드넓은 시민공원이 나타난다. 공원 안에는 유난히 큰 수건을 들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데 삼삼오오 고풍스런 건물로 들어서는 그들을 따라가면 시내 한가운데 온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 세체니 온천은 1931년에 문을 연 유럽에서 가장 큰 온천 중 하나다. 시내에는 끼라리, 겔레르트, 루다쉬 등 여러 온천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부다페스트 주민들은 주말이면 중세풍의 건물에서 가족끼리 온천욕을 즐기며 하루를 보낸다. 옛 이데올로기의 흔적인 서린 공간 옆에서 여유롭게 목욕을 한다는 사실은 그들의 괴짜스러움을 잘 대변해 준다.

부다페스트 도심은 다른 동유럽의 도시와는 달리 걸어서 둘러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버스, 메트로, 트램 등 교통편을 미리 잘 파악해 둬야 한다. 특히 도나우 강변을 따라 달리는 트램은 꼭 한번은 타봐야 할 명물이다.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의 다른 곳과는 다른 색깔을 지닌 도시다. 어떤 이는 그 엉뚱함과 무뚝뚝함이 낯설어 서둘러 도시를 떠나려고 하고 어떤 이는 한달 간 부다페스트에 머물며 중독된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장미'와 '가시'의 모습이 혼존하는 도시는 그래서 더욱 매혹적인지도 모른다.

부다왕궁 돌담길.
여행 메모

▲ 가는길=체코 프라하나 오스트리아 비엔나 등에서 열차로 이동이 가능하다. 부다페스트는 기차역이 3곳이나 된다. 대부분의 국제선은 켈레티푸역에서 출발하거나 도착한다. 동유럽 패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부다페스트는 다른 지역에 비해 기차 티켓값이 비싸니 타지역에서 왕복 티켓을 구입해서 들어오는게 낫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회, 뮤지컬 등의 정보를 얻을수 있는 'budapest panorama'를 얻으면 편리하다.

▲ 음식=쇠고기, 양파, 감자를 잘게 썰어 파프리카라는 향신료를 넣고 끓인 구야쉬(gulays)나 닭갈비에 파프리카를 넣어 졸인 파르리카슈 치르케가 맛있다.


도나우강을 따라 달리는 트램.

글 사진 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aularge@hanmail.net